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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탁현민 “남북 합작판 ‘태양의 서커스‘ 만들어 세계에 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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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행사기획 자문위원 인터뷰

김정은, 4·27 도보다리 ‘밀담‘서 “영어 잘 못해 트럼프와 만남 걱정“

경향신문

사표 수리 24일 만인 지난 2월23일 대통령행사기획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탁현민 위원은 지난 17일 “연예인·아티스트들에게는 특정 정치세력과 가깝다는 게 본인의 활동에 늘 독이 되기 때문에 꺼린다”며 “실제로 평양에서 열린 ‘봄이 온다’ 공연의 경우도 출연을 거절한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에 올라 8년간 일이 뚝 끊겼을 때”라고 덧붙였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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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대통령행사기획 자문위원(46·사진)이 “앞으로 남북 합작판 ‘태양의 서커스’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탁 위원은 지난 17일 서울 모처에서 경향신문과 한 단독인터뷰에서 “북한의 기예는 어려서부터 교육시켜 개개인의 기량은 훌륭한데 의상·소품·음향·조명·영상 수준이 높지 않고 스토리텔링이 없다”며 “북의 기예단에 남쪽의 기술·스토리텔링을 접목하면 상품성 높은 세계적인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5월부터 20개월간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2급)으로 일한 탁 위원이 지난 1월 말 청와대에서 나온 뒤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탁 위원은 “지난해 4·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도보다리에서 마주 앉았을 때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인간적인 속내도 드러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작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백두산 천지 방문에 대해선 “북측이 내내 답이 없다가 백두산에 오르기 바로 전날에야 확답을 해줬다”며 “부랴부랴 서울에 전문을 보내 남대문에서 옷을 사 공수하라 했고, 다만 대통령 내외의 코트는 혹시 몰라 미리 챙겼다”고 했다.

탁 위원은 여성혐오 논란에 대해선 “12년 전 내가 쓴 책의 표현과 관련해 비난을 하겠다고 하면 온전히 받아들이겠지만, 과거 어느 한때의 의식을 박제해 지금도 편협한 성의식을 갖고 있다고 공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 “예상은 5분, 실제 대화 30분…‘도보다리’ 진짜 연출자는 남북 정상”

경향신문

탁현민 대통령행사기획 자문위원(46)이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2급)으로 일한 기간은 2017년 5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약 20개월이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기업 총수들과의 호프 미팅, 스티브 잡스식 프레젠테이션 국정과제 보고대회, 신년 기자회견, 남북정상회담의 도보다리 산책 등 문재인 대통령을 빛낸 각종 이벤트의 중심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의 존재가 문재인 정부 초기 지지율을 견인하는 데 한몫을 톡톡히 했다는 데는 여야가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극심한 시련도 겪었다. 2017년 5월 그가 청와대 행정관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2007년 그가 쓴 책 <남자 마음 설명서> 등의 내용이 왜곡된 성 인식을 드러낸다고 하여 논란이 일었다. 그는 사과하고 해명했지만 여진은 남아 있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탁 위원은 밝고 건강해 보였다. 천성적으로 ‘자유인’인 터라, 엄격한 공직생활에서 마침내 벗어났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와의 대면 인터뷰는 지난 1월 그가 청와대에서 나온 직후 요청한 뒤 넉 달 만에야 이뤄졌다.

- 최근 제주대에서 문화 강연도 했던데, 이제 본격적으로 외부활동을 시작하는 건가요.

“일은 계속해왔어요. 청와대나 정부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활동을 묻는 거라면, 준비는 하고 있지만 그건 시간이 걸릴 거예요. 현재 제가 공무원 신분은 아니지만, 다른 자문 영역과 달리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개입하거나 실행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에요.”

의전비서관 안 시켜줘서 사표?

전 정권 8년간 ‘블랙리스트’…

처음부터 청와대 안 가려고 했다

24시간 대통령 수행해야 하는

의전비서관직은 나와 안 맞는 일


- 현 정권에선 정부 관련 일이 계속 있겠지만 앞으로는 생활인으로서의 밥벌이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겠네요.

