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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인영·임종석 그리고 황교안의 ‘가짜뉴스’ 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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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65/ 이인영-황교안

이인영 “레프트 윙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옮겨” 선언
황교안 ‘80년대 운동권 썩은 뿌리’ 발언에 출마 결심

“임종석은 돈 벌어본 일 없는 사람” 황교안 발언 파장
임종석, 1995년부터 경제활동…2000년 국회의원 당선
황교안 대표 자신은 검사 출신 전관예우로 거액 벌어

1987년 전대협 대중주의 노선 6월 항쟁 성공 이끌어
정치 진출한 학생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꾸준히 진화
황교안 대표는 1980년대 공안검사 인식에서 멈춘 듯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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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인영 의원은 고려대 국문과 84학번입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이었습니다. 지금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학생운동권 출신을 딱 한 사람만 꼽으라면 그게 바로 이인영 의원입니다.

이인영 의원이 김태년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에 당선된 것을 보고 몇몇 언론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반란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해석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비박이었던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된 것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그럴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인영 의원은 골수 친문이라고 할 수 있는 ‘부엉이 모임’ 의원들의 지지를 꽤 많이 받았습니다. 전임 원내대표이면서 역시 골수 친문이라고 할 수 있는 홍영표 의원도 이인영 의원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원내대표 경선 구도를 ‘친문 대 비문’, ‘주류 대 비주류’로 단순하게 분석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시각입니다.

한겨레

이인영 의원은 김태년 노웅래 의원보다 훨씬 늦게 원내대표 경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해서 원내대표에 당선됐을까요?

이인영 의원은 지난 5월 8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연설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그가 원내대표에 나서는 이유와 원내대표로서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말 잘 듣는 남자 이인영입니다.

원내대표에 출마한다니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너부터 바꾸라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머리부터 바꿨습니다. 벌써 말 잘 듣지 않습니까?

염색하면 찍어준다는 유혹도 있었지만, 너의 변화를 입증하라는 주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발끝까지도 바꾸려고 합니다. 정치라는 축구장에서, 레프트 윙에서 옮겨 중앙 미드필더가 되겠습니다.

5월 4일, 진보정치의 정신적 기둥, 문익환 목사님, 김근태 의장님 묘소를 들렸습니다. 이제 중원에서 뛰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역사의 약속입니다. 촛불 시민혁명의 완성은 국민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총선승리가 지상 최대의 명령인 시간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총선에서 승리해야 의원님들도 살아서 돌아오십니다. 변화와 통합의 길로 나가야만 총선에서 승리합니다.

요즘 만나는 분마다 다음 총선, 민주당이 쉽지 않다고 걱정하십니다.

“이 정도의 정당지지율에, 나 정도의 인물이면 당선되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안일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변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저부터 변화를 결단합니다. 제 안의 낡은 관념, 아집부터 불살라 버리겠습니다.

저의 신념과 가치보다 우리 모두의 이해를 대변하겠습니다. 실용과 중도를 저들에게 내주지 않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오래 생각했으니 망설임도 없습니다. 미래로 가는 길이기에 주저함은 더더욱 없습니다. 자유한국당이 극우로 갈 때 신속하게 중원을 장악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겠습니다.



‘레프트 윙에서 옮겨 중앙 미드필더가 되겠다’는 말이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기려면 당이 중도로 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인영 의원이 더 낫다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인영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 뒤늦게 뛰어든 이유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4월 3월 재보선 직전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이인영 의원을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인영 의원에게 원내대표를 왜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인영 의원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3월 1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얘기를 꺼냈습니다. 황교안 대표의 글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썩은 뿌리에서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 세력은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입니다.

이들 인맥은 정치권, 좌파언론, 시민단체, 민노총 등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되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발상과 혁신을 가로막습니다.

과거로 퇴행하는 정치에는 이들의 뿌리 깊은 카르텔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타협이나 협상은 무의미합니다. 오직 대결적 사고방식만이 지배합니다. 그들에게 협치란, 이들 집단 사고의 뿌리로부터 태어난 가시 꽃들의 향연일 뿐입니다.

소득주도 성장, 비정규직 제로, 공공일자리 확대, 탈원전...문 정권의 모든 국가 정책들이 이들 집단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한 포퓰리즘입니다.

선거법 등 3법 패스트 트랙 추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그들의 생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어둠의 야합일 뿐입니다.

