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세계타워] 새로운 보수 이미지 필요한 황교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장외 투쟁으로 입지 강화 불구 / 이명박·박근혜 행보 답습 한계 / 포용력 부족·지역감정 유발 등 / 현재 모습으론 국민 기대 못미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7일부터 시작한 장외 투쟁 ‘국민 속으로 - 민생투쟁 대장정’을 통해 야당 대표의 입지를 톡톡히 다지고 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발해 시작된 장외 투쟁에서 황 대표는 지난 17일까지 부산, 대구 등 영남과 대전 등 충정 지역을 돌았다. 1700㎞가 넘는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오는 24일까지 전라와 강원 지역 등을 돌고 장외 투쟁 일정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잡혀있다.

황 대표는 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좌파 독재를 막아내겠다”고 외쳤고, 지지자들은 “황교안 대통령” “황교안을 청와대로” 등의 구호로 화답했다. 정치 입문 후 야권 차기 대선 후보 중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시작된 장외 투쟁을 통해 대선 주자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셈이다.

세계일보

이귀전 정치부 차장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고, 지난 2월 말 한국당 당 대표로 선출되는 등 현재까지 황 대표의 정치 행보엔 이렇다 할 장애가 없었다.

냉철한 관료 이미지를 안고 있던 황 대표는 정계 입문 후 장외 활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보였다. 대표 당선 후 한 달여 만에 치른 보궐선거와 이후 장외 투쟁 등으로 황 대표는 관료 이미지를 탈피하고 ‘권력 의지’를 대중에 각인하고 있다.

반면, 정치인으로 본격적인 행보가 이어지면서 그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지지층 결집을 노린 장외 투쟁에서 황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과거에 지적받은 행보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어서다. 두 전직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어두운 그림자가 황 대표에게 그대로 투영돼 더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 신학대학에 다니며 전도사가 됐을 정도로 황 대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란 사실은 많이 알려진 얘기다. 당 대표가 된 후 처음 맞은 지난 12일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서 황 대표는 합장을 하지 않고, 아기 부처를 목욕시키는 관불의식에서 이름이 호명되자 손을 저으며 거부했다. 지난 3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과 만난 자리에서도 합장하지 않고 악수로 인사를 한 바 있다. 당 대표로 불교 행사에 참석했음에도 개인적 종교 신념을 내세우는 포용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서울시장 재임 때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말로 비판받은 바 있다.

지역주의를 넘어서기보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듯한 모습도 부각됐다. 황 대표는 ‘5·18 폄훼 발언’을 한 의원들에 대한 징계를 마무리 짓지 않은 상태로 지난 3일 광주에 내려갔다가 시민들이 뿌린 물 세례를 받았다. 보름이 지나 다시 찾은 광주에서도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으며 5·18기념식장에 입장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런 상황이 예상됐음에도 “광주시민의 아픔 알고 있다”며 광주에 내려간 황 대표의 행보는 진정성 대신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농후하다. 실제 5·18기념일에 광주를 찾은 보수단체가 시민들을 욕하고 ‘부산 갈매기’ 노래를 부르며 지역감정을 유발하려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역감정을 정치에 악용했던 허태열·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고, 이명박정부 땐 국정원이 직원 등을 동원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댓글을 올리는 등 정권 유지를 위해 지역감정을 악용한 바 있다.

황 대표는 또 공안 검사였던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문재인정부를 ‘좌파 독재 정부’라며 이념 공세를 펴고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한 황 대표는 수시로 “미래 향해 나아가자”고 말한다. 그의 행보에선 미래보다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이념 공세를 펼쳤던 두 전직 대통령의 어두운 행보가 먼저 떠오른다. 같은 당 홍준표 전 대표까지 “자랑스러울 것 없는 5공 공안검사의 시각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야당 정치 지도자상을 세워야 한다”고 황 대표 행보를 지적한 이유다.

두 전직 대통령은 그래도 어두운 모습을 선거를 앞두고는 최대한 감췄다. 대신 경제 살리기, ‘신뢰의 정치’란 이미지를 각각 앞세워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황 대표에겐 새 이미지가 필요하다. 현재의 모습으론 새로운 보수를 기대한 이들을 충족시키긴 힘들어 보인다. 황 대표는 ‘권력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새 이미지가 무엇이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귀전 정치부 차장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