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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에 싸여사는 60대 부부, 왜 버리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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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김씨 부부의 집. 현관 입구(왼쪽)에 신발 박스가 쌓여 있고 집 곳곳에 옷 무더기가 놓여 있다. / 이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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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노숙인을 위한 쉼터에서 만나 가정을 꾸렸다. 쉼터에 오기 전에는 각각 서울역과 영등포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함께 지내기 시작했지만 가진 것은 없었다.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했고, 하루씩 방세를 내는 여인숙에서 지냈다. 남편 김철수씨(64·가명)가 건설현장 등에서 일용직으로 일할 때도 있었지만 여의치 않으면 폐지와 고철을 주워 고물상에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300만원을 모아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갔다. 15평 원룸이지만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큰 발전이었다. 알코올중독 이력과 노숙생활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부부는 동네를 다니며 부지런히 폐지와 고철 등을 모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숙박시설에서는 물건을 보관할 수 없었지만 집에서는 물건을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거리에는 괜찮아 보이는 물건이 많았다. 주워온 물건이 집 안에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쓸 수 있는 물건들도 많이 버렸다. 전기밥솥, TV, 선풍기 등 가전제품부터 옷장이나 침대, 수납장 같은 가구, 계절별 옷과 신발·이불, 샴푸·비누 등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물건을 주워서 생활했다.

한 번 주워보니 쓸 만한 물건이 눈에 더 잘 띄었다. 이미 가지고 있지만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고물상에 팔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애초 고물상에 팔던 폐지와 고철, 옷가지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물건이 집 안에 쌓여갔다. 전기밥솥은 6개까지 모아봤고 시계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원룸이 물건으로 가득 찼다.



옷? 이불? “한 번도 안 빨았다”


지난 5월 15일 영등포구청의 도움을 받아 부부의 집을 찾았다. 12가구가 살고 있는 빌라였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차장에 1m 높이의 폐지 더미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한쪽에는 녹이 슬거나 바퀴에 바람이 빠진 자전거 몇 대가 세워져 있었다. 임대주택의 특성상 차를 가진 거주자가 별로 없어 부부가 저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현관문을 열자 쌓여 있는 신발 박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건들 때문에 어디까지가 현관이고 어디부터가 방인지 헷갈렸다.

현관에서 가장 먼 곳에 침대와 바닥에 이불이 깔린 공간이 있었다. 부부가 생활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집에 들어가자 부인 이영희씨(59·가명)는 “집이 누추해서 어쩌나”라며 “내가 몸만 안 아파도 정리할 텐데…”라고 수차례 말했다. 실제 그 공간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편하게 앉거나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옷장이 3개 있었지만 계절과 상관없는 옷가지가 방 곳곳에 쌓여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입는 옷이냐”는 질문에 부부는 애매하게 답했다. 바로 팔아버리는 것도 있고 깨끗해 보이는 일부는 입은 다음에 더러워지면 팔아버린다고 했다. 모든 물건이 그런 식이었다. 쓸 만하다 싶으면 일단 사용하고 고장나거나 더러워지면 처분했다.

이들은 주워온 옷과 이불, 베개를 한 번도 빨지 않았다고 했다. 구청 직원이 세탁기 사용법을 알려준다고 했지만 손사래를 쳤다. 세탁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속옷은 손빨래를 한다.

물건을 바로 처분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고물상에서 물건을 매입하는 가격이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오늘은 폐지가 1㎏ 80원이지만 다른 날에는 130원까지 오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고철이나 옷가지 역시 마찬가지다. 부부는 ‘그때’를 기다린다. 그러다보니 물건을 바로 버릴 수 없어 점점 물건이 쌓여갔다. 이런 생활이 10년이 넘었다.

이처럼 끊임없이 물건을 모으고 버리지 못하는 행위를 ‘저장강박’ 혹은 ‘저장장애’라고 부른다. 미국의 정신질환 분류체계 DSM-5는 저장장애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불필요한 물건을 없애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하는 ‘강박적 저장’과 너무 많은 물건을 구입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물건을 과도하게 모아두는 ‘강박적 수집’이다.

DSM-5에 따르면 저장장애를 가진 비율은 미국 인구의 2~6%로 추정된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저장강박을 ‘호딩(Hoarding)’, 저장강박자를 ‘호더(Hoarder)’라고 부른다. 199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애니멀호더’로 불리는 동물저장장애는 동물학대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여겨진다.

