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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신율의 정치 읽기]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형적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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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사진 오른쪽)가 지난 4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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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법률안과 공수처 설치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태워졌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난장판이 됐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장외로 나가거나 국회에서 드러눕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이런 모습을 보여서인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자유한국당 해체 청원이 올라왔고 해당 청원에 동의하는 사람 숫자가 한 시간에 만 명씩 늘어나는 ‘기현상’까지 보였다.

‘기현상’이라 표현한 이유는 청원에 동의하는 사람 증가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자유한국당에 분노하는 국민이 상당해야 하고, 분노 정도도 엄청나야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4월 22∼26일 사이에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4월 29일 발표한 여론조사(95% 신뢰 수준, 표본오차 ±2%포인트)를 보면, 민주당은 지난주보다 0.2%포인트 상승한 38%로 집계됐고, 한국당 역시 0.2%포인트 오른 31.5%를 기록했다. 이 여론조사를 실시할 당시 역시 국회에서는 여야 간 대치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당 해체 청원이 놀라운 속도로 100만명을 돌파한 반면, 민주당 해산 청원은 15만명 정도에 그치는 현상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 정치 상황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회 폭력 사태의 원인은 무엇이었나다. 둘째는 이 법안의 핵심을 국민이 제대로 알고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가다. 특히 두 번째가 중요하다. 정치권이 걸핏하면 ‘촛불의 명령’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촛불의 명령’ ‘국민의 명령’이라면 이 부분에 대한 국민 이해도가 높아야 정상이다. 이런 이해 정도는 결국 이번 법안 패스트트랙 상정의 정당성 문제와 직결된다.

이번 국회 사태를 촉발시킨 원인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부터 생각해보자. 시발점은 이른바 ‘사보임’ 사태였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오신환·권은희 의원을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에서 사임시키면서부터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과거부터 상임위나 특위 위원에 대한 사보임은 수없이 있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만 봐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과거에 있어왔던 사보임과 이번의 사보임은 그 ‘동기’가 다르다.

국회법 85조2는 패스트트랙 상정 요건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재적위원 무기명 투표에서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정하고 있다. 무기명 투표에 주목해야 한다. 무기명 투표는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하나는 민주주의 선거에서의 기본 원칙인 보통, 평등, 비밀, 직접선거가 의원에게도 당연히 적용돼야 한다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의원의 독립성과 자율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의 의미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이번에 사보임을 ‘당한’ 권은희·오신환 의원은 공수처 법안이나 선거제도 개혁안에 각각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김관영 원내대표는 이들 두 의원 대신 확실히 찬성표를 던질 의원을 위원으로 임명한 것이다.

사실이라면 이는 첫째,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한 것이고 둘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의원 개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들 두 의원은 ‘당신들은 투표에서 반대할 것 같으니까 당신들 빼고 대신 찬성할 사람을 넣고 투표하겠다’는 결정의 희생자다. 이런 상황에서 투표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찬성을 위한 투표는 투표가 아니라 요식행위다. 투표가 요식행위로 전락할 때 민주주의는 처참히 훼손된다. 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는 ‘과정의 공정함’을 무참히 짓밟는 행위다. 설사 민주당 주장처럼 두 법안의 패스트트랙 상정이 그토록 절실하다 해도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추진해서는 안 된다. 이런 행위를 국민이 ‘명령’했을 리도 만무하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제아무리 필요한 선거제도라 해도, 또 공수처 설치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법안이라 해도, 대한민국 존재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추진할 수는 없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앞에 언급한 대로 국민들이 과연 지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법안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가다. 이는 무리한 패스트트랙 상정의 정치적 정당성과 관련된 대목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 의석 분포를 보면 분명 문제가 있다. 20대 총선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의 선거제도가 기형적임을 알 수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획득한 정당 득표율은 36.01%였는데 122석을 얻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득표율이 27.45%였는데 123석의 의석을 획득했다. 이 점만 놓고 봐도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이 제대로 의석에 반영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소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맞다. 개인적으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패스트트랙에 상정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그런데 독일은 의석이 일정하지 않다. 원래 독일은 지역구 299석, 비례 299석, 이렇게 해서 총 598석으로 의회가 구성되는데 총선 때마다 의석이 몇십 석 늘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초과의석’과 ‘보정의석’ 때문이다.

서울 지역에 배당된 총 의석이 100석이고 이 100석은 지역구 50석, 정당명부 50석으로 구성돼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태에서 A당이 서울 지역에서 지역구 의원 40명을 당선시켰지만 정당 투표에서는 30% 득표에 머물렀다. 이 경우 독일은 정당 득표에 의한 의석 배분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일단 A정당이 30석을 가져간다. 하지만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 수가 40명이기 때문에 10석이 더 배정돼야 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A정당은 지역구 당선자 40명에 정당투표에 의해 당선이 확정된 30명을 더해 총 70명의 의석을 획득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하지만 독일은 지역구 출마자들이 동시에 지역 비례대표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리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중복 입후보제’라 한다. 이 중복 입후보제 덕분에 앞에 가정한 사례에서도 초과의석이 10석밖에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서울의 총 의석수는 110석이 된다.

초과의석이 발생하면 또 문제가 생긴다. A라는 정당은 분명 정당 득표에서 30%를 받았으니 전체 의석의 30%만을 차지해야 한다. 그런데 초과의석 때문에 서울 지역 전체 의석이 110석이 됐으니 A정당이 차지한 40석이 30%가 되도록 서울 지역 전체 의석을 다시금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된다. 이렇게 늘어나는 의석을 보정의석(Ausgleichsmandate)이라 한다. 그래서 독일은 연방의회 의석수가 총선 때마다 고무줄 늘어나듯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보정의석을 어떻게 지역마다 배정하는지는 너무나 복잡한 수식이기에 생략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나라가 또 있다. 뉴질랜드다. 뉴질랜드는 독일처럼 권역별 명부 방식이 아닌, 전국 명부 방식이다. 비례대표 명부 작성단위를 권역으로 나누지 않고 전국 단위에서 정당 득표에 따른 배분의석을 결정해 지역구 의석을 제외한 숫자만큼 개별 정당에 돌아가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래서 초과의석 발생을 최대한 억제한다.

그런데 우리는 의석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권역별 정당명부 방식을 채택한단다. 뉴질랜드식과 독일식의 혼합형이다. 이때 비례성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비례성을 최대한 살린다는 연동형 비례대표의 본래적 취지도 살리지 못하고, 기형적 제도로 국민만 혼란에 빠지게 만들 확률이 높다.

이런 문제를 일반 국민이 정확히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상황이 이러니 이번 패스트트랙 상정이 ‘국민의 명령’이기 힘들다. 또 해당 법안의 조급한 상정의 정당성을 찾기도 힘들다. 이번 국회 파행에서 국민은 ‘명분용 들러리’였을 뿐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는 국민의 절박함은 이번에도 도외시됐다. 그럼 왜 정부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시켜가면서까지 무리하게 패스트트랙에 상정했을까. 이번 국회 싸움에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개입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7호 (2019.05.08~2019.05.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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