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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킬로그램(kg)·암페어(A) 단위 왜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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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일부터 국제단위계 7개중 4개 재정의 시행…엄밀한 숫자로 정의한 자연계 기본상수 이용 ]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우리는 몸무게, 욕실물 온도, 자동차 기름양, 스마트폰 충전 상태, 내비게이션에서 도착지까지 남은 거리 등을 확인한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무언가를 ‘재는’ 일이다. 이처럼 잴 때 쓰이는 ‘단위’는 간과하기 쉽지만 우리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존재다.

‘세계측정의날’인 20일부터 우리가 흔히 쓰던 질량의 단위 킬로그램(㎏), 전류의 기본 단위 ‘암페어(A)’, 온도 단위 ‘켈빈(K)’, 물질의 양을 나타낸 ‘몰(㏖)’ 등의 4개 단위에 바뀐 표준이 적용된다. 이날부터 전 세계 산업계와 학계는 새롭게 정의된 단위를 사용해야 한다.

한국표준과학기술연구원(이하 표준연) 측은 “한 번에 4개 단위 정의가 바뀐 것은 도량형의 전 세계적인 통일을 처음 논의한 미터협약(1875년) 이후 144년만에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바뀐 단위 기준은 우리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kg의 정의가 바뀌었다고 해도 당장 저울에 표기된 내 몸무게는 그대로라는 말이다. 하지만 마이크로 수준의 오차도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질 수 있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대학·기업 연구소에는 영향을 미친다. 독성 조절 등 초정밀 측정기술을 필요로 한 제약업계나 정밀 측정이 필요한 산업계에선 일부 설비 보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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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킬로그램(kg) 원기/사진=표준연


◇세월에 변해버린 kg원기, ‘플랑크 상수’ 도입=지난해 11월 국제 도량형국(BIPM)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 금속 블록인 국제 킬로그램 원기(原器)로 질량의 국제 표준을 정하던 것을 물질 상수 '플랑크상수(h)'에 의한 정의로 바꾸는 안을 통과시켰다. CGPM은 측정 표준 분야 최고 의사결정기구이다.

현재의 1kg은 '르그랑K'(Le Grand K)로 이름 붙여진 물체(원기)의 질량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국제 도량학계는 1889년 백금 90%, 이리듐 10%로 구성된 높이, 지름 각각 39mm인 원기둥 모양의 원기를 1kg의 국제 기준으로 정한 뒤 유리관에 담아 파리 인근 국제도량형국(BIPM) 지하 금고에 보관해 왔다.

그러나 르그랑K가 130년이 다 되어 가면서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 최대 100㎍(마이크로그램ㆍ100만분의 1g) 가벼워졌다. 원기 표면이 산화되는 등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박연규 표준연 물리표준본부장은 “단위가 불안정하고,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일상생활과 모든 산업 현장에서 이뤄지는 측정값을 신뢰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 국립물리학연구소(NPL) 측도 “르그랑K를 기준으로 설탕 봉지의 무게를 재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의약품 무게 측정 등 한층 정교한 과학 분야에서는 용인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번 표준 개정의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도량학계는 이전부터 변하지 않는 자연계 ‘상수’로 질량을 새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제기해 왔다. 이에 따라 도량학계는 변하는 물질 대신에 변하지 않는 수인 '상수'를 이용키로 하고 물리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 상수(h)'로 질량을 정의하는 안을 내놨다. 플랑크 상수는 빛 에너지와 파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 상수이자 전류 및 전압의 강도를 토대로 중량을 재는 특수저울 '키빌 저울'로 측정할 수 있는 불변의 자연 상수이다.

kg뿐 아니라 암페어(A), 켈빈(K), 몰(㏖)도 같은 물리상수인 아보가드로 상수, 기본 전하(e), 볼츠만 상수를 이용해 재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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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킬로그램 표준을 확립하기 위해 개발중인 표준연의 키블저울/사진=표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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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재정의를 설명한 일러스트레이션/사진=국제도량형국(BIPM)


◇암페어, 기본전하 상수로=‘무한히 길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원형 단면적을 가진 두 개의 평행한 직선 도체가 진공 중에서 1m 간격으로 유지될 때 두 도체 사이에 m당 1000만분의 2뉴턴(N)의 힘이 생기게 하는 일정한 전류’ 1948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결정해 지금까지 사용해온 1암페어(A) 정의는 이처럼 모호할뿐만 아니라 길었다. '무한히 긴', '무시할 수 있을만큼 작은’ 도선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암페어를 길이, 힘(F=MA)에 근거해 정의, 질량의 정의가 변하면 암페어의 정의도 따라서 변해야 한다.

전세계 표준 과학자들은 전자 1개가 갖는 전하량(기본전하(e))을 변하지 않는 상수로 고정하고 이것으로 암페어를 새롭게 정의하기로 했다. 전기는 전자가 이동하기 때문에 전류의 정의를 ‘단위 시간당 전하의 일정한 흐름’으로 명료하게 바꾼 것이다. 새 정의는 20일부터 사용한다.

◇몰, 아보가드로 상수로=몰은 탄소-12의 0.012kg에 있는 원자의 개수와 같은 수의 구성요소를 갖는 어떤 계의 물질량을 뜻한다. 몰을 사용할때는 구성요소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이 구성요소는 원자, 분자, 이온, 전자, 기타입자 또는 입자들의 집합체가 될 수 있다. 물질량을 나타내기 위한 기본단위인 몰의 현재 정의가 이렇다.

