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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文정부 ‘한반도 평화’ 2년, 北 발사체에 좌초되나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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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ICBM 시험 발사 17개월 만에 다시 군사 도발 / 4일 방사포·신형 전술유도무기, 9일 단거리 미사일 추정 발사체 쏴 / '판문점선언'·'9.19.평양공동선언' 불구, 한반도 평화 흔들릴까 우려 / 北 단거리 탄도미사일, 美와 달리 韓에 '발등의 불' / 치밀한 전략 세워 대응 않으면 '진퇴양난' 처지 될 수도

세계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지난 4일 동해상에서 진행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 화력타격훈련.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한 사진에 등장한 무기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지대지 탄도미사일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또다시 군사적 도발 카드를 꺼냈다.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 이후 17개월만이며, 문재인 대통령 집권 2년을 앞둔 시점에서 북한은 지난 4일 방사포와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9일에는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숨가쁜 대선 일정을 마치자마자 북한 도발에 직면했다. 같은해 2월부터 미사일을 발사하던 북한은 북극성-2형, 스커드-ER, 화성-12형, 지대함 순항미사일 등을 잇따라 발사하며 한반도를 전쟁 직전 상황까지 몰고 갔다.

북한의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하던 정부는 한편으로는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고, 이는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의 ‘해빙’을 몰고 왔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판문점선언에 ‘한반도 비핵화’ 문구가 담겼고, 9.19 평양공동선언에서는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와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군사합의서가 채택됐다.

하지만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두 달 만에 북한이 군사행동에 나서면서 지난 2년 동안 문재인정부가 공을 들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미 동맹 체제에 빈틈을 만들고, 대북 유화 정책 동력을 떨어뜨려 현 정부의 최대 치적인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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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지난 4일 동해상에서 진행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 화력타격훈련.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한미 틈새 벌리는 北 단거리 미사일 도발

북한의 핵실험 또는 탄도미사일 발사는 한국과 미국에 공동의 위협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미 간에 ‘틈’이 존재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 미사일의 본토 공격을 차단해야 한다.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이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SM-3 등으로 미사일방어(MD)체계를 구축했지만, 100% 요격을 장담할 수 없다. 한 발이라도 MD 체계를 돌파하는 시나리오는 미국에 최악의 악몽이다.

최선의 대응책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차단해 기술적 진보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 수년 동안 미국이 본토 공격 가능성이 있는 ICBM, 하와이나 괌을 위협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잠수함에 탑재되는 북극성(SLBM) 미사일 발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제재 국면을 주도했던 이유다.

반면 한국은 휴전선 이남을 타격하는 스커드와 신형 전술유도무기 위협이 더 크다. 한반도 상공을 벗어나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은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그만큼 진보했다는 의미 이상은 아니다.

바로 여기서 한미 간에 ‘틈’이 존재한다.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동결 기준을 ICBM으로 설정한다면,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저강도 도발은 괜찮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북한 미사일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이같은 우려는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5일 미 폭스뉴스에서 “모라토리엄(동결)은 미국을 확실히 위협하는 ICBM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9.19 남북 군사합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긴장 고조 행위 중단을 촉구한 청와대보다도 유화적인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북한이 신형 전술유도무기보다 더 긴 비행거리를 갖는 스커드 등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구멍’을 열어줬다는 비판을 받는다.

‘장거리 미사일’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면, 미국과 한국 및 일본 등 역내 동맹국까지 위협 대상에 포함되므로 동맹 체제에서 ‘빈틈’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미국에 닿지 않는 건 뭐든 좋다’ 식의 발언은 한국을 북한 미사일 위협에 노출시키는 행위다. 한미 간 의견 차와 갈등이 커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전직 군 관계자는 “북한은 한미 동맹의 빈틈을 찾아내는데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며 “북한의 향후 행보를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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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가 5일 전날 동해 해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관 하에 진행된 화력타격 훈련 사진을 방영했다. 목표물을 맞힌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한국만 ‘진퇴양난’ 빠질 수도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른 미국의 대응 기조 변화는 한국을 진퇴양난에 처하게 할 우려가 있다.

미국 입장에서 스커드나 신형 전술유도무기는 실질적인 위협이 아니다. 로키(Low-key)로 대응해도 의회를 비롯한 국내 여론의 반발은 거의 없다.

반면 한반도 중부와 남부 지역 대부분을 사거리에 두는 북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한국에게 ‘발등의 불’이나 다름없다. 미국과 달리 실질적이고 강도 높은 대응을 해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절제된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이 지난 4일 발사한 신형 전술유도무기와 9일 쏘아올린 단거리 미사일 추정 발사체를 우리측에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대응에 나선다면, 한미 간 ‘엇박자’ 논란이 불가피하다. 북미 비핵화 협상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신중하게 행동하고 있고, 아베 신조 일본 정부도 직접적인 비난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움직임에 상응하는 군사훈련 등의 ‘카드’를 먼저 꺼내기는 어렵다.

국내 정치적 차원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 천안함 피격이나 연평도 포격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북한은 2017년까지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쏘아올리고 핵실험을 감행했던 전례가 있다.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북한의 태도에 대한 기억은 국민들 사이에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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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둔 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KBS 특집 대담 프로그램 '대통령에게 묻는다'에 출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북한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발사는 깨지기 쉬운 살얼음같은 남북 관계 개선을 뒤흔들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대북 인식이 악화되면 남북 화해 협력 기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북한이 본색을 드러냈다”며 대북 압박 재개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특성상 국민의 지지와 공감대를 얻지 못한 정책은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이같은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될 수 있다.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완화를 주고 받으려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구상이 틀어진 북한은 미국을 자신들이 원하는 협상 프레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당분간 자제하겠지만, 신형 전술유도무기처럼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나 대규모 군사훈련을 계속 감행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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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지난 4일 동해상에서 진행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 화력타격훈련.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한 사진에 등장한 무기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지대지 탄도미사일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또다시 미사일 발사에 나선다면, 대북 식량지원이나 경제협력 등은 국민의 호응을 얻기 힘들다. 문 대통령이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된 KBS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사실은 식량 지원에 대해서 한미 간에 합의를 한 것이 발사 이전인데, 그 이후 또다시 발사 있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선 국민 공감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점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견디면서 연말까지 미국의 ‘빅딜’ 전략을 바꿔야 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처지다. 북한이 올해 초 천명한 ‘새로운 길’이 빈말이 아니라는 점을 과시해야 미국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을 다소나마 높일 수 있다.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대해 지난 8일 “정상적이며 자위적인 훈련”이라며 “우리의 자주권, 자위권을 부정하려 든다면 우리도 그들도 원치않는 방향으로 우리를 떠미는 후과(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북한이 본격적인 군사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핵화 동력을 유지하려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현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진퇴양난의 처지에 몰릴 수 있다. 2년에 걸쳐 진행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작업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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