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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현장에서] 개장 2주년 맞은 서울로 7017을 다시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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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하~”. 웃음이 아니라 한숨이다. 서울시 공무원에게 서울로 7017에 대한 평가를 물어보면 대개 나오는 첫 반응이다. 모르겠다는 회피형, 일단 좋은 면만 보려는 무한긍정형도 있다. 대개는 아쉽고 안타깝다는 에두른 표현 뒤에 ‘잘 봐달라’는 말로 마무리하는 애정형이다.

20일로 개장 2주년을 맞은 서울역 고가공원 서울로 7017을 두고 서울시는 자랑 일색이다. 2년간 총 방문객 1670만명, 타임지의 ‘지금 당장 경험해봐야 할 여행지 100선’ 선정, 괜찮은 점수의 방문객 만족도 조사 결과 등.

그래서 다시 걸어봤다. 박원순 시장의 치적 사업으로 첫 손가락에 드는 현장, 혁신과 실험의 첫 장소를. 애정이 부족한 걸까. 만리동서 남대문 부근까지 걷는 동안 어떤 감동 보단 본전(공사비만 597억원) 생각이 더 짙게 든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족욕탕, 방방놀이터(트렘블린)는 더이상 찾지 않는 오래된 놀이 공원을 연상케 했다. 이제 겨우 2년 인데 활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서울로 7017을 설계한 네덜란드 건축가 비니마스는 어떤 평가를 내릴까 궁금해졌다. 어쩌면 서울로를 향한 비난의 상당 부분은 서울시가 아닌 비니마스가 들어야할지 모른다. 그만큼 작가의 의도를 많이 존중한 작품이어서다.

교통 소음과 미세먼지 날리는 서울 도심 한복판 고가 위에 족욕탕과 방방놀이터, 화장실 3개를 고집한 게 비니마스다. 족욕탕은 애초 설계안에선 성인 어깨까지 물이 차는 목욕탕이었다. 시는 안전 우려와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두 시설을 뺄 것을 설득해봤지만 실패했다. “남들과 다르게 해야한다. 유인 효과를 낼 곳이 었어야한다”는 건축가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결국 족욕탕 수준으로 합의봤다. 주말 낮이면 족욕탕에서 발을 식히고, 트렘블린에서 아이를 뛰놀게 하며 즐기는 시민이 많다고 한다. 물론 시의 설명이다. 대신 수질 관리, 안전 관리에 따른 예산이 많이 들게 됐다. 지난해 운영관리 예산에만 43억원이 넘게 들었다. 시는 아예 운영을 민간에 맡기기 위해 위탁사를 찾고 있는데, 첫 공고에서 1곳도 참여하지 않아 재 공고 중이다.

시는 설계안이 구현되는 과정에서 건축가와 자주 충돌했다. 휠체어, 유모차의 보행 동선을 고려해 보행폭(2.5m)을 만들기 위해 화분 4분의 1을 들어냈다. 645개의 화분만 남겼는데, 식물의 초록색 보단 콘크리트 회색 빛이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길의 곡선, 직선과 화분의 원형이 이루는 미적 조화를 감상하기 어려워졌다.

시는 식물을 과(family) 단위로 묶어 가나다순으로 배열해 한폭의 식물도감이라고 자부하지만, 시민 방문 목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수목을 보기 위해서’가 9%(서울시 자체설문 조사)에 그치는 점은 시ㆍ건축가의 설계 의도와 이용자의 ‘니즈’와의 괴리를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방문 목적은 ‘휴식이나 산책’(45%)이 가장 높고, 만족도도 ‘도심 내부의 보행 및 산책’(94%),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이동 공간’(93%)이 ‘다양한 수목을 즐기는 도심공원’(90%), ‘다양한 예술이 펼쳐지는 문화공간’(84%)을 앞선다. 이 곳은 애써 찾아가서 오래 머물고 쉬어가는 공원이 아닌 주변 직장인, 상인, 서울역을 오가는 시민이 가끔 지나는 보행길 임이 설문 조사 결과에서 엿볼 수 있다. 정체성을 보행길에 맞춰 애초 국제현상설계 공모 당시 구조 안전성, 관리의 편의성 등 조건을 상세히 제시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고가도로 공원화에 대한 국제현상 설계공모는 서울역 고가가 세계 처음이었다고 한다. 시는 국제현상설계공모를 거쳐 작품을 선정한 뒤 도중에 작가 의도와 다르게 조정한 경우 국제 사회에서 서울에 대한 평판이 나빠질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그 절충안이 바로 ‘이저 저도’ 아닌 서울로의 현재 모습이다.

서울로 7017은 제로페이와 함께 박 시장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혁신과 실험의 산물이다. 그런데 너무나 값 비싼 실험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도 그것을 누려야 할 주체가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몸짓에 불과할 뿐이다. 시의 혁신과 실험이 시정 담당자나 민간 전문가의 커리어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혁신, 실험의 결과가 시민 삶을 정말로 윤택하게 하는 지, 미래세대를 위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를 더 고민했으면 한다. 게다가 그러한 창의와 혁신의 실험은 민간이 더 잘한다.

한지숙 사회섹션 메트로팀 차장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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