“제가 블랙리스트 3관왕이잖아요(웃음).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의 문체부·국정원 블랙리스트에 다 들어가 있어 우스갯소리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말하곤 해요. 그 시절 8년간은 일이 뚝 끊겼어요. 그래서 제주도에 내려가 온종일 낚시만 하며 지냈어요.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죠. 덕분에 밥벌이·일거리 없음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상대적으로 단련돼 있어요.”

- 올 1월 말 사표가 수리 전까지 청와대에 수차례 사직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알아요. 하지만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고 언론에 밝히는 등 번번이 청와대에서 붙잡는 형국이었어요.

“처음부터 청와대에 안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홍보전문가이자 연출가인 제게 (청와대 업무는) 생경한 영역이라 자신이 없었고, 급여 등 객관적 조건도 안 좋으니까요. 특정 인물이나 세력과 가깝다는 이유로 8년간이나 배척당했는데, 정권이 바뀌면 또 무슨 일이 닥칠지 두려움도 있었고요. 하지만 사람마다 삶이나 가치관의 중심에 두는 게 있잖아요. 저는 그게 사람이에요.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 계시기 때문에 5~6개월만 해달라는 요청을 수락했고, 하고 싶은 일도 됐어요.”

- 그런데 왜 그렇게 청와대를 나오고 싶었습니까.

“처음부터 오래 할 생각이 없었고, 제 도리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재충전도 필요했고요. 사람들은 뭔가에 금방 익숙해져요. 대통령의 행사도 어느 시기가 되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줘야 해요. 저의 감성과 경험으로 문 대통령의 초기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대통령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면 다른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아야 해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새 술의 맛이 빛나죠.”

- 2018년 6월 처음 언론에 탁 위원의 사퇴 의사가 공개됐을 때 일부 언론에서는 의전비서관을 안 시켜줘 인사불만 때문에 사직서를 낸 것이라고 관측했어요.

“의전비서관은 24시간 대통령을 따라다녀야 해요. 저는 어떤 사람을 쓸지, 어떻게 기획할지 구상도 하고 연출도 하지만 의전비서관은 대통령을 수행하는 게 일이니까요. 그게 저랑 맞겠냐고요. 만약 청와대에 행사실장이라는 직책이 있으면 하겠다고 했겠죠(웃음).”

- 지난해 6월과 올 1월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사퇴 의사를 공개한 방식이 부적절했다는 시선도 많아요. 진퇴 문제는 청와대 안에서 해결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만둘 적당한 타이밍을 보고 있었던 것인데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번번이 뜻대로 안됐으니까요. 공개적으로 밝히게 되면 나오기 쉽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전자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몇 모금 깊게 빨아들이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내가 ‘왕행정관’? 맡은 일만 했을 뿐

여러 사람들 각자 일하는 청와대

특정인이 전권 휘두를 구조 아냐

여론·효용가치로만 따지지 않는

대통령 리더십 덕에 계속 일해


- 일부 언론에서 탁 위원을 가리켜 ‘왕행정관’이라 표현했습니다.

“왕행정관은 조선일보가 현 정부 공격을 위해 만든 프레임에 저를 넣으려고 쓴 표현인데, 그걸 다른 언론사들이 따라 쓰는 게 놀라웠어요. 청와대에는 수많은 비서관과 행정관이 각자의 일을 수행하고 있어요. 어느 특정인이 전권을 휘두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도 없고요. 가령 제가 경제나 국방정책을 결정할 수 있겠어요? 저는 제가 맡은 일만 할 뿐이에요.”

