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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훔친 윤석화 "영원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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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전 직접 문연 소극장 정미소에서 6월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지막 공연
경영난 겹쳐 걸국 매각 결정
"태양만큼 석양도 아름다워 좋은 배우·선배로 남고 싶어"


"17년간 머슴 역할을 하면서 울고 웃었는데, '굿바이' 공연을 하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공연을) 안 하고 싶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하게 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동안 최선을 다했고 부족한 것도 있지만 그 흔적이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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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소극장 '설치공간 정미소'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배우 윤석화(63·사진)는 끝내 눈물을 훔쳤다.

정미소가 오는 6월 11~22일 1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2002년 윤석화와 건축가 장운규가 3층짜리 폐건물을 매입해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박정자 주연의 '19 그리고 80'을 비롯해 '서안화차' '사춘기' 등 다양한 실험작들을 무대에 올리며 한때 '좋은 공연의 메카'로 통했지만, 경영난 등으로 결국 건물 매각이 결정됐다. 최근 박정자의 '꿈속에선 다정하였네'를 선보인 정미소는 '아듀! 정미소' 공연으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올린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영국 작가 아놀드 웨스커(1932~2016)의 원작을 1992년 윤석화 주연·임영웅 연출로 세계 초연한 연극이다. 당시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했고 윤석화는 산소호흡기 투혼을 펼치며 장장 10개월을 공연했다. 이번 공연은 2020년 영국 웨스트엔드 공연을 앞두고 오픈 리허설 형태로 선보인다.

7년 전 런던 무대가 예정됐다 불발된 사연이 있는데, 그때 원작자 웨스커가 쓴 가사에 곡 작업을 했던 음악감독 최재광이 이번 공연에 다시 합류했고, 연극 '레드' '대학살의 신', 뮤지컬 '시카고' '빌리 엘리어트' 등의 김태훈이 연출을 맡는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은 작품이면서 제게 너무 아픈 작품입니다.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웨스커가 끝끝내 못 보고 가셔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세계 초연한 배우라 그랬는지 웨스커가 참 예뻐해 주셨어요. 2013년 런던 공연을 앞두고 영어 노래 가사를 써줬는데 당시 최재광 음악감독이 작곡한 노래를 듣고 '행여 우리 연극은 망해도 이 노래는 히트할 것 같다'며 아주 좋아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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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관작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제작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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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는 2011년부터 몇 년간 웨스트엔드의 유일한 한국인 제작자로 활동하며, 프로듀서 리 멘지스와 함께 '여행의 끝' 등을 제작했다. 멘지스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런던 공연을 추진했고, 이번에 다시 윤석화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웨스트엔드 무대에 오르는 것은 난생 처음이죠. 영어로 공연해야 하니 정말 떨립니다. 지난해 11월, 멘지스가 그때 못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시 하자고 해 제가 '그때도 떨렸는데 육십 넘은 이 나이에 어떻게 하느냐' 했더니 '넌 할 수 있다'고 부추겼어요. 제가 안하고 죽으면 후회가 될 것 같아서 결심했죠. 한다면 최선을 다해서, 한국 배우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후배인 최재광 음악감독의 음악이 뒤늦게나마 빛을 보게 된 것도 기쁘다. 최 음악감독도 최근 개최된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제작보고회에서 "당시 런던 공연이 무산돼 많이 아팠다"며 "감개가 무량"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윤석화는 요즘 최 음악감독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가수이자 미혼모로 살아온 엄마가 사춘기를 맞은 12살 딸에게 10가지 교훈을 들려주는 내용으로, 5곡의 노래를 열창한다. "정말 음악감독이 봐주는 게 없습니다. 발성 연습을 얼마나 시키는지, 어떤 날은 제가 유치원생 같아서 눈물이 납니다. 대사 량도 많아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 이번에 담배를 끊었답니다."

윤석화는 한국 공연에서도 노래는 전부 영어로 부를 예정이다. 윤석화는 제작발표회에서 청색 드레스를 우아하게 차려입고 테마송 '그건 우리들의 시간이었다(It was Our Time)'도 불렀다.

시간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인 공간에 윤석화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가 박력 있게 울러 퍼지자, 감동의 크기는 배가 됐다. 초연 당시 미혼이던 30대 배우는 이제 12살 딸을 둔 엄마가 됐지만, 금발의 당당한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한국어로 공연해도 천국과 지옥을 몇 번 오가야 관객과 만나지요. 런던 공연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뭐든 내려놓을 나이인데, 태양도 아름답지만 석양도 아름답잖아요. 어떻게 질 것인가? 전 관객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살다가 오해도 고난도 있었으나, 아름다운 사람, 배우로 기억되고, 또 후배들의 좋은 배경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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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소극장 ‘설치공간 정미소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배우 윤석화(63)가 폐관작인 1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 포스터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f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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