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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실천 무애의 삶… 깊고 넓은 설악무산의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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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선승’ 오현 스님, 26일 1주기 맞아 추모행사 다채

동아일보

‘설악 무산 대종사(오현 스님) 1주기 추모 다례’가 16일 강원 속초시 설악산 신흥사에서 열렸다. 신흥사 주지 우송 스님은 “대종사의 법문이 승속 구분 없이 큰 감화를 준 건 진정성과 진솔함 덕이었다”며 “설악 산문(山門)을 재건하고 선풍(禪風)을 일으킨 법력은 후학과 사부대중의 마음에 오래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속초=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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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자야, 봄날이 올 끼다.”

신달자 시인은 좌절해 있던 몇 년 전 오현 스님(1932∼2018) 앞에서 ‘봄날은 간다’를 서럽게 부르자 스님이 자신을 이렇게 격려했다고 한다. 시인은 이후 서서히 힘을 되찾았다며 “오현 스님의 그늘은 너무 신령스러워 사람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넓어지기만 했다”고 회고했다.

나눔을 실천하며 무애(無애)의 삶을 살았던 시대의 선승(禪僧) 오현 스님의 1주기(26일)를 앞두고 최근 출간된 ‘설악무산 그 흔적과 기억’(김병무, 홍사성 엮음·인북스)에 실린 얘기다. 스님과 평소 가까웠던 이들의 추억담을 모은 이 추모 문집에는 정래옥 전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이장의 회고도 있다. 백담사 조실(祖室)이었던 스님은 용대리 주민들과 각별하게 지냈다. 2007년 TV 선로와 장비가 노후해 용대리 주민들이 TV를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스님이 “백담사에 범종을 만들어 달려고 모아놓은 돈”을 선뜻 건넸다고 한다. 정 이장은 종 없이 빈 종각을 보며 “고맙고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고 회고했다.

오현은 시조시인으로 활동할 때 쓴 속가 이름이고, 정식 법호와 법명은 설악 무산(雪嶽 霧山) 대종사다. 1주기를 앞둔 16일 스님이 조실로 추대됐던 설악산 신흥사(강원 속초시)에서는 설악 무산 대종사 추모 다례가 열렸다. 화암사 회주 정휴 스님, 전계대화상 성우 스님 등 조계종 원로 스님과 도반을 비롯해 정치인과 기업인, 용대리 식당 주인, 시인, 문인, 가톨릭 신자 등 각계각층에서 스님의 뜻을 기리는 3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이 이날 “어떻게 탁한 가운데 맑음을 가릴꼬. 구름이 없으니 산마루가 드러나고, 오직 밝은 달은 물결 위에 있음이로다”라는 진제 종정의 법어를 대독했다. 성우 스님은 추도사에서 “여기 모인 인연 있는 대중은 모두들 마음 한 자락을 잃어버린 듯하다”고 말했다. 한 용대리 주민은 “인사드리러 가면 ‘일은 쪼매만 하고 건강히 살라’고 하셨다”며 스님을 추억했다. 이날 추모 다례에는 주호영 국회의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김진태 전 검찰총장,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도 참석했다.

앞서 15일에는 스님이 설립해 동국대에 기증한 만해마을(용대리)에서 열반 1주기 추모 세미나 ‘설악무산, 그 흔적과 기억’이 불교평론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문학평론가 이숭원 서울여대 명예교수가 스님의 문학세계를 조명했다. 이 교수가 “스님의 시집 ‘심우도’(1979년)의 발문은 ‘영혼의 세척에 더 많은 시간을 몰입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손끝만으로는 각자(刻字)되지 않는 전신연소(全身燃燒)를 해내고 있다’고 감동적으로 설파했다”고 소개하자 청중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40년 전 이 발문을 썼던 이근배 시조시인은 “스님의 인간 사랑에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썼다”며 “스님은 법명대로 ‘안개 산’ 같아서 모습을 보면서도 모두 헤아리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조병활 성철사상연구원장은 발표에서 “스님의 불학 사상에는 지혜와 방편이 융합돼 쉽게 불교를 설명하는 가르침이 지천(至賤)”이라고 말했다.

구중서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 김광식 만해학회 회장, 박시교 김지헌 시인 등이 세미나에 참석했다. 신달자 시인은 “스님이 아직도 금방 문을 열고 들어설 듯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속초·인제=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