- 하지만 2017년 처음 논란이 불거졌을 때 여당 의원과 여성가족부 장관까지 탁 위원 경질을 요구했지만 청와대와 대통령은 끝까지 내치지 않았어요. 2018년 이후 탁 위원이 여러 차례 사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수용하지 않았고요. 문 대통령과의 인연이 그만큼 끈끈하고 신임이 두텁기 때문이란 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어떤 문제가 야기됐을 때 개인의 억울함보다 전체의 안위를 위해 사람을 잘라내는 방식으로 조직을 이끄는 보스가 있는가 하면, 실정법이나 내부 규정을 어기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을 인정하며 계속해서 쓰는 리더가 있어요. 문 대통령은 후자라고 생각해요. 여론이나 효용가치만 놓고 사람을 내치거나 판단하시지 않아요. 인간적인 정리(情理)가 있으시죠. 하지만 만약 제가 법이나 규정의 선을 넘은 행위를 했다면 내보내셨을 거예요.”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하고 며칠 만에 대통령과 참모들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사진부터 이전 정부와는 확실히 차별화됐다. 모든 대통령 행사마다 메시지가 분명하면서도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의 친근한 이미지가 부각됐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조차 탁 위원을 가리켜 “기가 막히게 쇼를 한다. 그건 좀 배워야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 청와대 재임 당시 대통령 행사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구체적인 업무 영역과 같이 일한 팀의 인적 구성, 논의구조, 업무 방식 등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역할은 크게 3가지예요. 하나는 대통령의 외교와 순방행사 준비, 둘째는 신임장·임명장 수여 등 경내 행사, 그리고 기념식·회의 등 대통령이 참가하는 외부의 모든 행사죠. 외교와 순방은 외교부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청와대에 들어와 있어서 같이 준비해요. 가끔 언론에서 외교를 모르는 별정직들이 들어와 문제가 생긴다는 식으로 비판하는데, 잘못된 얘기죠. 저는 행사 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현장답사를 반드시 해요. 인원 등 인적 구성은 기밀사항이에요.”

- 행사를 기획·연출할 때 특별히 강조하고자 한 대통령의 이미지가 있습니까.

“사람들은 자기의 입장과 같으면 감정이입을 하고, 거기서 진정성을 발견하면 감동을 해요. 이 두 가지가 연출로 가능할까요? 2017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유가족 대표로 편지를 읽고 뒤돌아 나가는 여성을 대통령이 뛰어가 안아주는 장면에 국민들은 감동했어요. 그 여성을 찾아 편지를 읽게 한 것까지는 연출이지만 이후 대통령의 행동은 연출이 아니었어요. 제가 배운 게 많아요. 청와대에서 일한 시간이 성장의 시간이었죠. 연출하지 않는 것만큼 훌륭한 연출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연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연출

5·18기념식 ‘편지’는 연출이지만

유가족 안아준 건 대통령의 ‘성품’

‘도보다리’ 대단한 연출 아니지만

30분간 대화 나눈 두 정상은 대단

진짜 감동은 연출로 생기지 않아


경향신문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에 마련한 벤치에 앉아 대화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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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두 정상이 도보다리 끝 벤치에 앉아 30분간 밀담을 나누는 장면이 세계적인 화제가 됐어요. 그 장면의 구상은 어떻게 나왔나요.

“사전답사를 위해 판문점에 갔을 때 JSA(공동경비구역)에서 대대장을 지낸 분께 전화를 걸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어디냐고 물었어요. ‘도보다리’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 두 곳을 추천받았는데 두 정상이 점심식사 후 공동식수할 장소가 도보다리 바로 옆이었어요. 김정은 위원장이 애연가인데 오래 참았을 테니 두 분이 이동하다가 잠시 앉아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하자고 생각했죠. 시간 흐름상 자연스러운 것이니 그것 자체는 대단한 기획이 아니에요. 정말 훌륭했던 것은 두 정상이 30분이나 앉아서 대화한 거죠.”

- 당초 얼마쯤 벤치에 앉아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요.

“5분, 길어야 10분 정도요. 그래서 굳이 도보다리 연출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두 정상이라 할 수 있어요. 만약 제가 의도적으로 연출하려 했고, 그렇게 두 분이 오래 앉아 계실 줄 알았다면, 각도에 따라 잡을 수 있도록 적어도 카메라 3대쯤은 설치했겠죠. 그런데 롱테이크로 잡을 수밖에 없는 카메라 한 대만 설치돼 있었잖아요.”

-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한 것은 두 정상이 도보다리 벤치에 앉아 무슨 밀담을 나눴을까예요.