몰은 다른 기본단위인 질량에 의존해 왔다. 또 구성요소 개수를 통해 양을 정의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수가 얼마인지는 명시돼 있지 않았다. 따라서 질량 정의가 바뀌게 되면 그 영향을 그대로 받게 되고 누가 어떤 방법으로 세는지에 따라 1몰에 해당하는 개수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문제가 따랐다.

과학자들은 1몰의 물질의 양에 들어있는 원자 수인 아보가드로 상수를 최대한 정확히 측정한 다음 그 수(6.022 140 76×10의 23승 mol의 마이너스1승)를 변하지 않는 상수로 고정, 몰을 정의하기로 했다. 계란 30개를 한 판이라고 하듯, 특정입자(6.022 140 76×10의 23승 mol의 마이너스1승)개로 구성된 어떤 물질량을 1몰이라고 새롭게 정의내린 것이다.

◇켈빈, 볼츠만 상수로=‘열역학적 온도의 단위인 켈빈(K)은 물의 삼중점의 열역학적 온도의 273.167분의 1이다’ 온도의 기본단위인 K의 정의에는 그동안 ‘물’이 이용됐다. 비교적 명쾌했지만 완벽하다고 보긴 힘들다. 물을 구성하는 산소와 수소가 여러 가지 동위원소를 갖고 있어 삼중점을 만든 지역과 계절에 따라 온도가 수십마이크로켈빈(100만분의 1K)수준으로 바뀔 수 있는 탓이다.

온도를 삼중점의 온도(273.16K, 0.01℃)라는 특정온도에서 정의한다는 점도 문제였다. 아주 낮은 온도를 측정할 때든 그 반대든 이 한가지 온도를 기준으로 열역학적 방정식을 이용해 구현하거나 측정해야 했다. 극저온, 극고온에서 불확도가 클 수 밖에 없었다.

표준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볼츠만 상수(K)를 측정한 후 그 값을 상수로 고정해 켈빈을 재정의했다. 볼츠만 상수는 입자 수준에서의 에너지와 거시 수준에서 관측된 온도를 연결한 비례상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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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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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만개 도량형 단위 가졌던 佛, ‘kg’ 만들다=표준의 역사는 길다. 진시황은 지역마다 제각각인 도량형을 통일, 세수 확보에 형평성을 세웠다. 조선시대 만든 자 ‘유척’은 암행어사가 마패, 봉서와 함께 지니고 다녔으며, 지방관청의 도량형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판별했다.

저울에 올려놓는 질량의 기준은 주로 ‘곡물’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보리 낱알 200개를 1베카로 정의했다. 지금의 단위로는 약 13g에 해당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것을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채취한 사금의 무제를 재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시대에는 캐럽나무 열매의 씨앗이 기준이 됐다. 질량이 0.2g인 캐럽나무 씨앗 1728개의 질량이 당시 1로마파운드였고, 이것의 12분의 1인 캐럽나무 씨앗 144개의 질량을 1로마온스라고 했다.

곡물을 저울에 사용한 건 동양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에서 보리 7000알의 무게를 1파운드로 정의한 것처럼 쌀을 주식으로 재배하는 우리나라나 중국에선 살 한 가마니를 기준으로 질량을 쟀다. 낱알들이 작고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를 합쳐 그것의 평균을 단위로 삼았던 것이다.

kg이 탄생한 것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직후다. 당시 프랑스에선 800개의 이름을 가진 25만개나 되는 도량형 단위가 사용되고 있었다. 복잡한 도량형 제도는 물건을 사고파는데 큰 걸림돌이었다.

루이16세는 프랑스과학아카데미에 새로운 도량형 체제를 만들 것을 명했다. 우리에게 ‘질량 보존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과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프랑스과학아카데미 재무장관으로 임명돼 kg 표준연구에 참여했다.

아카데미가 지정한 도량형 위원회는 1798년 질량의 단위를 ‘그레이브’라고 명명하고 황동으로 그레이브 원기를 제작했다. 질량의 단위는 그 후에도 조금씩 바뀌었다. 1795년 ‘그램’이 됐다가 1799년 kg이 기본 단위가 됐다.

우리나라에 원기의 복사본이 처음 들어온 건 고종 즉위 시절인 1894년이다. 그 전까지 전통 도량형이 널리 쓰였다. 삼국사기 등에 보면 근(斤) 등의 단위가 기록돼 있고 추와 추를 제작하기 위한 거푸집 등이 출토됐다.

세종은 1422년 공조참판 이천에게 당시에 사용되던 저울을 개조하게 해 1500개를 서울과 지방에 반포하고, 백성들이 자유롭게 구입하게 했다. 전통 도량형 토대는 구한말까지 유지되다가 서구의 미터법 체계에 맞춰 재정의됐다.

한편, 표준연은 20일 기본단위 재정의 시행 및 세계측정의 날을 맞아 대전 유성구 본원에서 기념식을 개최한다. 기본단위 재정의를 주제로 한 기념 우표도 이날 전국에 발행된다. 박상열 표준연 원장은 "단위를 새롭게 정의·구현하는 기술력을 갖춘 국가만이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표준연이 최근 발간한 ‘세상을 바꾼 발명품, 단위의 탄생’을 참고했다.

류준영 기자 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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