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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설왕설래] 버스 준공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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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50∼60대 장년층에게 시골 버스는 아련한 추억이다. 1970년대만 해도 시골 마을에서는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시골 통학버스는 늘 콩나물 시루여서 버스 안내양이 학생 손님을 강제로 밀어넣은 뒤 출발 신호로 “오라잇(all right)∼”을 외치곤 했다. 당시 버스 사업자는 지역 유지 행세를 했다. 요즘은 승객이 줄어 하루 2∼3편으로 운행횟수를 줄인 채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많다.

버스 회사들이 수익성만 추구하다 보니 수요가 많은 일부 지역에만 노선이 편중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오지에는 버스가 들어가지 않거나 배차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2004년 7월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도입한 버스 준공영제는 대중교통 이용 환경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서울 전역에 노선이 촘촘히 깔리면서 버스 이용이 훨씬 편리해졌다. 버스환승 제도가 도입되면서 추가 비용 부담 없이 수차례 버스를 갈아타고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지난주 버스 대란을 막을 수 있었던 카드 중 하나가 버스 준공영제 확대 시행이다. 버스 준공영제는 버스 운행을 민간 기업에 맡기고 운영에 따른 적자를 재정으로 보전해주는 제도다. 현재 서울, 부산 등 7개 광역자치단체와 경기 등 일부 광역버스 노선에서 시행 중이다. 취약 지역까지 노선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는 돈이다. 지난해 지자체들이 버스회사에 지원한 예산 규모는 모두 1조930억원에 달한다. 서울시의 준공영제 실시 첫해 지원금은 820억원이었으나 지난해는 5400억원으로 6배 넘게 뛰었다.

서울 41개 시내버스 회사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보니 25개사가 순이익의 약 70%를 배당(197억원)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시의 지원을 받아 적자 신세를 면하는 업체들의 배당 대부분이 소수 주주에게 집중됐다. 친인척을 유령 직원으로 등록해 자금을 빼돌리고, 장부를 조작해 부정 지원금을 타가기도 했다. 감사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업체들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것이다. 세금으로 ‘자손만대’ 흑자를 보장받는 ‘버스 족벌’을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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