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고래와 코끼리의 유전자에서 암을 이겨낼 단서를 찾았다. 암 발생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덩치들의 지혜는 새로운 암 치료제 개발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유전자 돌연변이 원천 차단하는 고래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의 마크 톨리스 교수가 이끈 국제 연구진은 지난 10일 '분자생물학과 진화'지에 "혹등고래의 유전자를 이루는 DNA를 해독해 암 억제 메커니즘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혹등고래는 몸무게가 30t에 이르며 수명도 45~50년으로 길다.
연구진은 1975년부터 미국 동부 해안에서 관찰을 해온 '솔트'란 암컷 혹등고래에서 피부 시료를 채취해 유전자를 해독했다. 솔트의 유전자는 대왕고래, 북극고래 등 다른 고래 9종의 DNA 해독 결과와도 비교했다. 여기서 혹등고래는 세포 증식과 DNA 수리에 관련된 유전자들이 다른 동물보다 더 많이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최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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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DNA 전체로 보면 시간에 따른 돌연변이 발생 속도가 다른 동물보다 느렸다. 앞서 2016년 국립수산과학원의 박중연 연구관은 인간은 DNA에서 같은 부분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약 60만개이지만, 밍크고래는 46만개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DNA에서 반복 부위는 돌연변이율이 높다. 결국 고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최대한 억제하는 동시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바로 수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킨 것이다.
1970년대 영국 옥스퍼드대의 리처드 페토 박사는 동물원이나 자연에서 죽은 코끼리를 부검해 암으로 죽은 경우가 5% 미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몸무게가 코끼리의 70분의 1에 불과한 인간은 그 비율이 11~25%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페토의 역설'이라고 했다.
지난해 시카고대 연구진은 코끼리의 몸집이 커지면서 기능을 하지 않던 항암 유전자가 깨어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미국 유타대 연구진은 사람이 한 벌 가진 항암 유전자를 코끼리는 20벌 갖고 있음을 알아냈다. 덩치 큰 공룡도 화석에서 항암 유전자가 발견됐다.
◇번식 오래 하려고 항암 능력 진화
물론 같은 동물이라면 이론대로 몸집이 클수록 세포분열과 돌연변이가 늘어 암 발생이 증가한다. 영국 과학자들은 1990년대에 1만7000명이 넘는 공무원을 25년간 추적 조사해 키가 클수록 암이 더 잘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다른 동물끼리 비교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애리조나 주립대의 카를로 말리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15년 동물원에서 죽은 포유류 36종을 부검한 기록을 비교했다. 그러자 암으로 죽은 비율이 바위너구리 1%에서 코끼리 5%, 아프리카들개 8%에 이르기까지 몸무게나 수명에 따라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론으로 따지면 몸집이 훨씬 크고 수명이 긴 코끼리는 암 사망 비율이 두 자릿수를 훌쩍 넘어야 했다.
과학자들은 동물의 몸집이 커지면서 암을 이기는 능력이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목적은 번식이다. 덩치가 클수록 임신 기간이 길다. 코끼리는 22개월이나 된다. 게다가 한 번에 한 마리만 낳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가능한 한 오래 출산을 해야 자손을 퍼뜨릴 수 있다. 결국 코끼리는 번식을 계속하기 위해 나이가 들어도 암에 걸리지 않도록 진화했다는 말이다. 고래도 오랫동안 번식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고래와 코끼리의 항암 유전자를 이용하면 인간을 치료할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애리조나 주립대 연구진은 고래 세포를 이용해 항암 물질을 시험해볼 계획이다. 이를테면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고래 단백질로 암세포 크기를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식이다. 고래가 암환자를 춤추게 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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