“행사가 끝난 후 대통령이 제게 해주신 말씀 중 전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하자면,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북·미 정상회담(2018·6·12)을 앞두고 있는데 영어를 잘 못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독어는 잘한다’면서요. 당시 두 분이 상당히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셨다고 해요.”

■ 현송월 긴 설득 끝에 남북협연 성사…가수 서현에 “2시간 내 나와달라”

경향신문

2018년 10월21일 탁현민 당시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경찰의날 행사를 위해 독도 현장에 가서 독도경비대와 문재인 대통령의 영상통화 및 현장연결 리허설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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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회담 ‘백두산 방문’은 각본?

남측 제안 응답 않던 북 ‘급결정’

대통령 내외 코트는 챙겨갔지만

수행단 옷은 남대문서 공수받아


- 5개월 후 열린 평양 남북정상회담(2018·9·18~20) 마지막 날에 백두산 천지 방문이 깜짝 이벤트가 아니라 잘 짜인 각본 아니냐는 의심이 일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 내외가 어떻게 겨울코트를 준비해 갔겠느냐는 거죠.

“우리 측은 처음부터 평양 회담 때 백두산에 가면 좋겠다고 북측에 요청했지만 답이 없었어요. 날씨와 이동수단의 문제 때문인 것 같았어요. 그러다 우리가 평양에 들어간 후 백두산에 오르기 바로 전날 확답이 온 거예요. 춥다고 하니 부랴부랴 서울에 전문을 보내 남대문에서 옷을 구해 비행기로 보내라고 했죠. 수십명의 수행단에 북한 옷을 입게 할 수도, 고가의 특정 브랜드를 입힐 수도 없으니까요. 다만 대통령 내외의 코트는 혹시 몰라 옷을 전담하는 비서들이 미리 챙긴 거예요.”

- 김정은 위원장과는 직접 대화를 해봤습니까.

“판문점 정상회담 행사가 모두 끝나고 김 위원장이 남측 인사들과 악수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게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고맙다’고 했어요. 리설주 여사도 같은 말을 했고요. 우리 쪽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나중에 현송월(삼지연관현악단 단장)에게 들은 바로는 김 위원장이 판문점 행사의 여러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면서 특히 환송행사 영상쇼를 상당히 놀랍게 봤다고 말했다고 해요.”

‘까칠한 첫인상’ 현송월 단장

서울공연 ‘남북 컬래버’ 거부에

대기실 쫓아가 설득 끝에 성사

무대를 아는 ‘좋은 친구’로 기억


- 현송월 단장은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140명의 단원을 이끌고 왔을 당시 처음 만난 거죠? 첫인상이 어땠나요.

“꽤 까칠했어요(웃음). 삼지연관현악단이 강릉 공연 후 2차로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날 오전에 제가 찾아갔어요. 앞서 통일부와 국정원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남한에서 열리는 북한 예술단 공연을 관람하는 거니, 한 무대 정도는 남쪽 가수가 컬래버를 하도록 해달라 요청했지만 현 단장이 설득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북한은 그 정도의 결정은 위에서 해줘야 하는데, 공연이 임박해 공식 채널을 통한 상부와의 협의가 불가능했던 거죠.”

- 그런데 어떻게 설득했나요.

“제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어 찾아갔는데 현 단장은 난색을 표하며 저를 계속 피하더라고요. 대기실에 들어가 안 나오길래 쫓아 들어갔어요. 솔직히 약간 겁도 났어요. 현 단장이 무대영상에 대한 의견 마찰로 중국 공연을 접고 돌아간 적이 있었다는 걸 알았거든요. 여하튼 현 단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 공연을 본다고 생각해보라며 계속 설득했고, 결국 현 단장이 ‘우리의 소원’을 남한 가수가 같이 부르는 것으로 양보했어요. 서현에게 전화해 ‘정말 미안한데 2시간 만에 머리 하고 나오라’고 부탁했죠.”

- 탁 위원은 현 단장과 201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봄이 온다’ 공연도 같이 준비했어요. 현 단장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데, 어떤 사람인가요.

