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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오스트리아도 '러시아 스캔들'… 부총리 사퇴·조기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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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당 이끄는 슈트라헤 부총리, 러 재벌 후원받고 사업권 약속"

독일 언론 슈피겔, 동영상 공개

오스트리아 정치권이 '동영상 한 편'으로 순식간에 격랑에 빠져들었다. 연정 파트너로서 부총리이자 극우 성향 자유당 대표를 맡고 있는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가 러시아 측으로부터 자금을 후원받고 이권을 몰아주기로 약속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지난 17일(현지 시각) 공개했다. 슈트라헤는 동영상이 공개된 이튿날 "멍청하고 무책임한 실수였다"며 부총리직을 사퇴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여론의 비난을 감당할 수 없어 즉각 연정(聯政) 파트너인 자유당과 절연하겠다고 선언했다. 쿠르츠 총리는 자신이 이끄는 국민당만으로는 과반수에 미달하기 때문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3~26일 치러질 유럽의회 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치권이 요동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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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연정 허문 ‘러시아 스캔들’, 몰카에 딱 걸렸다 -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지난 17일(현지 시각)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맨 오른쪽) 오스트리아 부총리가 2017년 7월 스페인 이비사섬의 한 빌라에서 러시아의 한 재벌 조카인 여성(위 사진에는 보이지 않음)을 만나 “재정 후원을 해주면 정부 사업을 몰아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맨 왼쪽은 요한 구데누스 전 자유당 부대표이고 가운데는 구데누스의 아내다. 영상 공개 이후 슈트라헤는 사퇴했고,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슈트라헤의 자유당과 연정을 끝내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슈피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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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총선에서 당시 32세였던 쿠르츠가 이끄는 국민당은 돌풍을 일으키며 원내 1당이 됐다. 하지만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쿠르츠는 극우 성향 자유당에 손을 내밀어 연정을 구성했다. 1956년 나치 추종 세력이 모여 창당한 자유당은 처음으로 집권 세력이 됐다. 우파 국민당과 극우 자유당이 한 몸이 되면서 오스트리아는 오랜 중립국 행보를 유지하던 과거와 대외 기조가 달라졌다. 친(親)러시아·반(反)EU 성향을 뚜렷하게 보여주면서 서유럽과 마찰을 빚었다. 그러던 도중 슈트라헤 부총리가 러시아와 결탁했다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오스트리아는 물론 유럽 정치권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슈피겔이 공개한 동영상은 오스트리아가 총선을 치르기 3개월 전인 2017년 7월 지중해의 스페인 휴양지 이비사섬의 한 빌라에서 찍힌 것이다. 5명의 남녀가 샴페인을 마시는 가운데 동영상은 슈트라헤와 러시아 재벌의 조카라고 자신을 소개한 금발의 젊은 러시아 여성에게 포커스가 맞춰졌다.

이 여성은 슈트라헤에게 "은행에 예치하기 곤란한 비밀 자금 2억5000만유로(약 3337억원)를 오스트리아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특히 이 여성은 "(오스트리아 최대 일간지) 크로넨 자이퉁을 인수하고 싶다"고 했다. 슈트라헤는 "적극 도와주겠다"며 "우리 당에 (금전적인) 후원을 해주면 카지노 사업권을 주고 정부가 발주하는 고속도로 건설공사도 몰아주겠다"고 했다. 러시아 측이 서방국가 선거에 개입하고 극우정당들을 후원한다는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슈피겔은 "단순히 이권을 약속한 것뿐 아니라 슈트라헤가 부총리가 되면서 자유당이 오스트리아 정보기관으로부터 받은 보고가 러시아로 흘러 들어갔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심각한 사건"이라고 했다. 오스트리아 정보기관이 유럽 각국의 정보기관들과 주고받은 기밀들을 크렘린궁에서 받아봤을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자유당이 러시아 자금으로 총선을 치르려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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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오스트리아 부총리가 18일(현지 시각) 수도 빈에 있는 총리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왼쪽 사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전날 슈트라헤 부총리가 러시아 재벌의 조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에게 ‘재정적 후원을 해주면 정부 발주 사업을 몰아주겠다’고 말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면서 비난이 일자 슈트라헤는 부총리직을 사퇴했다. 슈트라헤가 사퇴하기 전 오스트리아 시민들이 18일 총리 청사 앞에서 ‘슈트라헤 당신은 네오나치다’라는 문구가 쓰인 팻말 등을 들고 슈트라헤 퇴진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오른쪽 사진).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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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서방국가 선거에 개입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2년에 걸친 수사 끝에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은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뮬러 특검팀은 러시아 측이 소셜미디어에서 가짜 정보를 유포하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 진영의 컴퓨터를 해킹해 클린턴의 이메일 내용을 위키리크스를 통해 유포시켰다고 밝혔다.

2016년 이탈리아에서는 친러 성향 인터넷 사이트들과 극우정당인 동맹당의 홈페이지가 같은 서버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돼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동맹당은 1991년 창당 무렵부터 크렘린궁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오는 23~26일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도 러시아 측이 여론 조작을 자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12일 보안업체 '세이프가드사이버' 자료를 인용해 온라인에서 EU(유럽연합)를 음해하고 극우정당들의 거짓 주장을 퍼 나른 러시아 측 소셜 미디어 계정을 6700개가량 발견했으며, 이들이 올린 게시물은 최대 2억4100만명에게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러시아의 목표는 EU의 결속을 와해시키고 유럽 내부의 긴장을 조성해 러시아를 지지하는 사람을 늘리려는 것"이라고 했다.




[포토]오스트리아도 '러시아 스캔들'…부총리 사퇴, 조기 총선 실시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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