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기자칼럼]음식이 도시를 살린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준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나 강렬하다. 화려한 음식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식당 한쪽에서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을 먹노라면 그곳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경향신문

먹어본 적은 없어도 그곳을 떠올리게 하는 것 또한 음식이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를 보면 ‘쿠바 샌드위치’ 맛이 궁금해진다. 음식평론가와 설전을 벌인 후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쫓겨난 셰프 칼이 푸드트럭에서 버터를 듬뿍 발라 구워내는 쿠바 샌드위치는 입맛을 다시게 한다. 사정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쿠바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말이다. 칼은 아들에게 ‘카페 드 몽’의 설탕 파우더를 탈탈 뿌린 프랑스식 도넛 ‘베녜’를 맛보게 하기 위해 미국 뉴올리언스에 푸드트럭을 세운다. “천천히 먹어. 생의 첫 베녜는 다신 못 먹어. 세계 어디서도 이 맛은 못 내”라는 영화 속 대사 덕에 이곳의 베녜는 전 세계에 입소문이 났다.

나만 해도 10여년도 더 지났지만 베트남 휴양지 달랏에서 화덕에 구운 바게트와 함께 먹은 치즈 맛이 지금도 또렷하다. 홍콩 센트럴 뒷골목의 완탕면은 어떤가. 주인 할머니가 손짓으로 일러준 대로 그 집의 비법 소스를 한 숟갈 넣으니 놀라울 정도로 맛이 달라졌었다. 그때 처음 먹어본 완탕면에 반해 수없이 완탕면을 먹으러 다녔지만, 서울에서 그 맛을 내는 집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음식에는 그곳만의 맛이 담겨 있을 터이다.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요소. 거기에도 음식이 있다. 하버드대 에드워드 글레이저 경제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위대한 극장들보다는 위대한 식당들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도시를 살리는 요인 중 하나가 ‘음식’이란 얘기다.

음식에 대해 ‘피시 앤드 칩스’ 말고는 없다는 지독한 조롱을 받는 영국이지만, 런던에는 세계적인 셰프들과 유명 식당들이 많다. 이달 초 출장길에 잠깐 들른 런던에서 만난 한 업체 사장은 요즘 뜨는 음식으로 한식을 꼽았다. 런던 킹스크로스에 있는 한식당 ‘kimchee’(김치)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못 먹을 정도로 핫플레이스라고 한다. 한국 여행객들이 현지 음식이 맞지 않아 찾는 한식당과는 외양부터 다른 이곳은 종업원들도 한국인은 고용하지 않는 현지화 전략을 썼다. 잉카 유적지 외에는 내세울 게 없었던 페루 역시 매년 9월 리마에서 열리는 ‘미스투라’라는 남미 대륙 최대의 음식 축제가 사람들을 모은다.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 이 한마디에 4·27 남북정상회담 당일 점심에는 평양냉면집마다 긴 줄을 선 풍경과 냉면 인증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기도 했다.

최근 서울시도 도시 공동체를 위해 음식에 주목한다. 지난해부터 서울역 일대에 ‘요리를 통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요리인류> 등 요리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KBS 이욱정 PD가 음식을 통한 도시재생이라는 주제로 기획을 맡았다. 올해는 식재료 공동구매, 공동손질, 공동배분을 하는 마을공동체 ‘우리마을 쿠킹박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음식을 매개로 공동체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건강하게 먹기 위한 노력만으로 우리는 타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도시에서 잃어버린 연대의식을 되찾을 수도 있다. 2008년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온 것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광우병’ 때문이었다. <식탁 위의 세상>에는 1967년 마틴 루서 킹의 우주의 상호연결성에 대한 연설이 나온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끝마치기도 전에 지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이 말은 상관없어 보이는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평화를 얻지 못할 거라는 우려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