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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검찰개혁의 열쇠 형사소송법 312조](2)인권 해치는 법조항 놔두고 수사권 조정 때마다 ‘인권’을 방패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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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수사권 조정과 검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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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들 단골 멘트지만

수사, 인권 보호하는 일 아냐


검찰이 수사권 조정을 저지하는 확실한 방법은 인권 문제 제기다. “우리가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어떻게 경찰에 인권을 맡기느냐”고 검사들이 물으면 기자로서도 대답이 궁하다. 부패한 경찰과 정치적인 검찰, 어느 쪽이 더 인권을 침해할까 생각해본다. 금세 경찰에 권한을 더 주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수사권 조정은 무산되거나 시늉만 하다가 끝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던 1999년 김태정 검찰총장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오히려 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틀 뒤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이 “수사권 독립 문제는 신중히 검토해 시간을 갖고 처리하겠다.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며 대선공약을 파기했다. 노무현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때도 마찬가지다. 조정 논의가 한창이던 2005년 김종빈 검찰총장은 “새 시대의 이상인 인권존중의 선진 검찰을 이뤄내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각오”라며 인권 논쟁을 일으켰다. 이번에 문무일 검찰총장도 “신속처리법안들(로 인해) 기본권 보호에 빈틈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했다.

수사권 조정 쟁점 가운데 인권 문제는 검찰에 유리하다. 이 문제에서 검찰이 경찰보다 앞선다. 검찰은 인권 문제가 수사권 조정의 목적이라는 주장도 한다. 검찰과 가까운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수사권 조정은 (중략) 인권보장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성명을 지난주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수사권 조정의 목적이 검찰개혁에서 인권보장으로 바뀌는데, 전략적이지 못한 경찰은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응하고 결국 패해왔다. 이번에도 ‘수사권 조정에 관한 검찰의 왜곡과 진실’이라는 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돌렸다. 검찰도 인권침해를 한다는 얘기다. 수사는 검찰이 하든 경찰이 하든 인권을 보호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과정이다. 수사를 통해 피해자 인권을 보호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럴듯한 포장이다. 수사는 피해를 회복시키고 보복을 대신할 뿐이다. 인권보호는 수사기관이 아니라 법원과 사회가 한다. 수사권을 조정해 인권도 좋아지면 더 좋겠지만 인권 상황을 개선하려고 수사권을 조정하는 게 아니다.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는 형사소송법 312조 1항에서 비롯된다.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이 조항은 외국에는 유례가 없다.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부인하면 끝이다. 증거로 쓰지도 못한다. 미국·독일·일본 등 외국의 검찰과 경찰 등 모든 수사기관 조서가 한국 경찰 피의자신문조서와 효력이 같다. 형소법 312조 1항 때문에 경찰과 검찰 이중수사가 정착되었고 인권침해 요소도 늘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비슷한 수사가 반복되고 수사기간이 길어져 시민 부담이 늘어난다. 무엇보다 수사와 기소를 검찰이라는 하나의 기관이 하면서 기소권에 의한 수사권 통제 기능이 사라진다. 312조 1항으로 인권침해 총량이 높아진 상태에서 검찰이 경찰의 자질과 인권침해를 문제 삼는 것이다.” 과거 수사권 조정에 관여했던 관계자 등의 설명이다.

조서에 증거능력 부여하며

검경 ‘이중수사’ 정착됐고

“수사·기소, 한 기관이 맡아

수사권 통제 기능 사라져”


문재인 대통령도 이중수사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통제와 지휘가 그렇게 강화되었어도 아직도 경찰과 검찰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가 계속 발견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문재인·김인회, <검찰을 생각한다>, 2011)

형소법 312조 1항을 정당화하는 검찰의 논리가 준(準)사법기관론이다. 검찰이 사실상 사법기관이기 때문에 수사관이 작성한 조서도 판사에게 하는 진술과 같은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검사는 공익 대변자라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존재라는 객관의무론으로 이어진다. 법무부는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것은 준사법기관이자 객관의무를 부담한 검사의 지위를 고려한 것”이라고 국회에 제출한 312조 1항 폐지 반대 의견에서 밝혔다. 이러한 주장은 외국과 비교해 법률적 근거가 부족하다. 독일 형소법은 검사에게 법관과 같은 객관의무를 부여하고 이에 따라 검사는 준사법기관으로도 인정된다. 수사에서도 가능한 한 멀어지려 한다. 하지만 우리 형소법에는 이런 규정이 없다. 공익의 대표자라는 표현 정도가 검찰청법에 나올 뿐이다. 검찰을 준사법기구라 쳐도 지금처럼 일상적으로 수사를 해서는 그 성격이 유지되기 어렵다. “헌법에서 검사에게 영장신청권한을 줄 때는 수사는 전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수사한 사건에서 자기가 영장 청구하는 나라는 없다”고 판사 출신과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똑같이 얘기한다.

