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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회색빛 도시, 젊음의 해방구 되다 [박윤정의 뷰티풀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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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오늘의 베를린

세계일보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대부분 파괴된 것을 1963년 에곤 아이어만의 설계로 재건됐다. 흐린 날씨 탓인지 부상한 패잔병처럼 쓸쓸해 보인다.
베를린의 아침은 다양한 언어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호텔 식당 앞에서 직원에게 건네받은“구텐 모르겐”이 여기가 독일이라는 것을 알려줄 뿐 식당 안은 유럽과 세계 각지에서 온 이방인들로 가득하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고 분단 장벽이 철거된 이후 베를린은 매력적인 관광도시로 떠올랐다. 통일 여파가 지나가고 난 후에도 베를린은 ‘자유 도시’라고 홍보하며 문화예술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제2의 뉴욕’이라 불리며 핫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주말에는 유럽 각지의 젊은이들이 베를린의 자유로운 밤문화를 즐기기 위해 열차를 이용해 모여든다. 분단시절 억압적인 사회체제에 억눌려 있던 에너지가 폭발하면서 자유와 해방의 상징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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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게이 등 성 소수자 문화에 관대한 베를린의 문화는 오가는 커플의 자유로움뿐 아니라 길거리에서 만나는 관공서 홍보물에까지 쉽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유스러운 문화와 달리 아침 창밖의 날씨는 흐리고 무거운 분위기이다. 베를린은 평소 비가 자주 내리는데, 부슬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와 함께 느긋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산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호텔 바로 앞에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가 눈에 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던 것을 1963년 에곤 아이어만의 설계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폭격으로 부서진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교회는 흐린 날씨 탓인지 부상당한 패잔병처럼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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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기념탑. 프로이센 왕국의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승리를 기념한 이 탑은 원래 연방의회 의사당 옆 광장에 세워져 있었지만 베를린을 세계 수도로 개조하려던 히틀러가 1939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빌헬름 교회 바로 옆으로 베를린 동물원이 위치하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의 하나로, 한때 왕실 사냥터였던 것을 1818년 호수와 시내가 흐르는 공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동물원이 낯설지만 오늘날에는 베를린 시민들 휴식처로 자리 잡고 있다. 동물원에는 판다 정원이 유명하지만 이 먼 타국에서 역시 이방인인 판다를 마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동물원에 들르지 않고 동물원과 이어진 티어가르텐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티어가르덴 공원 중앙에는 전승기념탐이 높게 솟아 있다. 프로이센 왕국의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승리를 기념한 이 탑은 원래 국회 의사당 옆 광장에 세워져 있었던 것을 베를린을 세계 수도로 개조하려 한 히틀러가 1939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높이 67m에 이르는 탑 꼭대기에는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황금빛으로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 탑은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에서 천사 다니엘이 긴 코트를 입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베를린 시내를 내려다보던 바로 그곳이다. 흑백의 그 장면이 너무 인상 깊었던지 흐린 날씨 아래 우뚝 서 있는 탑에는 아직도 다니엘이 서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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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 문. 의심할 여지 없이 베를린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인증 샷 최적의 포인트이다. 1791년에 지어진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는 높이 6m의 4마리 말이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마차를 몰고 있는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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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원. 1만9000 m²면적의 부지에 2711기의 콘크리트 비가 세워져 있다. 지하 박물관에는 당시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이름과 개인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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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전승기념탑을 뒤로 하고 티어가르텐을 가로지르는 큰 길을 따라 걸으니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문에 이른다. 의심할 여지 없이 베를린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인증 샷 최적의 포인트이다. 광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브란덴부르크 문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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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점심 식사. 자유스러운 문화와 달리 날씨는 흐리고 무거운 분위기이다. 베를린은 평소 비가 자주 내리는데, 부슬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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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에 지어진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는 높이 6m의 4마리 말이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마차를 몰고 있는 동상이 서 있다. 이 거대한 문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1788년에서 1791년에 걸쳐 건설한 초기 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다. 분단 시절에는 서독과 동독의 경계선이었으며, 통일과 함께 독일과 베를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 문은 베를린을 가로지르며 훔볼트 대학, 박물관 섬, 방송탑까지 이어지는 운터 덴 린덴 거리의 끝에 있다. 린덴 거리는 도로 가운데를 걸을 수 있는 흙길로 조성해 놓아 산책하듯 베를린의 주요 유적을 둘러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린렌 거리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마주하고 오른쪽으로는 연방의회 건물인 라이히슈타크를 거쳐 동쪽으로 이어지는 연방 행정지구가 자리하고 있다. 유리로 되어 있는 연방의회 건물의 둥근 돔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 왼쪽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대학살)에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원이 자리한다. 1만9000 m²면적의 부지에 2711기의 콘크리트 비가 세워져 있다. 커다란 관을 연상시키는 직육면체의 잿빛 비석들은 가로 0.95m, 세로 2.38m 너비에 높이는 0.2m에서 4.8m까지 다양하다. 지하의 박물관에는 당시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이름과 개인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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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 문에서 훔볼트 대학, 박물관 섬, 방송탑까지 이어지는 운터 덴 린덴 거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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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만의 독특한 신호등 ‘암펠만’. 1960년대에 동베를린 교통국에서 근무하던 카를 페글라우가 발명한 것으로, 아이들과 시력이 안 좋은 노인들을 위해 눈에 잘 띄는 귀여운 캐릭터를 디자인하여 신호등에 적용했다. 지금은 베를린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암펠만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기념품들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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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된 유대인들의 주검과도 같은 비석들 사이로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열심히 토론하는 사람들까지, 유대인들도 독일인들도 역사의 교훈을 마음에 되새기는 듯하다. 수도 한가운데에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를 돌아보는 거대한 기념공원을 조성한 독일인들의 역사인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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