썩은 뿌리에서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피웁시다.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의 봄’을 맞이합시다.



이인영 의원은 글을 읽는 순간 머리 위에 뭔가를 확 뒤집어쓴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원내대표 출마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짓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글을 보고 원내대표에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만성 담마진으로 징집면제 처분을 받고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1983년 검사로 임용됐고 1987년부터 서울지검 공안 2부 검사, 대검찰청 검찰 연구관, 서울지검 공안 1부 검사, 대검찰청 공안과장, 서울지검 공안 2부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등 주로 공안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전형적인 공안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7년 전두환 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던 이인영 의원으로서는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 대표가 80년대 운동권을 ‘썩은 뿌리’라고 통째로 매도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황교안 대표의 이런 발언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기 위한 단순한 정치적인 언사가 아니라 그의 확신에 찬 신념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하루 전인 5월 7일 황교안 대표는 민생대장정 첫 행사로 부산을 방문했습니다. 한겨레에서도 장나래 기자가 부산에 출장을 갔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자갈치 시장, 개인택시회관, 덕포 시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덕천주공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에서 부녀회원들과 간담회를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을 비판하다가 느닷없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얘기를 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오늘날 일류 국가가 되게 만든 게 여러분입니다. 50대 60대 이후 분들이 이 나라를 세워 왔습니다. 사회의 부족한 점을 파고들어서 우리나라를 무너뜨리려던 세력이 있습니다. 좌파 혁명세력입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학생운동권에 가면 혁명이론을 공부합니다. 싸우는 것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우는 것을 공부하고 세우려고 노력했는데, 지금 이 좌파는 돈 벌어본 일은 없는 사람들입니다. 임종석 씨가 무슨 돈 벌어본 사람입니까? 제가 그 주임 검사였어요. 정상적으로 일해서 정상적으로 돈 번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싸워서 투쟁해서 뺏은 게 있는 거죠.

민변에서 민변 변호사들 잘살아요. 어떻게 잘 사냐.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고 해서 소송 걸라고 해서 소송비 받으면 우파 변호사들은 수임을 잘 못 하는데 하여튼.. 요약하면 우리는 싸움을 못 해 본, 나라 살리기만 전념한 사람입니다. 그게 나쁜겁니까? 격려를 해 주세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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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황교안 대표의 이 발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왜 등장한 거죠?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정상적으로 돈을 번 적이 없고 또 누군가의 돈을 빼앗았다고요?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부추겨서 소송비를 받아서 잘 산다고요?

이런 터무니 없는 발언은 태극기 부대가 유포하는 가짜뉴스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망언을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제1야당의 대표가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입니다. 그는 집권 초기 문재인 정부의 출범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집중 표적이었습니다. 모든 인사를 임종석 비서실장이 좌지우지한다는 헛소문이 돌았습니다. 심지어 청와대 내부 서열은 전대협 서열에 따라 임종석 비서실장이 ‘넘버 1’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넘버 6’에 불과하다는 가짜뉴스가 돌았습니다. 이른바 보수라는 사람들이 그런 가짜뉴스를 돌리며 키득거렸습니다. 꽤 고학력자들도 그랬습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물러나자 비로소 그런 가짜뉴스가 사라졌습니다.

아무튼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겨냥한 황교안 대표의 발언이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을 저만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머니투데이> 이재원 기자가 5월 10일 이런 기사를 썼습니다. 통째로 인용하겠습니다. 이미 읽어보신 분들은 건너뛰시기 바랍니다.



황교안 25억 vs 임종석 7억…누가 더 돈 잘 벌었나

[the 300] 황, 검사-변호사-총리 연평균 1억원 수입…임, 시민운동-국회의원-서울시 경력으로 경제 활동

장외 투쟁을 하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운동권을 겨냥해 “80년대 학생운동권은 혁명이론, 싸우는 것을 공부한다”며 “우리는 (나라를) 세우는 것을 공부하고 세우려고 노력했는데, 지금 좌파는 돈 벌어본 일은 없는 사람”이라고 직격했다.

검사 출신의 황 대표와 총학생회장 출신의 임 전 실장의 삶, 특히 경제 활동의 궤적은 어떻게 달랐을까.

◇ ‘미스터 국보법’에서 ‘1억원 수임료’까지

황 대표의 사회생활은 1981년 사법시험 합격과 1982년 12월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시보로 시작했다. 황 대표는 대입에서 재수를 했지만 두드러기와 유사한 '담마진'으로 징집을 면제받았다. 사법시험 준비 과정에서도, 합격 이후에도 군 생활로 경력이 단절되는 일은 없었다.