한국에서 이에 대한 실태조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실시하는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는 저장장애 항목이 없다. 서울시가 2015년 6월∼2016년 7월 조사한 결과 저장장애 가구는 총 312가구에 달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수치가 아니다. 다른 정신장애와 함께 저장행동이 얽혀 있을 가능성이 높고, 또 어디까지를 강박적인 저장행동, 혹은 저장장애로 판단할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수집과 저장장애의 큰 차이는 ‘조직화’다. 수집품은 나름의 질서로 정리돼 있어 언제든지 접근이 가능하다. 가령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낸 기사나 사진이 주제별로 스크랩돼 있다면 수집이다. 그러나 신문과 잡지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읽고 싶은 부분을 찾아낼 수 없다면 장애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핵심은 물건의 가치다. 쓰레기처럼 보이는 물건이 당사자에게는 쓸모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물건의 운명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며 물건을 애지중지한다. 정보를 잃어버릴까봐 영수증, 신문 등을 쌓아놓는 사람도 있다. 김씨 역시 쌓인 물건을 두고 “팔 것”이라고 말한다. 상업성이라는 가치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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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으로 물건이 과도하게 쌓여있는 서울에 위치한 한 가구.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와 상관 없음. / 이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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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렸다가 나중에 필요하면 어떡하지?

임상심리전문가인 유성진 한양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이 같은 행동의 밑바닥에 ‘불안’이 깔려 있다고 설명한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만약의 경우’를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는 실수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잠재돼 있다는 것이다. ‘물건을 버렸는데 나중에 필요하면 어떡하지’ 하는 심리다.

유 교수는 나아가 문제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물건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령 걱정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았고, 걱정을 했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이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뇌과학에서는 이를 뇌기능 문제로 설명하기도 한다. 특정 자극에 맞춰 습관화된 행동을 선택하는 부분, 원하는 동작이나 반응이 되도록 조절하는 부분에 문제가 있을 경우 새로운 자극이 들어와도 알아채지 못하고 하던 행동(저장)을 반복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사자 대부분이 ‘저소득 노년층’이라는 점을 볼 때 병으로만 보기 어렵다. 실제 DSM-5에 따르면 저장강박이 장년층인 33~44세보다 노년층인 55~94세에서 거의 3배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노원구가 2013~2014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2가구 중 90%가 저소득층이거나 차상위계층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수집이든 저장이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굳이 주변에서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저장 행동이 심해지면 당사자와 타인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다. 김홍현 영등포구 복지정책과 희망복지지원팀장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화재, 위생, 감염 등의 위험이 생기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가령 김씨 부부는 바퀴벌레 때문에 이웃과 갈등을 겪고 있다. 밖에서 물건을 가져올 때 벌레가 같이 들어와 빌라 전체에 번식을 하는 것이다. 기자가 김씨 부부 집을 방문한 날도 1시간 동안 바퀴벌레를 세 마리 봤다. 최형욱 영등포구 주무관은 “그래도 여기가 영등포구가 지원하는 저장강박 가구 중에 상당히 양호한 편”이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문제 외에도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저장강박 가구 인근에 거주하는 정모씨는 “무슨 사연으로 물건을 모으는지 모르겠지만 대로변이라 외관을 해치는 게 우려스럽다”며 “상업용이라면 안내판을 붙였으면 좋겠고 그게 아니라면 구청이나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쌓인 물건 때문에 사람이 죽기도 한다. 2017년 5월 28일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던 강모씨(46)는 어머니가 모아둔 폐지와 고철 등을 정리하다 사고를 당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원들이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강씨를 발견했으나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동물을 모으는 행위는 ‘동물학대’로 분류되기 때문에 역시 개입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물저장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같이 사는 동물은 평균 40마리였다. 많은 동물이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잦다.

문제는 당국이 이에 대해 ‘어떻게’ 개입하느냐 하는 것이다. 최 주무관은 설득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저장강박, 저장장애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쓰레기집’이라고 생각해 물건을 치울 경우 재발하기 십상이며, 당사자의 반발만 산다는 것이다. 유 교수도 “이들에게 물건을 건드리는 것은 잠재적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고, 정서적 애착을 방해하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영등포구 직원들이 김씨 부부를 설득하는 데 1년이 걸렸다. 동의를 받은 뒤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15평 원룸에서 7톤에 달하는 물건을 덜어냈다. 하지만 실수는 있었다. 당사자와 세밀한 부분까지 합의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상실감을 느낀 부부는 곧 다시 물건을 모으기 시작했다.

따라서 외부에서 개입을 할 경우 구체적인 항목에까지 동의가 필요하다. 영등포구가 발간한 ‘저장강박가구 사례관리 매뉴얼’을 보면 무엇을 버릴지, 얼마나 버릴지, 어떤 공간을 정리할지, 개입기간은 얼마나 할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당사자와 논의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동기를 높이기 위해 기본적인 목표를 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싱크대에서 음식을 준비하기, 식탁에서 식사하기, 침대에서 자기, 방문을 활짝 열 수 있는 상태 만들기 등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런 과정을 통해야만 비슷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3년간 구청의 설득과 지원을 통해 부인 이씨의 저장강박 증세는 거의 사라졌다. 남편이 주워오는 것들이 더 이상 ‘돈을 벌 수 있는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최 주무관은 “당사자들을 지원하다보면 공간을 깨끗하게 하는 건 일도 아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치워도 본인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버리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가 될 때까지는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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