“우리 쪽 정보로는 결혼을 했고 자녀가 둘이며 저보다 한두 살 아래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요. 음악을 하는 플레이어라 무대를 잘 알기 때문에 저와는 통하는 게 많았어요. 저는 진짜 좋은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해요.”

- 대통령 행사에 참가하는 연예인이나 아티스트 선정은 어떻게 하나요.

“대중들로부터 인정받거나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른 사람 순으로 선정하죠. 그런데 그분들이 무슨 특혜라도 받는 양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티스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과연 특정 정치세력과 가깝게 보이는 게 득일까요? 제게 블랙리스트 트라우마가 있듯 한국 연예계는 오랫동안 친정부 혹은 특정 정치세력과 가깝다는 이미지가 본인 활동에는 늘 독이 됐어요. 그래서 꺼리고요. 평양에서 열린 ‘봄이 온다’ 공연도 출연 제안을 거절한 가수가 많았어요.”

- 의외네요.

“일례로, 참 가슴 아픈 일인데 대통령 행사에 몇 번 초청해 역할을 잘해준 한 젊은 아티스트도 이번 판문점 1주년 행사 출연을 부탁했더니 간곡히 거절했어요. 지난해 북한 관련 행사에 출연한 후 빨갱이 새끼라는 등 악플에 시달리며 상처를 받았더라고요. 그러니 특혜, 유착 이런 말은 성립될 수 없어요. 개런티를 많이 주는 것도 아니어서 BTS도 거의 노개런티임에도 헌신적으로 ‘한·불 우정콘서트’에 참가한 거예요.”

경향신문

2018년 4월3일 탁현민 당시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합동공연 ‘봄이 온다’ 리허설을 남측 윤상 음악감독, 북측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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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이 2018년 10월 열기로 했던 북한 예술단의 ‘가을이 왔다’ 서울 공연이 무산됐어요.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행사도 결국 북측의 답이 오지 않아 한국·미국·일본·중국 아티스트가 판문점에서 모여 연주하는 남쪽만의 반쪽 행사로 끝났고요.

“많이 아쉽죠. 저는 마지막 곡이 연주될 때까지 어쩌면 북측 예술단이 내려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북한과 우리의 큰 차이점은 우리는 의사결정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번복을 자꾸 하고,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방침을 정해주지 않는 한 임의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결정을 못한다는 점이에요. 대신 결정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대로 가죠. 오늘이라도 북측에서 전문이 와서 서울에서 ‘여름이 왔다’ 공연을 하자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 야당에서는 탁 위원의 연출을 “쇼”, 심지어 “싸구려 쇼”라고까지 폄훼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제가 ‘고급진’ 연출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웃음). 대중정서에 부합하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 말이 치명적으로 아프지도 않고요. 저를 쇼쟁이라고 칭하는 것은 연출을 훌륭하게 잘했다는 말 아닌가요? 오히려 쇼를 왜 그렇게밖에 못했느냐고 하면 화가 나겠죠.”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선 어떻게 연출하면 효과적일 것 같나요.

“영업비밀인 걸요(웃음). 저라면 그분들의 의지가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굳이 제가 뭐…. (반어법적으로) 지금 아주 잘하고 계시는 것 같고, 계속 그렇게 하시면 좋겠어요(웃음).”

민주당 홍보소통위원장 하마평?

공식 제안받은 적 없지만

‘대선·총선 2번’ 도리 다했다 생각

직접 주자? 잘 못하는 일은 안 해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이 탁 위원을 당 홍보소통위원장으로 기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은 즉각 날선 반응을 보였다.

-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탁 위원을 당 홍보소통위원장에 강력히 추천했던 걸로 알아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의 전선을 가다듬는 차원일 텐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공식적으로 제안을 받은 적이 없어요. 하지만 보도가 나온 다음에 생각은 해봤죠. 그런데 제가 거기서 일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도 못 찾겠더라고요. 저는 두 번의 대선과 한 번의 총선에서 이미 유세기획, 후보의 홍보기획, 콘텐츠기획을 담당했었고 지난 총선에서는 민주당 홍보위원회 부위원장도 맡았었어요. 제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해요.”

- 비공식 루트로라도 양 원장은 부탁했을 것 같은데요.

