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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신율의 정치 읽기] 국민은 솔직하고 잘못 인정하는 정부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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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 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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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가장 힘들게 생각되는 것은 정치권이 정파에 따라 대립이나 갈등이 격렬하고 또 그에 따라서 지지하는 국민 사이에서도 갈수록 적대감이 높아지는 현상들이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앞의 언급은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뒤의 언급은 2019년 5월 2일 정부 출범 2주년을 앞두고 사회 각계 원로를 초청해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이 밝힌 말이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둘은 순서가 바뀌어야 했다. 국민 사이 적대감이 날로 높아지는 시점에서 대통령으로 취임했는데 자신이 진정한 국민 통합을 이뤄냈다고 하는 것이 순서에 맞는다는 말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인정했다. 정치인의 솔직함은 때로 필요하다. 정치인이나 정부가 솔직할 때 국민은 그런 정치인 혹은 정부를 신뢰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언급이 진짜 솔직함에서 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 5월 4일 북한이 ‘뭔가’를 쏘아 올렸을 때, 합참은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40분 후 ‘미사일’을 ‘발사체’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하루 정도 지나서는 ‘신형 전술유도무기’라는 아주 복잡한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합참의 처음 발표처럼 국내외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발사한 ‘뭔가’를 ‘러시아 이스칸다르 미사일의 북한판 개량형’이라고 일찌감치 규정했다. 이런 분석은 북한이 발표한 사진에 근거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신형 전술유도무기’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 때문일 것이다. 유엔 결의안 1874호는 북한에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 행위 중단을 요구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면 결의안 위반이 된다. 유엔 결의안 위반이 명백하면 현 정권이 그토록 매달렸던 남북관계와 북한 비핵화가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그래서 현 정권은 ‘미사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당 입장은 더욱 흥미진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군사훈련 차원인 것 같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훈련이라 해서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있는데 북한은 훈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더불어민주당도 ‘유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나름대로 해석’하려는 흔적이지, 이것은 앞에 언급했던 솔직함이 아니다.

솔직함은 현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장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은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관성을 갖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모습을 보이니 안타깝다.

물론 여권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이 보여준 지금의 행동은 집권 2년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북한 행동을 ‘화장’시키고 ‘분칠’하고 싶었을 터다. 하지만 정부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지금같이 정보가 넘쳐흐르는 사회에서는 정부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많지 않다. 정보가 많은 사회일수록 솔직해져야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정권의 솔직하지 못함은 남 탓을 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권이 정파에 따라 대립이나 갈등이 격렬하고 또 그에 따라서 지지하는 국민 사이에서도 갈수록 적대감이 높아지는 현상”을 인정했다. 동시에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임을 밝혔어야 했다. 지금 청와대가 하는 행위에는 ‘국민들 사이의 적대감’을 상승시키는 요소도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가 바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다. 2018년 5월 30일 당시 국민청원 책임자였던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은 청와대 페이스북 라이브 ‘11:50분 청와대입니다’에서 “(청원 게시판이) ‘놀이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 놀이터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시에도 무분별한 청원 때문에 국민청원 게시판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놀이터’라고 청원 게시판을 규정한 것이다. 물론 놀이터 혹은 국민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장치는 필요하다. ‘불만의 해소’는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신문고 제도가 있었다. 신문고는 조선 초기인 태종 1년 백성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해줄 목적으로 대궐 밖 문루(門樓) 위에 달았던 북이다. 그런데 이 신문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을 호소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상관이나 주인을 고발한다거나 관찰사나 수령을 고발하는 것은 금지돼 있었다. 또한 일반 상인이나 노비, 또 지방에 거주하는 관민(官民)이 신문고를 이용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신문고가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게 이용됐다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도 알 수 있다. 신문고 연구 권위자인 한우근 전 서울대 교수는 “신문고가 원래 취지와 달리 신료들 징계에 이용됨으로써, 신권(臣權)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금도 이런 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청와대로 달려가게 만드는 이른바 ‘대통령에로의 유인 효과’다. 이를 통해 국민 뇌리 속에는 ‘대통령의 전지전능’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이는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선과 악, 적과 동지의 뚜렷한 이분법적 사고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을 삭발하게 해달라는 성차별적 저의가 엿보이는 청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해체하라는 반민주적인 청원 등을 볼 때, 지금 청원 게시판은 상대가 악이기에 제거하고 타도해야 할 존재라는 이분법적 사고와 상대에 대한 증오가 넘쳐나는 ‘노골적 적대감의 놀이터’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제도를 방치해둔 채 남의 말하듯 국민 사이에 적대감이 높아지고 있음을 한탄한다면, 이는 전형적인 남 탓이다.

정부 출범 2주년을 앞두고 사회 각계 원로를 초청해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제가 약식 취임식을 하는 날 그 취임식 전에 야당 당사를 전부 다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과거 어느 정부보다 야당 대표들, 원내 대표들 자주 만났다고 생각하고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도 드디어 만들었습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故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동안 야당 대표와 모두 10차례 단독 회동을 가졌었다. 故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동안 총 19회 여야 대표 회동을 가졌다. 故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 대표와의 단독 회동 3회를 비롯해 총 13회 여야 대표 간의 회동을 가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9회의 여야 대표 회동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야당 지도부와 1회의 단독 회동을 포함해 총 6회의 여야 대표 회동을 가졌다.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어느 정부보다 야당 대표들을 자주 만났다’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문 대통령은 여야정 협의체를 거론하는데 여야정 협의체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여야정 협의체에서 야당이 주장한 말이 얼마나 제도에 반영됐는지가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야당을 만난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반영할 것은 반영하는 자세다. 이런 자세가 아쉽다는 것이다. 이를 종합해서 보자면, 이 역시 상황의 주관적 해석만이 난무할 뿐 솔직함과는 거리가 멀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둘로 갈라져 서로 증오하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고, 북한의 비핵화는 미궁에 빠져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2년이 앞으로도 반복된다면 국가를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고칠 것은 고쳤으면 좋겠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8호 (2019.05.15~2019.05.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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