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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경향시선]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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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도 봄이지만

영산홍은 말고

진달래 꽃빛까지만

진달래꽃 진 자리

어린잎 돋듯

거기까지만

아쉽기는 해도

더 짙어지기 전에

사랑도

거기까지만

섭섭기는 해도 나의 봄은

거기까지만

정희성(1945~)

경향신문

연두는 새로 갓 나온 잎의 빛깔이다. 연한 초록의 빛깔이다. 맑은 초록 혹은 조금은 덜 짙은 초록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시인은 당신의 봄이 연둣빛 거기까지만 이르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산홍이 아직 피지 않은, 진달래꽃이 겨우 막 피는 그 봄의 첫머리까지만 닿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도 그 정도와 그 범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연두의 빛깔 거기까지만 당신의 봄을 펼치려는 것일까. 아마도 이 연두의 빛깔은 풋풋하고, 순수하고, 설레고,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속되지 않고, 마음이 맑고 신선한 상태를 일컫는 것이 아닐까 한다. 조금은 들떠 두근거리고, 일렁거리고, 조심하고, 어려워하는 마음의 자세가 연두의 속뜻일 것이다. 우리 본래의 마음 그 어귀가 바로 이 연두의 빛깔일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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