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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MT리포트]e스포츠 선수도 환자?…'게임 질병'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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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강미선 기자] [편집자주] ‘놀이문화냐 잠재적 질병이냐.’ 우리 국민의 67%가 즐기고 연간 5조원 이상 수출 실적을 내고 있는 게임. 몇년 뒤면 질병의 원인으로 예방과 치료의 대상이 될 지 모른다.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e스포츠 게이머나 게임 개발자를 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오는 20~28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열리는 총회(WHA)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할 지 여부를 결정한다. 게임 질병코드 논란을 긴급 점검해봤다.

['질병' 기로 선 게임]①WHO, 게임이용장애 질병분류 추진…찬반 갈등, 업계 규제 우려

머니투데이


WHO가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게임 과몰입)’ 항목을 질병으로 등재한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개정안을 확정할 경우, 앞으로 게임이용장애는 질병으로 규정된다. 게임이용장애가 우울증, 알코올중독처럼 정식 병명이 된다는 얘기다.

2022년부터 효력이 발생해 한국을 비롯한 회원국들이 치료나 재활에 필요한 정책 방향을 수립하는데 주요 지침이 된다. 의학계는 “국민 보건에 도움될 것”이라며 반기지만 게임·콘텐츠 업계는 낙인 효과와 산업 위축을 우려한다. 막대한 경제효과에도 불구하고 사회문제 주범으로 몰려왔던 게임. 잠재적 질병 요인으로 분류될 경우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다.

◇게임 많이하면 잠재적 환자?=WHO가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건 게임을 지나치게 많이 할 경우 뇌가 일반인과 다르게 작동해 일상생활까지 조절 불능 상태에 빠진다는 연구 등을 근거로 하고 있다. 질병코드를 정식 지정해야 적절한 치료법과 예방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모든 게임 이용자들을 잠재적 치료 대상자로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만약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개인의 정서적 환경을 복합적으로 고려하기보다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를 원인으로 볼 개연성이 많다는 것.

예를 들어 게임을 많이 하는 청소년이 성적이 떨어지거나 예전과 다른 이상행동을 보이면 실제 원인이 우울증이나 교우 관계, 학업스트레스, 부모와의 갈등 등 복합적 요인일 수 있는데 ‘게임이용장애’로 진단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과잉진료 남발 우려도 있다.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장 이경민 교수(신경과)는 얼마 전 관련 토론회에서 “성장 과정에서 겪는 정상적 몰입활동을 병적인 것으로 오인해 정신질환자로 낙인찍을 우려가 크다”며 “우울증이라고 하면 심각하고 부모한테도 책임이 있어 보이지만 게임중독은 그렇지 않고, 의료인 입장에서도 개인의 우울증 원인에 대해 복잡하게 얘기하기보다 ‘게임장애’ 한마디면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갈팡질팡…속끓이는 업계=ICD는 나라별로 치료나 재활에 필요한 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권고안이다. 당장 질병으로 법제화하라는 지침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주무 부처간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어 향후 관련 정책 수립에 진통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 개정안이 승인될 경우 이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도 반영할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이용을 질병으로 규정할만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질병코드로 섣부르게 분류하면 업계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가장 곤혹스러운 건 게임 산업계다. WHO가 게임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할 경우,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서 게임을 잠재적 유해 콘텐츠로 분류하게 된다. 당장 국내 게임산업이 향후 10조원대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게임=질병’이라는 등식을 근거로 한 각종 규제가 남발할 우려도 있다. WHO 결정이후 후속 조치에 따라 정부나 국회가 게임이용을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 수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청소년 문제, 사회 범죄가 나올 때마다 게임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은데 질병화 분위기를 타면 부정적 인식이 더 확산될 것”이라며 “게임사 부담금 등 재정적 압박까지 가해지면 소형 개발사나 스타트업들은 사업하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ICD 개정안이 승인되더라도 각 나라에 적용하려면 상당기간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며 “관련 연구가 충분하지 않고 객관적 진단기준 치료방법도 불분명한데 국내 실정에 맞춰 선택적으로 이를 도입하거나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등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미선 기자 riv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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