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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듬어준 종로서 꿈꾼 선거개혁…20년 지나 되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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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10주기 `네 도시 이야기’

②서울 종로: 정치 개혁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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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통상 부박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치적 고향’ 부산에서 상처 입고 돌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둬 품어준 곳도 서울이었다. 1992년 부산 동구 총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떨어진 노무현을 받아준 것은 1998년 7월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였다. 물론 종로구 선거도 1996년 한번 떨어진 뒤 재도전이기는 했다. 종로구 지지자들은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이 왔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당선 6개월 남짓 만인 1999년 2월 다시 부산의 낙동강 전선으로 돌아가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그래도 종로구의 지지자들은 그의 앞길에 뜨거운 박수를 쳐줬다. 이후 2000년 부산 북·강서을 총선에서 떨어진 뒤 다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돼서 돌아온 곳도 서울이었고, 2002년 대통령으로 돌아온 그를 환영해준 곳도 서울 종로구(청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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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로구와의 각별한 인연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종로구는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동네 생김새가 그림 같았다. 사회적 공간도 다양하고 입체적이었다. 종로구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면 국가를 운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종로구에서 만난 노 전 대통령의 전 보좌관 김동수 대한전기협회 상근부회장도 “종로 국회의원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며 “부산출마를 결심한 뒤 노 전대통령은 ‘우리가 이제야 편안히 먹고 살 수 있는데, 여러분들은 내가 또 일을 저질러버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자신있다. 반드시 부산에서 이기고 온다’고 참모들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종로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기간은 채 2년도 되지 않았지만, 종로구 곳곳에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1996년 노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부산을 떠나 서울 종로에 출마했을 때 사용한 선거사무소는 종로1가 ‘보신빌딩’이었다. 지금은 그 건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그랑서울’이 들어서 있다. 그와 보좌관들의 짧은 행복을 가져다준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 사무실은 정부서울청사 뒤쪽 도렴동 ‘도렴빌딩’이었다. 그가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2000년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할 때까지 지구당과 후원회 사무실로 쓴 곳은 안국동 ‘선진빌딩’이었다. 역시 그의 보좌관을 지낸 서갑원 전 의원은 “선진빌딩 시절 노 전 대통령이 ‘갑원씨, 일 좀 살살 해라. 그렇게 안 해도 된다’며 지역구 관리를 말렸는데, 부산으로 갈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종로구 시절 살던 동네인 종로구 명륜1가 동네에서 노 전 대통령은 ‘좋은 사람’ ‘재밌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와 같은 빌라에 살았던 이아무개(86)씨는 “목욕탕에서도 가끔 만났는데, ‘오셨나’라며 인사하고 국회의원인데도 거드름이 없었다. 만나면 재미있고 시골 사람 같았다. 오래 살았어야 하는데, 아까운 사람이 갔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에 살았던 ㄱ(72)씨도 “이 동네에서 애고 어른이고 없이 다 편안하게 대했고, 노인들에게 커피도 사주고 아주 잘했다”며 “대통령 그만두고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경복궁 북쪽은 노 전 대통령이 종로구에서 가장 오래 산 곳이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현재의 청와대로1), 바로 청와대다. 현재 청와대엔 그의 친구이자 동지인 문재인 대통령이 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떠난 뒤 청와대 내부는 약간 달라졌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지내기 불편하다고 말했던 청와대 본관을 떠나 주로 비서동에서 근무한다. 임기 중에 노 전 대통령은 수십년 만에 청와대 뒤 북악산을 시민에게 개방했고, 문 대통령은 임기 초기 청와대 앞 도로를 24시간 개방했다. 조민곤(32)씨는 “그가 너무 앞서가다 보니 대중들의 공감을 얻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모두 옳은 이야기였다. 그는 외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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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 개혁을 위해 애쓴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2005년 7월28일 대연정을 제안했다. ‘대연정’이란 파격적 단어에 묻혀버린 노 전 대통령의 진정한 의도는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그는 결선투표가 없는 소선거구제와 빈약한 비례대표 의석이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 정치 구조를 강화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일식 비례대표제나 중대선거구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그는 선거제도 개혁만 할 수 있다면, 대연정을 통해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고도 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당시로선 생뚱맞았지만 옳은 방향이었다. 대연정은 요즘 말로 하면 ‘협치’다. 정쟁을 하더라도 국민 삶을 개선하는 정치를 하자는 것이다. 지금 야당이 요구하는 총리추천제가 당시 대연정을 통해서는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대담한 제안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1987년 이후 집권한 정부들이 성공하지 못한 원인 가운데 하나를 헌법에서 찾았다. 그는 2007년 3월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가 비슷한 시기에 치러지도록 선거 주기를 조정하고, 대통령의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내용의 권력구조 개헌을 제안했다. 그는 새로운 제도가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고, 국가적 전략 과제에 대한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 개혁 제안은 언제나 한발쯤 앞서가 있었고,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안에서도 반발하거나 실망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대연정에 대해 “1당 독재와 다를 바 없다”, 권력구조 개헌에 대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부정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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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교수(교양학부)는 “노 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 정치 개혁에 중점을 뒀다. 대표적인 것이 선거제 개혁과 개헌이었는데, 모두 국회에서 거부됐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의 10주기를 맞아 만성적 극한 대치를 일으키는 양대 정당 구조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전국 정당, 선거제 개혁, 개헌의 꿈은 더디지만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2016년 총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을 얻어 제1당이 됐고, 특히 영남에서 9석을 얻는 성공을 거뒀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광역자치단체장 17명 가운데 대구, 경북, 제주를 뺀 14명을 싹쓸이하는 압승을 거뒀다. 지난 4월29일 낮은 수준의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은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돼 논의를 앞두고 있다. 다만, 개헌은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중임제와 국회 권한 강화를 뼈대로 한 개헌안을 국회에 냈지만, 야당의 표결 불참으로 자동 폐기됐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노 전 대통령이 말한 개헌이나 대연정은 지역주의 소선거구제를 깨뜨리면 대통령의 권력을 나누겠다는 것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쳐서 분권적 정치 구조를 만들겠다는 그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 대통령이 국회와 함께 개헌을 성사시켜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채윤태 이정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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