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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정용덕칼럼] 개헌과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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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 권력 분산 위해 / 일각 국회서 총리 복수추천 주장 / 야당과 실질적인 협치 이루려면 / 국회 합의로 1명만 추천 더 나아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정당 간의 갈등이 해소될 기미가 없다. 이 안타까운 상황에 즈음해 개헌 논의의 불씨를 살리자는 여론이 있다. 이를 테면 중진 정치학자 P 교수와 중진 언론인 S 기자가 각각 쓴 최근 칼럼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얼어붙은 정국을 풀기 위해, 그리고 선거법 개정보다 더 중요한 과제인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분산을 위해 개헌 논의를 연계하자고 한다. 사뭇 설득력 있는 제안이다.

다만, 이러한 논의가 정치 그 자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차원을 넘어서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정치든 행정이든 그것의 궁극적인 존립 목적(소위 ‘내적 선’)보다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외적 선’)을 둘러싸고 논의가 전개되기 쉽다. 현실적으로 그 수단에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인이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은 궁극적으로 좋은 정책이 만들어지고 시행될 수 있도록 이뤄져야 한다. 선거법이든 헌법이든 그것을 바꿈으로써 정책 결정과 집행에 어떠한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한 이유다.

세계일보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행정학


위의 두 논객은 이 시점에서 개헌 논의가 필요하며, 그 논의 과정에서 다뤄야 할 핵심 의제로 국무총리 선정 방식에 초점을 둘 것을 제안한다. 더 나아가 국회가 두 사람의 국무총리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중 한 사람을 임명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점에서도 의견을 같이한다. 그런데 이렇게 바꾸면 현재와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수행해온 가장 중요한 역할은 대통령을 보호하는 일이다. 소위 ‘방탄조끼’ 기능이 그것이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 대통령제이면서도 국무총리를 두는 애매모호한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이 기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중요한 일은 모두 대통령(청와대)이 도맡아 하되, 해결하기 어렵거나 해결하더라도 생색나기 어려운 문제는 국무총리(국무조정실)에게 소위 ‘뱉어 내는’ 식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 졌다. 그러고는 정책 실패가 발생하는 경우, 심지어 대통령이 결정한 경우에도 국무총리를 갈아치웠다. 지난 70여 년간 들고난 정권의 특성과는 상관관계 없이 이 방식은 유지됐다.

만일 국회가 두 명의 후보를 추천하게 된다면, 여야 성향의 정당 혹은 정당 그룹이 각각 그에 친화적인 인사를 한 명씩 추천할 것이다. 그 가운데 대통령은 여당이나 여당 성향 정당그룹의 선호가 반영된 인사를 임명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국회동의 외에 민심을 감안해서라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자신의 ‘수족’을 임명하기는 힘들었다. 대신에 얼마간 사회적 명망이 있는, 그리고 대개는 중도적 성향의 인사를 임명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상징정치의 ‘거품’을 더 만들어 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허울만 좋은 명망가보다는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동지’를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역할도 주고, 그 역할에 대한 책임도 지도록 하는 것이다. 국회가 추천한 두 명의 후보 중 대통령이 골라 임명하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이런 변화가 다소 생길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야당의 행정부에 대한 협조를 기대하기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국회가 후보를 한 사람만 추천하도록 바꾸는 편이 오히려 낫다. 대통령은 한두 차례 거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되 반드시 국회가 합의해서 추천하는 인사를 임명토록 하는 것이다.

과거 일사불란한 대통령 리더십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여소야대’ 정국의 경우를 우려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소야대일수록 오히려 야당이 추천하는 인사가 국무총리로 임명돼 행정부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 난무하는 온갖 갈등을 제도 정치권으로 끌어들이고, 그것을 한 단계 더 핵심 행정부로 연계시켜 국가정책에 녹여 담아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구호 차원의 공허한 협치가 아닌 실질적인 협치가 이루어지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국무총리를 배출한 야당이 궁극적으로 정치적 책임도 함께 지는 책임정치도 기대해 봄 직하다.

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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