검찰은 근본적으로 객관적일 수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특수부 검사 출신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설명이다. “기소할 사건인지 하지 않을 사건인지 결정해 한쪽으로 몰아서 결정문을 쓰라는 게 검찰의 비공식 매뉴얼이다. 검찰은 객관적이지도 않고 객관적이어서도 안된다. 검사에게는 근본적인 정의감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 제출한 법무부 입장은 일종의 순환논법이다. 312조 1항이 있어서 준사법기관인지, 준사법기관이라서 312조 1항이 필요한지 헷갈린다. 논리적 애매함은 주장에 그치지 않고 피의자를 압박하는 수단이 된다. “수사관들이 피의자에게 곧잘 ‘우리 검사님이 가장 큰 변호인’이라고 한다. 객관적인 준사법기관에 다 털어놓으라는 것이다. 검사가 객관적이면 변호사는 왜 필요한가. 오히려 검사가 영장청구권과 신문조서를 모두 쥐고 있는 바람에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까지 무력화되는 것 아닌가.” 특수부 사건을 변호해본 금태섭 의원 얘기다.

‘준사법기관’ 줄기인 ‘객관’

무소불위 권력 만든 논리

“검사가 객관적이어선 안돼

근본적인 정의감 있기 때문”

과거 헌법재판소도 지적해


과장된 준사법기관론 문제를 헌법재판소도 지적했다. 312조 1항에 대한 위헌심판이 1995년과 2005년 열렸을 때 위헌폐지 의견을 낸 재판관은 각각 2명과 4명이었다. 검찰청법 4조 1항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라는 표현에 대해 위헌의견 재판관들은 유일한 공소기관이라는 의미일 뿐이라고 했다. “검사는 어디까지나 피고인을 범죄자라고 지목하여 그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소추기관의 지위에 있을 뿐이다.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라고 하는 것은 국가와 개인의 긴장관계에서 국가를 대표하여 제3의 중립적 기관인 법관에게 심판을 요구하는 지위에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준사법기관론에 부정적이다. “검찰은 본질적으로 행정부이다. 사법부에 본질적으로 요청되는 소극성, 공평성이라는 조직 구성 원리는 행정부인 검찰의 조직 구성 원리와 질적으로 다르다. (중략) 준사법기관론이 극단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국가 우위 사상이 된다. 검사는 피의자·피고인에게 대립되는 역할을 버리고 온전히 국가를 대신하게 된다. 결국 판사와 검사가 일체화되어 피의자·피고인을 포위하게 된다.”(<검찰을 생각한다>)

준사법기관론은 검찰을 통제불능 상태로 만든다. 사법기관 행세를 하면서 독립을 주장하고 통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검찰개혁 논의가 시작된 것도 인권보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소불위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서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5년 김종빈 검찰총장이 천정배 법무장관의 수사지휘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는 지휘였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인 사건은 지휘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한다. 그전까지 검찰은 청와대 하명수사를 서슴없이 해왔다. 검찰총장의 반발은 검찰개혁 국면에서 조직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검찰은 행정기관이고 민주적 통제를 위해서는 법무부 장관으로 대표되는 정치권력의 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검찰의 중립성이 마치 검찰의 권한 행사에 어떠한 견제와 통제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식이나 검찰의 기득권 옹호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검찰을 생각한다>)고 했다.

검찰은 변호인의 강력한 반론이 없어도 공동선을 구현하는 무오류의 조직이고, 그래서 검찰 이익이 국가 이익이라는 생각이 형소법 312조 1항 깊숙한 곳에 들어 있다. 그래서 312조 1항을 폐지해야만 검찰과 경찰의 역할을 제대로 논의할 수 있다. 수사기관의 인권침해 축소도, 기소권에 의한 수사권 통제 방안도, 청와대의 부당한 검찰권 사용 감시도, 검찰의 사건덮기 방지도 모두 여기에서 출발한다.

※형사소송법 312조 1항: 검사가 피고인이 된 피의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음이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여 인정되고,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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