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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백야, 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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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

달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어깨에 손 얹고 싶었다

담 모퉁이를 돌아가던 달그림자 어깨에 손을 얹듯이

천 년 동안 고였던 물방울들이 주르르 빙하를 타고 쏟아지듯이

그에게로 기울었던 장미꽃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눈물이 되고 싶었다

둘이면서 하나였던 푸른 빙벽의 길, 길 무늬 따라 무지개 꽃 수 놓으며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길이 없어도 있는 듯이 길이 있어도 없는 듯이

고전의 문지방을 깨고 러시아의 백야에 홀로 서듯

우울과 생각이 잠 못 들게 하는 밤,

나는 몽상가처럼 저무는 창가에 오래도록 앉아

백야를 꿈꾸었다 그가 떠난 길 위에서 그와 만난 길 위에서

잠들지 못하는 밤을 위하여 백야, 너를 위하여

세계일보

우리는 사랑하다 헤어지면 잠들지 못하고 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됩니다.

그와 헤어진 날, 달빛을 받으면서 담 모퉁이를 돌아가던 그의 어깨를 잡고 싶었습니다.

그에게로 기울었던 장미꽃 같은 나의 마음이 우르르 쏟아집니다.

나는 황량한 러시아의 백야에 홀로 서서 천 년 동안 고였던 물방울들이 빙하를 타고 쏟아지듯이 눈물이 나의 양 볼에 주르르 쏟아집니다.

우리는 둘이면서 하나였습니다.

푸른 빙벽의 길을 길 무늬 따라 무지개 꽃 수를 놓으며 우리는 길이 없어도 있는 듯이 길이 있어도 없는 듯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우울과 생각이 잠 못 들게 하는 밤,

나는 몽상가처럼 저무는 창가에 오래도록 앉아 그가 떠난 길 위를 그와 만난 길 위를 그려보며 하얗게 밤을 지새웁니다.

그는 지금 나처럼 밤을 지새우고 있을까요?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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