“그건 노코멘트예요.”

- 그러면 공식적인 요청이 오면 거절하겠군요.

“고민은 하겠죠. 문 대통령께는 대통령이 되셔야 한다고 오랫동안 으샤으샤했으니 부채의식 때문에 제가 청와대에 들어갔지만, 글쎄요. 물론 큰 틀에서는 민주당이 성공해야 대통령의 후반부 집권이 탄탄해지고 더 넓게 보면 한국 사회에서 진보세력들이 자리를 잡고 나라가 좀 더 이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은 알겠어요. 하지만 다 떠나서 제 개인을 놓고 보면 과연 그 일을 했을 때 제 삶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게 되잖아요. 이유를 못 찾겠다는 거죠.”

- 본인이 직접 총선에 주자로 나설 생각은 없습니까.

“(푸~ 하고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피식 웃더니) 사람은 자기가 잘하는 걸 해야 해요. 잘하지도 못하는데 하고 싶다고 해서는 안되죠. 하고 싶은 걸 잘하면 제일 좋고…. 저의 경우는 하고 싶은 걸 잘하는데, 왜 다른 일을 해요?(웃음)”

- 김종천 의전비서관이 음주운전으로 사퇴한 데 이어 김의겸 대변인도 부동산 투자 논란으로 사퇴했어요. 청와대 기강이 너무 해이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아요.

“공적으로는 잘못한 일이고 그래서 두 사람이 책임지고 물러났어요. 그게 전체적으로 청와대의 기강해이라고 지적한다면 저는 통감한다고, 동료로서 책임의식을 느낀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저와 김 비서관, 저와 김 대변인의 인간적 관계를 놓고 보면 저의 얘기는 달라질 수 있어요. 그분들이 왜 그랬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아니까요.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죠.”

‘남자 마음 설명서’ 나도 부끄러워

사과하고 해명했지만 비난 계속

여성 비하 ‘박제된 비판’ 아쉬워

여성신문 소송은 최소한 방어권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12년 전 쓴 책에서 비롯된 ‘여성 비하’ 논란을 묻지 않을 수 없다. 2007년 그가 쓴 책 <남자 마음 설명서>와 4명의 남녀가 7개월 동안 나눈 대화를 다른 사람이 정리해 엮은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 등에서의 일부 표현이 그가 선임행정관으로 내정된 2017년 5월 문제가 됐다. ‘왜곡된 성 의식’ ‘여성혐오’라는 비난이 일었다. 그는 사과하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와 관련한 논란은 수시로 재점화되곤 한다.

- 한국 사회에 ‘미투’가 한창이던 2018년 3월 페이스북을 통해 “저로서는 여기 있는 동안은 일전에 밝힌 사실과 사과 외에 저를 위한 변명이나 해명을 할 생각이 없다. 나의 명예, 나의 진실, 나의 주장은 여기서 나갈 때 시작할 생각”이라고 적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가요.

“<남자 마음 설명서>는 제가 쓴 책이니 비난하겠다고 하면 온전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다만 굳이 변명하자면, 12년 전 출간된 책이에요. 저는 공직을 맡기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강연·공연·트위터에서 그 책을 쓴 게 부끄럽다고 밝혔어요.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는 달라요. 제가 직접 쓴 부분은 짤막한 후기뿐이고, 나머지는 ‘나쁜 남자’라는 설정된 캐릭터에 따라 발언한 거예요. 남의 원고를 고칠 수 없어 ‘새빨간 거짓말도 있고 해서는 안될 말도 있고…’라고 후기로 남긴 거고요. 책에 공저자로 돼 있으니 책임져야 한다면 후기 내용도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요?”

- 2017년 당시 사과와 해명을 하면서 이들 책이 나온 2007년과는 자신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어요.

“사람의 의식은 짧은 시간에도 수시로 바뀐다잖아요. 그럼에도 과거 어느 한때의 의식을 박제해 지금도 편협한 성 의식을 갖고 있다고 공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저도 어느 한때의 모습이나 한 단면만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저는 사람을 통해 의식의 변화를 많이 겪었어요. 제가 더 나빠지지 않고 이만큼 살 수 있게 된 데는 특히 신영복 선생님과 문재인 대통령 두 분의 영향이 커요.”

