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양권모 칼럼]‘나라다운 나라’에 전교조는 없는 걸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2년이 흘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여전히 박근혜 정부가 씌운 법외노조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수십명의 해직 교사들은 아직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집권하면 우선적으로 (법외노조를) 철회하겠다”(2017년 2월)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약속은 간데없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 때와 똑같은 ‘법외’ 처지다.

경향신문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 국민의나라위원회와 민주연구원이 공동으로 작성한 국정운영 보고서(2017년 5월17일)에는 임기 초반 즉시 시행 가능한 ‘10대 촛불 개혁 과제’가 제시됐다. 대통령의 결단이나 행정부의 처분만으로 시행할 수 있는 개혁과 적폐청산의 목록이다.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자 인정, 교원노조 재합법화 선언, 세월호 선체 조사위 인력·재정 추가 지원, 4대강 복원 대책기구 구성,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재수사, 최저임금 공약 준수 의지 천명 및 근로감독 강화, 노동개악 4대 행정지침 폐기, 개성공단 입주업체 긴급지원, 박근혜 정부 언론탄압 진상조사,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금지 선언 등이다. 아직껏 유일하게 미시행된 게 교원노조 재합법화이다. 분명해진 건, 전교조 재합법화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첫해인 2013년 10월 팩스 공문 한 장으로 전교조를 법 바깥으로 쫓아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9조2항)을 앞세워 조합원 중 해직자 9명이 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통보했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인권위조차 “조합원 자격 때문에 노동조합 자격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단결권과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2010년)고 삭제를 권고했던 시행령을 들어 법외노조화를 밀어붙였다. 법률도 아니고 행정부 명령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박탈한 꼴이다. 이게 법정에서 바로잡히지 않은 까닭도 뒤늦게 드러났다. 전교조가 제기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 효력 정지 신청’과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거래’ 대상이 되어 박근혜 청와대에 ‘선물’로 바쳐졌다. 전교조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맹렬한 적의를 감안할 때 그만한 진상품이 없었을 터이다.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정부가 나서 이전에 내렸던 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하는 것은 하등에 문제될 게 없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에 위반되고, ‘재판거래’마저 드러난 상황에서 명분도 충분하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고용노동부 장관이 전교조와 만나 ‘직권 취소’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피력하자,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 “정부가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고용노동부의 적폐청산위원회 격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는 지난해 7월 ‘법외노조 처분 직권 취소’와 ‘노조법 시행령 삭제’를 권고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과정에서 ‘외압’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직권 취소를 미룰 명분이 없어졌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직권 취소를 통한 법외노조 해결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대신 (3년 넘게 계류 중인)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고, ILO 핵심협약 비준에 맞춰 국회에서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형식논리일 뿐 실은 ‘하지 말자’는 얘기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선거법’보다 전교조 재합법화를 위한 법에 더 결사 반대할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는 왜 전교조 앞에서 멈춰서는 걸까. 진즉 답이 나왔다.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2018년 11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국정감사 답변) 사회적 약자 여부와 법외노조 문제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전교조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전교조 재합법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그림자를 짚어볼 뿐이다.

5월28일은 전교조 결성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30년 동안 체벌과 촌지가 일상이던 학교의 풍경을 바꾼 데는 전교조의 역할이 컸다. 혹독한 시절 ‘참교육’을 위한 전교조 교사들의 용기와 희생, 눈물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교육의 역사는 참 남루했을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전교조 결성 계기가 된 1986년 중3 소녀의 유서) 입시에 매이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학생들의 삶을 위한 교육, ‘참교육’의 꿈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30주년 교사대회는 ‘참교육’이 걸어온 길을 성찰하고 미래 교육의 비전을 세우는 자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한데 30년 전과 같이 다시 ‘전교조 합법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설 판이다.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학교 현장에서 참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해온 교사들을 부정한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교육개혁을 이뤄나갈 수 있을까.

양권모 논설실장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