이후 대검찰청 공안과장과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 주로 공안검사로 활동했다. 황 대표는 공안 수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가보안법 해설'을 저술해 '미스터(MR.)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임 전 실장과의 첫 인연도 임 전 실장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 과정에서 맺었다. 황 대표는 “임종석 씨가 무슨 돈 벌어본 사람이냐”며 “제가 그 주임 검사였다”라고도 말했다.

초임 검사는 임용 즉시 3급 공무원으로 임용된다. 3급 공무원 1호봉 월급은 지난해 기준으로 300만원가량이다. 13~15년차(호봉)이 돼야 도달하는 부장검사의 월급은 750만원 선이다. 황 대표는 2011년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검찰을 떠난 황 대표는 2011년 9월부터 2013년 1월까지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던 때로 평가된다. 17개월간 근무하며 약 17억원의 자문·수임료를 받았다.

올해 초 한국당 당권경쟁 과정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측이 제기하며 불거진 이 문제에 대해 황 대표는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액수가 과해졌는데 법조계에서 초기에 나온 분들이 갖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해명했다.

황 대표의 ‘황제 수임’ 논란은 과거 청문회 등에서도 있었다. 황 대표는 1억3000여만원 정도를 기부했다.

2013년부터는 다시 공직에 몸담았다. 2013년부터 2년간 제63대 법무부 장관으로, 2015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는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지난해 기준 국무총리 연봉은 1억7500여만원, 장관 연봉은 1억2900여만원이다. 황 대표는 현재 한국당 대표로 근무하며 당에서 월급을 받고 있다.

황 대표의 총 재산은 대통령권한대행 당시인 2017년 마지막 공개된 것을 기준으로 25억2173만원이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한신아파트와 배우자가 보유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아파트 등이다.

◇ 돈 안 벌어본 임종석?…졸업하고 나서는

임 전 실장은 한양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9년 한양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고 대학 운동권 연합체인 전국대학생협의회 3기 의장을 맡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물론 당시에는 황 대표의 말처럼 ‘돈을 벌어보지는’ 않았다. 그가 기획했던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한국외대 학생) 평양 방문으로 오히려 현상금이 걸린 신세가 되기도 했다. 1988년 서울 송파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가 3600만원이던 당시 임 전 실장의 현상금은 1000만원이었다.

결국 체포된 그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의 수사를 황 대표가 맡았다. 결국 임 전 실장은 3년 6개월간 복역한 뒤 1993년 출소했다. 이 전과 기록으로 임 전 실장 역시 군 면제 판정을 받는다.

입학 10년만인 1995년이 돼서야 대학을 졸업한 임 전 실장은 첫 사회생활을 시민운동으로 시작한다. 1995년 5월부터 1997년 5월까지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창립), 1999~2000년까지 푸른 정치 2000 공동대표를 맡았다. 황 대표만큼 많이는 못 벌었지만, 경제 활동을 이어간 셈이다.

2000년에는 16대 총선에 출마하며 제도권 정치에 입성한다. 만 34세 최연소 원내 입성이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당선되며 8년을 국회의원으로 지냈다. 2005년 기준 국회의원 수당과 입법활동비 등을 포함해 총급여는 월 700여만원 수준이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엔 당시 출범한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을 맡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정치자금법 재판 중인 것을 고려해(1심 유죄)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 그의 정치자금법 재판은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히며 최종 무죄 선고가 났다. 사무총장도 사퇴하며 ‘경제 활동 공백기’를 가졌다.

2014년에는 남측 방송을 대리해 대한민국 내 북한 저작물 이용의 저작권료를 북한에 지불하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그해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에서 활약한 뒤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돼 2015년까지 재직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 연봉은 1억원이 넘는다.

2016년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정무부시장도 사퇴했지만 결과는 낙선. 또다시 공백이 생겼다. 하지만 2017년 대선정국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 비서실장으로 영입됐고,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장관급인 비서실장의 연봉은 지난해 기준 1억2800여만원이다.