그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분들이 지금까지도 12년 전 제 책의 내용이 오늘날 여성혐오를 부추겼다고 주장한다면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과장이 심하다”고 말했다.

“저희 아버지가 며칠 전 간암 판정을 받으셨는데, 의사가 ‘아버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 보다’라고 해요.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나 때문이구나’였어요. 제가 책과 관련해 온갖 욕을 먹으니 아버지 맘이 어땠겠어요? 하지만 지금 몇몇 여성운동단체의 주장과 논리는 제가 ‘우리 아버지의 간암은 여성단체 때문에 생겼다’고 억지 부리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 2017년 8월 여성신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지난해 1심에서 승소해 1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던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여성신문은 “제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입니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인터넷 홈페이지와 SNS에 게재했고, 탁 위원은 이로 인해 심각한 명예훼손을 입었다며 소를 제기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에요. 재판의 최종적인 결과에 대해 승복할 것이고 더는 논란이나 논쟁이 되지 않길 바라요. 12년 전 제 글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하려고도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사실도 의도도 왜곡되게 표현하여 저를 혐오하게 만드는 언론에 대해서 저도 최소한의 방어권을 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탁 위원이 정치권과 연을 맺은 것은 2009년 서울 성공회대에서 열린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를 기획하고 연출하면서다. 그는 2011년 8월엔 문 대통령 자서전 <운명>의 북콘서트 연출을, 2012년 대선 때는 유세기획을 했다. 2016년엔 문 대통령·양정철 전 비서관과 셋이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도 했다.

- 지난 3월12일 양정철 위원장,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함께 도쿄에 다녀왔죠. 거기서 두 사람이 파안대소하는 사진을 SNS에 올려 주목받았어요. 두 사람이 경쟁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리려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사진 찍어 올린 거예요. 말이 필요 없잖아요.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 그게 연출한 것 같나요? 눈에 보이는 그대로 판단하면 돼요.”

- 자문위원 일 외에 앞으로 뭘 하며 살아갈 생각인가요.

“대북 관련 행사를 하면서 기획자로서 북쪽에서 크게 매력적으로 느낀 콘텐츠가 두 개 있어요. 하나는 5만~6만명이 한 덩어리가 되어 펼친 집단체조이고 또 하나는 기예(서커스)예요. 북한의 기예는 어려서부터 교육시키니까 개개인의 기량은 뛰어난데 의상·소품·음향·조명·영상 수준이 높지 않고 스토리텔링이 없어요. 저는 남북 합작으로 ‘태양의 서커스’ 같은 세계적 상품을 만들고 싶어요. 북쪽 기예단의 기량과 남쪽의 기술 및 스토리텔링을 접목하는 거죠. ‘태양의 서커스’가 1년에 여러 팀으로 나뉘어 전 세계 투어로 버는 수익이 BTS만큼일 거예요.”

- 남북관계가 경색되지 않았을 때, 또 제재도 풀려야 가능한 일 아닌가요.

“물론이에요. 하지만 이 아이템은 북한에서 전향적으로 해보자고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판문점 공연을 계속해볼 생각이에요.”

- 이유는요.

“이번 1주년 기념행사 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첼리스트가 e메일을 보내왔어요. 그분도 판문점 무대에 서고 싶었는데 불러주지 않아 아쉬웠다면서 독일이 통일되기 전 유럽과 미국, 아시아의 여러 아티스트들이 독일 통일의 필요성과 유럽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공연을 수차례 했다고 해요.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독일 통일에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거예요.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분쟁현장을 보고 그곳에서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아 연주함으로써 세계인의 여론도 환기시킬 수 있다는 말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오전 9시30분부터 시작한 탁 위원과의 인터뷰는 점심도 거른 채 4시간40분 동안 쉼없이 이어졌다. 그의 바람대로 남북 합작판 ‘태양의 서커스’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키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쥐고 있는 셈이다.

박주연 오피니언팀장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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