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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직설]스승의날을 맞이했을 스승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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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이 된 나의 아이는 유치원에 다닌다. 그는 인생의 봄날을 맞이한 것처럼 아무런 고민 없이 언제나 즐겁다. 그러나 그를 향한 부모의 걱정은 계속 많아져 간다. 5월이 되고서는 5월15일에 무엇을 들려서 보내야 하나, 하는 것이 추가되었다. ‘김영란법’ 때문에, 혹은 그 덕분에, 일정 금액 이하의 범위에서 선물을 골라야 한다고 한다. 나는 어느새 아이의 아빠이면서 그의 스승을 신경 써야 할 자리에 이르렀다.

경향신문

아마 나의 부모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특히 내가 초등학생이던, 정확히는 국민학생이던 1990년대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사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거의 모든 반의 칠판마다 ‘선생님 사랑해요’ 하는 글씨와 그림이 색분필로 채워졌고, 교탁에는 그들을 위한 선물이 쌓였다. 반장의 주도로 스승의 은혜가 하늘 같다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감정이 격해져 울기도 했다.

문제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교사들이 무척 많다는 데 있었다. H교사는 “강남에서 일할 때는 트렁크를 열면 이런저런 선물이 많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했고, S교사는 선물을 가져오지 않은 아이 두엇을 앞으로 불러내서 “너희는 편지 한 통 쓰지 않았느냐”고 눈물이 나도록 혼내기도 했다. 사실 나에게 스승의날은 교탁에 쌓인 선물과, 그것을 하나하나 열어 보면서 학생의 이름을 호명하는 교사,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질책을 당하는 학생들, 그러한 야만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6학년 때 담임이었던 J는 30대 젊은 교사였고 그는 자신 앞에 쌓인 선물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모님들께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세요” 하고는 서둘러 수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때 학생들은 J에게서 오히려 서운함을 느꼈다. 그것이 그만큼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었던 것이다. 20년 전에는 H와 S의 방식이 오히려 별다른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 언제나 시대에 따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문법, 문화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러한 시대를 학생으로서 젊은 교사로서 겪어낸 이들이 강단에 서고 있고, 덕분에 2019년의 5월15일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스승의날을 임시휴일로 지정하기도 하고, 아예 폐지하자는 당사자의 청원도 올라온다. 여기에는 교권이라는 것의 추락과 달라진 스승의 역할 등 여러 이유가 작용하겠으나, 나는 나의 세대가 쌓아올린 지금의 풍경이 이전보다는 더 마음에 든다.

아이의 유치원에서도 “내일은 스승의날입니다. 이날은 선생님들에게는 스승의 길을 걷는 사명감과 긍지로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자들에게는 스승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날입니다. 이에 저희 유치원에서는 선물, 꽃바구니 등 일체의 물건을 받지 않으니 감사의 뜻이 훼손되거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하고 모든 학부모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 아이는 참 좋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것 같아” 하고 말했다. 스승의날을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날’로 명시한 그 부분이 참 좋고 고마웠다.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5월14일에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에서 ‘대학원생의날’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다. 그들은 “푸코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튜링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퀴리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김윤식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모든 교수들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 거창한 행사는 없더라도, 대학원생 동료, 선후배, 제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날이 되도록 하면 어떨까요?”라고, 절박한 마음을 드러냈다.

스승의날의 주체가 ‘스승’이듯이, 이날은 유치원에서든 대학교에서든 그들이 자신의 제자들을 돌아보는 날 역시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위한 물음표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답하는 주체적인 당사자가 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날이 될 것이다. 특히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바람처럼, 자신 역시 언젠가는 대학원생이었던 교수들이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대학원생들에게 격려의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단순히 선물을 거부하고 휴교를 하는 데서,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의 아이가 학교에서 맞이하게 될 스승의날은 그렇게 다시 조금은 또 다른 날로 다가갈 수 있으면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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