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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연극과 삶]□를(을) 기다리고 꿈꾸는 일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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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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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 연극평론가

“자, 우리 갈까?” “그래, 가자고.”

찰리 채플린 같은 중절모를 쓴 두 떠돌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막이 내린다.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1막과 2막은 동일한 대사로 끝난다. 달라진 것은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2막에서 잎을 피울 뿐. 두 사람이 ‘고도’라는 사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지만 끝내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상황이 3시간 동안 지속된다. 기승전결 구조에 익숙한 관객의 입장에선 뜬구름 잡는 황당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임영웅 연출가(83)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한국에서 초연된 지 50주년이 되도록 이 부조리극을 보려는 관객은 왜 끊이지 않을까?

고도가 누구인지, 물질인지, 어떤 이상향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관객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라는 두 인물을 보고 각자의 ‘고도’를 상상한다. 관객들은 현실적인 문제, 거대한 사회적 담론, 인생의 의미 등 각자의 고도로 대입해 사유한다.

연극은 현실을 반영하는 생물(生物)이다. 작품은 영원불변할지라도 관객이 체감하는 해석은 절대적일 수 없다. 베케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와 함께 독일에 대항했고 신분이 노출되자 프랑스 남부 보클뤼즈 지역에 피신해 있었다. 망망대해를 혼자 걷듯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본인의 절박한 심경이 이입이 되어 탄생한 걸작이 이 연극이다. 전후 극도의 상실감과 혼란에 빠져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조차 모호해진 세상에 그가 던진 부조리극으로 인류는 처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조리한 세상은 변한 것이 없다. 다만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AI)의 발달로 기계는 날로 똑똑해지고 과거의 상상을 어느 새 현실로 맞닥뜨린다. 베케트는 인류가 이렇게 급속도로 변화할 줄 예상했을까.

과거에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 보란 듯이 사는 것, 혹은 종전이나 독립, 해방, 통일 같은 공동체의 희망을 고도로 생각했다. 반면 요즘은 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춰 고도를 찾는다. 고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잃어버렸던 고도를 기다리고 꿈꾸는 일은 행복하다. 비록 고도를 만나지 못해 실망하고 좌절할지라도 기다리면서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 연극을 보면서 내가 무엇을 기다려 왔는지조차 잊고 지내온 것은 아닌지, 문득 되돌아본다.

황승경 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