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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신율의 정치 읽기]여당은 왜 선거제도(연동형 비례대표제) 개혁안에 찬성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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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홍영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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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대로 총선을 치르면 단독 과반수는 아예 불가능하다. 총 300석 중에서 잘하면 135석 정도를 얻을 것이라 본다. 어느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열심히 노력해 총선에서 과반수 승리를 하려고 생각하지, 애초부터 과반수 되기가 어려운 제도를 선택하겠나.”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은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단 ‘잘하면 135석’이라고 했는데, 지난 20대 총선을 놓고 볼 때 이런 예상은 좀 과하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에 상정된 선거제도 개혁안대로 선거를 치르면 더불어민주당에 불리할 것이라는 언급은 정확하다. 물론 자유한국당에도 불리하다. 선거제도 개혁안은 거대 정당에 결코 유리한 제도가 아니다. 반대로 군소 정당에는 불리하지 않은 제도다.

여당은 왜 불리함을 무릅쓰고 선거제도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려놨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결심하신 것이고, 우리 당은 20년 동안의 주장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홍영표 의원은 여당이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 개혁에 동의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물론 대승적 차원에서 자기희생을 감수하며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위해 결심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정도로 자기희생을 감내할 것이라면 왜 권력구조 개편은 빠뜨렸을까. 국민이 권력구조 개편을 원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펼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논리대로라면 국민이 선거제도 개혁을 원한다는 증거도 찾기 어렵다. 상정된 선거제도 개혁안은 상당히 복잡해서 일반 국민이 이를 이해하고 적극지지 혹은 반대하기란 무척 힘들다. 오히려 대통령제냐 의원 내각제냐가 훨씬 이해하기 쉽다.

권력구조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진정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를 살리려면 권력구조도 내각제로 바꾸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대표적 국가인 독일과 뉴질랜드가 모두 내각제를 권력구조로 채택하고 있다. 더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시도 이유가 다당제를 정착시켜 다양한 국민 의견을 제도에 반영하기 위함이라면 당연히 내각제 도입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다당제와 대통령제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를 하다 보면 궁극에 가서는 유력 후보 두 사람 간의 경쟁이 돼버린다. 여러 대선 후보가 나와도 결국은 후보 단일화나 연대를 통해 두 명의 유력 후보 간 경쟁구도로 귀결되고는 한다. 이 때문에 대선이 끝나면 유력 대선 후보를 배출하지 못한 정당은 거대 정당에 흡수되기 일쑤다. 이런 현상 때문에 대통령제에서는 다당제가 존속하기 상당히 힘들다. 반대로 내각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대부분 다당제다. 영국만이 예외다. 영국은 양당제 아래서의 내각제 실시 국가다. 영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내각제 국가가 다당제다. 이런 현상을 놓고 보더라도 ‘다양함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권력구조 개편을 먼저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권력구조 개편을 선거제도 개혁과 병행 추진해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이쯤 되면 왜 여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총대를 짊어졌는지 더욱 궁금해진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단지 추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언급하는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갖고 추론하는 것이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속으로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마지못해 찬성했다는 시나리오다. 이는 범여권 연대가 현재로서는 필수라는 인식을 여당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현재 정치구도에서는 바른미래당 일부와 민주평화당 그리고 정의당이 범여권이다. 여당 입장에서는 정국 운영에 있어 이들 정당의 도움이 필수적이기에 이들이 원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범여권이라는 단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용어다. 지난 4월 3일 재보선 당시 창원 성산 지역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간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여야 간의 후보 단일화다. 일반적으로 후보 단일화란 여당에 맞서는 야당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상식이다. 사전적 의미로 야당이란 권력을 잡고 있는 여당에 맞서 그 권력을 견제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후보 단일화는 여당 권력을 견제한다는 취지에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야당이 여당과 후보 단일화를 한다는 것은 사전적 의미의 야당이 취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현실에서 그런 단일화가 일어났고 내년 총선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이 같은 차원에서 여당은 ‘친여 성향 야당’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래서 이들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어 선거 개혁안에 대해 찬성한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여당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려면 의원정수의 대폭적인 상향 조정이 불가피하다. 그렇게 될 경우 국회의원 증원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국민 여론 역풍을 맞아 선거제도 개혁안이 물거품될 수 있다 계산할 수도 있겠다. 여론 역풍에 밀려 국회의원 수를 동결한 상태에서 선거제도 개혁안을 추진할 경우에는 선거제도 개혁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의원정수를 동결하면 지역구 의석 축소는 불가피하다. 자신이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선거구제 개편을 순순히 받아들여 통과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일단 선거제도 개혁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상정시키는 데 적극 협력했다 하더라도, 결국 이 개혁안이 통과될 가능성을 낮게 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더불어민주당이 진정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총선이 가까워진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면 여당은 과반은 고사하고 원내 제1당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조차 모른다는 초조감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한다면 ‘여당 친화적 야당’이 약진하는 게 오히려 좋을 수 있다. 즉, 경제 실정과 북한 비핵화 난항으로 현 정권 지지율을 지탱할 호재가 사라지면 차라리 차선책으로 이른바 ‘범여권’이라 부를 수 있는 야당을 약진하게 만드는 것이 자유한국당에 돌아갈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의문이 또 생긴다. 그럴 바에는 아예 합당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이도 일면 타당하지만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합당해서 같은 정당이 되면 힘들 때 함께 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여당 친화적 야당’을 그냥 밖에 존재하게 놔두고 이들을 약진하게 만드는 것이 위험 분산 차원에서 현명한 방법이다. 이런 상황을 가정하면 왜 더불어민주당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선거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는지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정치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을 터다. 하지만 정치란 치열한 권력 현상이라는 것이 정치학 일반의 기본이다. 정당의 존립 목적도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잡기 위한 것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국민 지지를 받아야 한다. 권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선거라는 제도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즉,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이겨야 하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이 때문에 정당들은 일정 부분 국민 의견을 반영하고 국민 여론에 민감하다. 이런 행동도 어디까지나 권력 획득 목적을 달성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즉, 권력을 잡기 위해 국민들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을 하겠지만, 그런 노력은 어디까지나 권력 쟁취를 위해 손해 보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권력과 멀어지면서까지 국민 뜻을 받들기란 현실 정치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을 기초로 왜 여당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처럼 보이는가를 추론해야 한다. 정치는 드러난 것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은 법이다. 정치가 빙산과 같은 이유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9호 (2019.05.22~2019.05.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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