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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유럽에도 러시아 스캔들... 오스트리아 우파 연정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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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날 공개된 ‘부패 의혹 동영상’ 파문으로 인해 18일 오전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오스트리아 부총리가 기자회견을 열고 전격 사임 의사를 밝히고 있다. 빈=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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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극우정당 최초로 내각 구성에 참여한 오스트리아의 ‘자유당’과 우파 집권당 ‘국민당’의 연정이 출범 17개월 만에 자유당 당수인 부총리의 부패 스캔들로 무너졌다. 덩달아 오스트리아 정치권이 갑작스런 조기총선 변수에 휘말리게 됐다. 유럽의회 선거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러시아와의 정치적 거래가 의심되는 영상이 공개되자, 유럽판 '러시아 스캔들'로까지 번지는 조짐이다.

AP통신 등은 국민당을 이끄는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가 18일(현지시간) 밤 기자회견을 열어 자유당과의 연정을 끝내고, 가능한 빨리 총선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스캔들의 당사자인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부총리는 이날 오전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자신의 부총리직과 당수 자리를 자유당 출신 장관에게 넘길 것이라고 했으나, 총리의 조기 총선 선언에 연정 자체가 깨진 것이다.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19일 “오스트리아 국민에게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오는 9월 조기총선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전날 독일 매체 두 곳을 통해 공개된 동영상에서는 슈트라헤 부총리가 러시아 신흥재벌의 조카라고 밝힌 여성에게 후원을 받는 대신, 정부 사업권을 부풀린 가격에 줄 수 있다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됐다. 해당 영상은 2017년 총선을 3달 앞둔 시점에 찍힌 것으로 여성이 2억 5,000만 유로(약 3,337억원)의 후원금을 제안하자, 부총리는 도로 건설 사업을 대가로 언급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영상 공개 직후 야당은 즉각 부총리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영상이 불법 촬영된 것이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던 자유당도 쏟아지는 비판을 못 이기고 고개를 숙였다. 다만 부총리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행동을 두고 "멍청하고, 무책임한 실수"라고 자책하면서도, 이번 일은 자신을 겨냥한 '정치적인 암살'이며 불법 행위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단순한 정치 스캔들을 넘어, 러시아와의 유착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자유당은 공공연한 친러시아 정당으로 러시아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과 상호협력 협정을 맺는 등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NYT는 이와 관련 “오스트리아는 현재 ‘서구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와 동맹 관계인 포퓰리즘 세력’ 간의 이념 전장의 중심부에 있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파문은 유럽 전역으로 번질 태세다. NYT는 “유럽 내 많은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정치적 분열을 키우고, 서구권 제도를 약화하려는 의도를 공유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역시 “유럽 내 극우 정당들은 수년 간 불미스러운 러시아 세력과 막후에서 협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이번 영상은 이런 의혹을 확인시켜준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논란은 오는 23~26일 열릴 유럽의회 선거에서 주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려고 했던 유럽 내 극우·포퓰리즘 정당들에게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폴리티코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극우 지도자들도 오스트리아와 비슷한 친러 정책을 추구해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 곧 불편한 질문들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1950년대 나치 부역자들이 창당한 자유당은 줄곧 비주류에 머물렀으나, 2017년 총선에서 제3당으로 도약, 우파 국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자유당은 최근 당 외부 연결 단체인 극우 성향의 ‘정체성 운동’ 대표가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에서 총기 난사를 한 브렌턴 태런트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게 드러나 도마 위에 올랐고, 슈트라헤 대표 역시 잦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어왔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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