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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예비범죄자로 낙인찍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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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국내 잠재적 은둔형 외톨이 21만 명 추정… ‘폭력적’ ‘의지 없음’ 편견의 두 시선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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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008년 관객들은 이유 없이 죽음을 만드는 외로운 사람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더욱 업그레이드된 공포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일본을 비롯해 최근 한국에서도 히키코모리들의 ‘묻지마’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어 이들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이들은 특정한 대상이나 목적을 가지고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차별 살인을 감행하고 있어 그 공포감을 더하고 있다.” -영화 <외톨이> 제작노트

은둔형 외톨이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두 가지다. ‘폭력적’ 그리고 ‘의지 없음’. 은둔형 외톨이의 폭력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은 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과대학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 이후로 볼 수 있다. 당시 언론은 가해자인 조승희가 ‘외톨이’였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들을 방치할 경우 ‘또 다른 조승희’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후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오패산 사제 총기 사건 등 강력사건 피의자가 특별한 직업 없이 살았다는 보도가 나올 때면 어김없이 은둔형 외톨이의 범죄를 걱정하는 기사들이 나왔다.

‘반사회적’ 인식 확산에 고립감 가중



2018년 10월 서울 강서구에서 일어난 피시(PC)방 살인 사건의 가해자가 밝혀진 뒤에도 한 온라인 사이트에 가해자의 동창생이라는 사람이 글을 올렸다. “구석 자리에서 판타지 소설 읽다가 뒤통수 맞던 새끼, 30살 백수 히키코모리, 중증 우울증 환자.” 이 글 뒤로 가해자인 김아무개씨가 은둔형 외톨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말이 없고 별다른 직업이 없으면 ‘은둔형 외톨이’라는 판단이 나오는 셈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가 폭력적이라는 낙인찍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도 일본의 히키코모리 같은 은둔형 외톨이가 있다는 것을 2001년 처음 공론화한 여인중 동남신경정신과 원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은둔형 외톨이가 폭력적이라는 인식을 주는 건 폭력영화와 매스컴의 역할이 100%다. 상담하다보면 은둔형 외톨이는 소심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오히려 상처받고 스스로 방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남을 해치겠나. 애초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을 만들었을 때 ‘은둔’의 의미를 스님들이 은둔하면서 명상하는 것과 같은 긍정적 뜻이었는데 부정적으로 변질됐다.” 그는 “일반군보다 정신질환자의 폭력성이 낮다. 은둔형 외톨이도 마찬가지다. 예비범죄자로 낙인찍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검찰청의 범죄 통계를 보면 2017년 살인 사건 가운데 검거된 살인 범죄 피의자의 47.3%가 범행 당시 정신상태가 정상, 43.4%가 주취 상태, 9.3%가 정신장애(정신이상, 지적 장애, 기타 정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전체 범행 145만7544건 중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범행은 8535건(0.59%)에 불과하다.

은둔형 외톨이가 ‘반사회적’이라는 인식 확산은 당사자와 가족을 더 고립시킨다. 김영민(39·가명)씨는 ‘○○사건 가해자는 은둔형 외톨이’ 같은 기사를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김씨의 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거의 20년째다. “동생한테 ‘밖에 나가서 일하라’거나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 같은 말을 하면 동생이 버럭 화낼 때가 있다. 그러면 ‘쟤도 폭력적인가’ ‘기사 속 범죄자들처럼 사고 치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누구나 화낼 수 있는 건데, 가족인 나조차 그런 편견을 갖고 동생을 바라보게 된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느냐.”

한국에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없다. 다만 대부분 2005년 청소년위원회가 의뢰한 ‘은둔형 외톨이 등 사회부적응 청소년 지원 방안’을 인용한다. 지원 방안에는 △최소한의 사회적 접촉 없이 3개월 이상 집안에 머물러 있고 △진학·취업 등 사회 참여 활동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고 있으며 △친구가 한 명밖에 없거나 전혀 없고 △자신의 은둔 상태에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며 △정신병적 장애 또는 중증도 이상의 정신지체(지능지수 50~55)가 있을 때는 제외한다고 규정했다. 일본 내각부가 내린 히키코모리의 정의는, 6개월 이상 집 밖에 나가지 않아 일하지도 않고 학교도 가지 않으며, 가족 이외의 사람과 교류가 없는 사람을 말한다.

사회적 접촉 없이 3개월 이상 집에 있다면



은둔형 외톨이가 생기는 원인을 개인의 나태나 심리적 유약함으로 치부하기 마련이지만 전문가들은 개인적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가정방문 상담을 500회 이상 한 오상빈 전 이음새상담협동조합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가 생기는 것을 ‘무망감’으로 해석했다. “예전에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술 수준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습득할 수 있을 만큼 낮았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기업에 들어가려면 학습이 많이 필요하다. 그게 잘 안 돼 포기하는 사람이 늘었다. 이들에게 좌절감은 둘째치고 낙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마저 줄었다.”

여 원장도 2018년 11월 국회에서 열린 ‘은둔형 외톨이 지원 방안 도출을 위한 토론회’에서 은둔형 외톨이의 발생 원인을 개인의 심리 외에 네 가지로 분류했다. △과잉보호·과잉통제 같은 부적절한 양육 태도를 지적하는 가정환경적 요인 △왕따·학교폭력 등 학교 부적응 요인 △청년실업이 늘면서 생기는 사회경제적 요인 △독립된 방과 인터넷 문화, 인스턴트식품 상용화로 타인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문화적 요인을 꼽았다.

