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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낮엔 보험설계 밤엔 코스튬, 그녀의 이중생활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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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종사하는 일’을 뜻한다. 직업선택은 ‘미래를 설계하는 첫 계단’이라는 말처럼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일본의 한 여성은 “취미를 위해 직업을 가졌다”고 말한다. 낮엔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쉬는 날 ‘코스튬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그에게 직업은 “취미생활을 이어갈 수단”이다. ‘코스프레(코스튬)’는 ‘게임이나 만화 속의 등장인물로 분장해 즐기는 일’을 뜻한다. ‘코스튬 플레이어’는 코스튬을 즐기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낮엔 보험설계 밤엔 코스튬

일본에서 코스튬은 대중문화다. 코스튬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일부 중장년층에서 노인 세대까지 즐기는 폭은 다양하다.

이러한 대중적 관심에도 코스튬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코스튬을 둘러싼 곱지 않은 시선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에 심취해 특정 분야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분야는 관심이 적고, 사교성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마니아’와 그들만의 문화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노출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다소 비현실적인 캐릭터의 모습을 따라 하다 보니 발생하는 일인데, 5년 차 코스튬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A씨도 이러한 점 우려하고 신경 쓴다.

A씨는 최근 일본의 한 연예매체와 인터뷰에서 “코스튬에 노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출로 시선을 끄는 게 아닌 좋아하는 캐릭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코스튬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A씨도 좋아하는 캐릭터가 되고 싶은 이들 중 한명이다. A씨는 고등학교 때 ‘메이드 카페’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코스튬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 대부분을 화장이나 가발, 의상구매에 사용한 A씨는 대학졸업 후 올봄 보험회사 영업직으로 취직해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다.

A씨는 “코스튬에 드는 비용이 상당해 아르바이트로는 프로처럼 보이기 힘들다”며 “코스튬도 유행을 타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완성도 높은 코스튬을 위해 보험사에 입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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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유 있는 이중생활

곱지 않은 시선을 비롯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코스튬에 열중하는 이유는 뭘까. A씨는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는 팬과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응원하는 가족이 있어서”라고 답했다.

A씨에겐 약 1만명에 이르는 팬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A씨는 팬을 위해 높은 수준의 코스튬과 고화질 영상·사진을 촬영하는 등 다른 코스튬 플레이어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얼마 전부터 해외에도 팬이 생겨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 게재하는 시간에도 신경을 곤두세운다고 했다.

A씨는 “많은 팬이 볼 수 있도록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 맞춰 사진을 올리면 그만큼 반응도 좋다”며 “해외 팬들의 의견이나 요구도 많아 사진 한 장을 올리더라도 많이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에 팬들 대부분은 응원과 관심을 보이지만 일부에서는 부정적 인식과 지적도 많다. 대표적으로 마니아와 노출이라는 인식이 그렇다. 부정적 인식은 학생이나 미취업 때는 취미로 즐길 수 있지만 직장에 소속돼 사회 생활하며 코스튬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이유와 옷으로 남성 팬을 끌어모은다는 생각에서다.

부정적 인식과 관련해 A씨는 “코스튬과 관련한 생각이 과거보다 나아졌다곤 하지만 마니아 등 부정적 생각이 여전히 많다”며 “마니아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고 변명을 위해 거짓말할 수 없다. 다만 나처럼 코스튬을 즐기거나 코스튬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도 많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코스튬에 좋은 이미지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미래를 생각하면 경제적인 불안도 있지만 즐거운 일은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다.

일본의 한 문화평론가는 코스튬 두고 “자기표현의 일종으로 엔터테인먼트의 성향이 강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코스튬을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누구나 즐기고 따라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코스튬 하는 이들은 취미생활 내지는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 타인의 취미나 흥미를 단순 마니아적인 문화라고 지적해 차가운 시선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코스튬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코스튬하는 이들은 타인의 관심과 시선을 즐기며 인위적인 분장 등으로 보는 사람에게 재미를 느끼게 하고, 때론 수준 높은 분장으로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A씨도 그중 한명이다. 취미를 위해 직업을 가진 건 A씨의 선택이자 자유다. 미래를 위해 안정된 직장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은 A씨에겐 고정관념이 아닐지 모르겠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사진=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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