임 전 실장은 올해 4월 26일 공개된 재산등록사항에서 6억5000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취임 직후인 2017년 8월에는 4억3000만원을 신고했지만, 퇴임 시점인 1월 2억2000만원 늘어났다. 서울 은평뉴타운의 아파트 가액 변동, 급여 저축을 통한 예금 증대 등이 주요 요인이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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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오래전부터 시민운동, 국회의원,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을 하며 정상적으로 돈을 번 사람입니다. 황교안 대표가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콕 집어서 “돈 벌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한 것은 명백한 허위입니다.

더구나 황교안 대표는 공안검사 출신입니다. 전관예우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전관예우로 부당하게 돈을 번 법조인이 재야에서 시민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과거에도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하수인들이 해방 이후 항일 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이들의 심리적 기저에는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든 정당화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깔려 있었을 것입니다. 좀 더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가 보면 항일 운동가에 대한 죄의식도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독재 정권과 권위주의 정권을 떠받치던 검찰·경찰·안기부 등 권력기관 사람들, 그리고 권언유착의 시기를 거쳐 정치권력과 독점자본 기득권 체제에 서서히 편입되어 간 언론사 간부들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그런 병적 심리를 여러 차례 엿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대학에서 한때 학생운동을 했거나 학생운동권 언저리에 머물다가 사회에 진출해서 권력기관이나 기득권 언론사에 들어간 사람 중에 그런 사례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이들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놈들 정말 문제가 많다”거나 “내가 있을 때는 순수했는데 그 이후 주사파가 득세하면서 운동권이 타락했다”는 식의 극단적 궤변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이른바 보수 성향의 신문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운동권식 국정 운영’이라고 비판한 칼럼이나 사설이 많았습니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도 비슷한 심리였을 것이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기득권 세력에 가세해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던 언론사의 과거를 정당화하면서도 동시에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런 병든 심리 말입니다.

신문사 얘기를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조선일보> 사주였던 방일영 방우영 형제는 정권과 유착해 부를 쌓았습니다. 방우영 전 회장은 전두환 쿠데타 세력이 만든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을 지냈던 사람입니다. 그런 <조선일보>가 권위주의 정권과 맞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운동권’ ‘좌파’ ‘종북’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이인영 임종석 등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들은 정치에 진출한 뒤 꽤 오랫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공식 기구가 아니라 폐쇄적인 이너 서클이나 배후에서 의사결정을 한다고 비판받았습니다. 자신의 학생운동 경력을 훈장 삼아 권력을 탐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자신들의 출세에 관심이 더 많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비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지나치게 이념적이라는 비판, 종북 주사파라는 비판은 부당한 비판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비판을 하는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대개는 이들을 극단으로 몰아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입니다. 또는 기득권 세력의 음모에 휘둘리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1980년대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한 전대협의 기본 노선은 대중주의 노선이었습니다. 그래서 1987년 6월 항쟁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권 안에는 훨씬 강경한 노선을 주장하는 세력이 많이 있었습니다. 강경 노선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했다면 6월항쟁은 시민혁명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1987년 6월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전대협 1기 부의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우상호 의원은 내부 논쟁에서 강경론을 끝까지 뿌리치고 대중주의 노선을 지켰습니다. 국민과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상호 의원의 이런 경험은 30년 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끌어낼 때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뿐 아니라 새누리당 안에 있던 탄핵 찬성 의원들도 동참할 수 있도록 우상호 의원은 끈질기게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234명의 탄핵소추 찬성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이인영 임종석 우상호 의원은 결코 혁명가가 아닙니다. 현실을 조금씩이라도 점진적으로 바꿔보려는 개량주의자들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안에는 이들 이외에도 수많은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대개 50대입니다. 이들은 이제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아닙니다. 그냥 정치인입니다.

지금은 2019년입니다. 이들을 평가할 때 운동권 시절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훨씬 공정하고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인영 의원은 1999년 새천년민주당 발기인으로 참여해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떨어졌습니다.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서 당선됐습니다. 그는 이제 20년 경력의 중견 정치인입니다. 레프트 윙에서 옮겨 중원 미드필더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원내대표에 당선됐습니다. 학생 운동권 투사에서 어엿한 중견 정치인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반면에 황교안 대표의 세계관은 아직도 1980년대 공안정국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공식 석상에서 황교안 대표가 이인영 원내대표를 만날 것입니다. 8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을 향해 ‘썩은 뿌리’라고 저주를 퍼부었던 황교안 대표가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뭐라고 말할지 궁금합니다. 또 이인영 원내대표는 황교안 대표에게 뭐라고 말할지도 궁금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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