일본, 히키코모리가 된 이유 1위 ‘등교 거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실태 조사가 없는 한국에서 은둔형 외톨이의 등장 계기는 먼저 이를 겪은 일본 사례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일본 내각부가 만 15~39살을 조사해 2016년에 낸 ‘청년 생활 조사 보고서’를 보면, 히키코모리가 된 이유 1위는 등교 거부, 직장 부적응이다. 2위는 취직 활동 실패, 인간관계 어려움, 그다음은 병, 시험 실패 등이 뒤따랐다.

히키코모리가 된 연령은 24살 이하가 77.5%로 가장 많았다. 그중 20~24살이 34.7%였다. 30~39살은 14.3%를 차지했다. 히키코모리로 지낸 기간은 7년 이상이 34.7%로 가장 많고, 3~5년 28.6%, 6개월~1년, 1~3년, 5~7년이 각각 12.2%였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청년 사회·경제 실태 조사’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이 외출하지 않는 양태는 일본과 유사하다. 일본 내각부에서 ‘준은둔형 외톨이’로 보는 ‘취미생활만을 위해 외출한다’는 1.6%, ‘편의점 등에 갈 때 외출한다’는 2.5%, ‘집 밖에는 안 나간다’가 0.1%였다. 이들이 외출하지 않게 된 이유 1위는 ‘임신과 출산’(61.3%), 2위는 ‘취업이 잘 안 돼서’(17.9%)였다. ‘인간관계가 잘 안 돼서’(10.1%), ‘장애가 있거나 몸이 불편해서’(4.6%), ‘학업 중단이나 대학 진학 실패’(3.8%)가 뒤를 이었다. 오 전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상담과 복지의 경계,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는 애매한 구조적인 문제다. 또 개인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는 은둔형 외톨이 전문기관도, 지원도 없다. 10년 전부터 실태를 조사하자고 했지만 국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년 히키코모리의 문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6 사회지표’의 사회적 네트워크 항목을 보면 ‘의지할 수 있는 친지나 친구가 있다’는 물음에 “네”라고 응답한 15~29살의 비율은 93%다. 의지할 친구가 있는 비율은 30~49살 78%(36개국 중 35위), 50살 이후 61%(36위)로 뚝 떨어진다.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히키코모리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일본보다도 낮다(각각 94%, 90%, 88%).

청소년 은둔형 외톨이가 중년 은둔형 외톨이로 이어진다는 통계는 없지만, 일본의 경우 40~64살로 범위를 늘려 지난해 조사했을 때 ‘중년 히키코모리’를 61만 명으로 추정했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중년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의 중년 은둔형 외톨이 상황이 일본보다 낫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 배우의 비트

영화 <좋은 친구들>, 민수의 웃는 울음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난다

한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은둔형 외톨이의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다. 2005년 청소년위원회가 한국청소년상담원과 여인중 동남신경정신과 원장에게 의뢰해 고등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은둔형 외톨이 고위험군이 약 4만3천 명으로 추산된다. 여 원장은 전체 인구로 봤을 때 30만~50만 명을 은둔형 외톨이로 추정했고 이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이후 14년 동안 정확한 실태조사가 없는데다 은둔형 외톨이, 은둔형 부적응 청소년, 니트족 등 단어들마저 혼용해 써왔다. 실태조사조차 없으니 정책 마련도 불가능했다.

우리보다 히키코모리 문제를 먼저 겪고 대처한 일본은 2010년부터 실태조사를 했다. 일본 내각부는 아동·젊은층 육성지원 추진법에 따라 2010년과 2015년 두 차례 만 15~39살에게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2010년 약 70만 명에서 2015년 54만 명으로 히키코모리 추산 인구가 줄었다. 2018년엔 히키코모리의 장기화를 조사하기 위해 40~64살까지 범위를 늘려 약 61만 명을 ‘중년 히키코모리’로 추산했다.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2009년부터 해온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 설치 운영 사업이다. 2018년 4월 기준으로 67개 지방자치단체에 75개 센터가 있다. 이 센터에선 히키코모리를 전문으로 하는 상담 창구를 운영하고, 당사자나 가족의 지원 신청을 받아 코디네이터가 민간단체, 교육기관, 의료기관, 취업기관 등과 연계해 다면적으로 지원한다. 취업 관련해선 ‘헬로 워크’(직업상담소)가 대표 기관으로, 히키코모리 지원이 상당히 진행돼 구체적 목표가 생겼을 때 연결한다.

또 일본은 2013년부터는 히키코모리들을 적절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담당 기관의 종사자와 지원자들을 양성·교육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여기선 히키코모리 지원에 필요한 지식과 지원할 때 알아야 하는 유의점을 배울 수 있다.

프랑스도 2018년 10월 국가 차원의 조사를 벌여 국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청년 46만 명을 찾아 이 가운데 수만 명을 은둔형 외톨이로 추정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더디기만 하다. 서울시의회에서 ‘은둔형 외톨이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2017년 발의됐지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정부의 더딘 움직임에 민간이 먼저 나섰다. 비영리 공익재단인 청년재단은 현재 사회적으로 고립된 청년 20명을 돕고 있다. 그중 5명은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생활한다. 청년재단은 K2와 함께 매달 은둔형 외톨이 부모모임을 지원한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은둔형 외톨이 관련 법안은 두 개다. 2018년 말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3년마다 은둔형 외톨이 청소년 실태조사를 하도록 하는 ‘청년복지 지원법’ 개정안과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정신질환 실태조사를 할 때 은둔형 외톨이 현황도 함께 파악하도록 하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법’ 개정안이 있다. 윤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를 활용해 20~40대 잠재적 은둔형 외톨이가 21만 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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