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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진호의 세계읽기]무슨 이런 ‘동맹’이 다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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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북한이 지난 4일 강원도 원산 인근의 호도반도에서 시험발사한 단거리 발사체. 한·미 국방당국은 북한이 이날 신형전술유도무기와 방사포 등 몇가지 종류의 발사체를 발사한 것으로 1차 분석했다. 신형전술유도무기는 러시아의 지대지 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와 외형이 유사한 것으로 관찰됐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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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런 ‘동맹’이 다 있나.

북한이 지난 4일 강원도 원산 인근의 호도반도에서 신형 지대지 탄도미사일이 포함된 복수의 ‘단거리 발사체(projectiles)’를 발사하고 난 뒤 미국의 반응을 보고 갖게 된 생각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하더라도 미국만 안전하면 된다는 ‘복심’을 드러냈다.

폼페이오 장관이 5일(현지시간) 미국 언론과의 잇단 인터뷰에서 밝힌 입장은 크게 두 가지였다. 북한의 발사체가 탄도미사일인지는 펜타곤의 분석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면서 판단을 유보한 채 “중요한 것은 미국을 위협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다”라는 말을 앞세웠다. 두번째는 비핵화 문제는 머나먼 길이 되겠지만,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이룩하겠다는 다짐이다. 폼페이오가 먼저 인터뷰를 한 것은 미국 동부시간 오전 9시에 생방송을 시작하는 폭스뉴스 선데이었다. 그는 진행자가 베네수엘라 사태에 관한 여러개의 질문을 던진 뒤 북한과 관련, ‘2017년 모라토리엄(미사일 발사 유예)를 위반한 새로운 단거리 미사일이었는가’라는 질문에 “현재까지 우리가 알기론 단거리 발사였다”고 답했다. 더 알아봐야겠지만 “중거리 미사일이나 장거리 미사일 또는 ICBM이 아니었다는 점에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행자 크리스 월러스가 ‘새로운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아니었나’ ‘모라토리엄을 위반한 게 아닌가’라고 거듭 묻자 느닷없이 “모라토리엄은 ICBM 시스템에 매우 집중돼 있다”라면서 “(ICBM은)미국을 확실하게 위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우정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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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해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에 관해 말하고 있다. 폭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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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30분에 시작하는 CBS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 인터뷰도 취지는 비슷했다. 폼페이오는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보이는 데 추가 제재가 필요한 상황이냐’는 질문에 “이미 역사상 가장 강한 제재가 적용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모든 외교적 기회를 소진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작넌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결과(비핵화)를 얻기까지 할 수있는 최대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뜬금 없이 “김정은 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눈 직후에 이러한 행동을 취했다”면서 문맥에 맞지 않은 말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 TV방송에서 미국민의 우려를 먼저 해소하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화염과 분노’ ‘북한의 완전한 파괴’ 등의 호전적 발언으로 위기를 고조시키는 대신, 협상의지를 거듭 확인한 점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오전 트위터에 “김정은은 내가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알쏭달쏭한 사랑 고백을 이어갔다. 싸우는 것 보다는 물론 낫다. 문제는 미국의 애매한 입장이 “ICBM만 아니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괜찮다”는 면죄부를 줄 수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북·미 협상의 유효기간이 길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불과 2년 전 비슷한 실수를 했다. 2017년 7월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있는 ICBM 시험발사를 하자 그 능력에 의문을 거듭 표했다. 상원 군사위원회의 린지 그레이엄 위원이 ‘핵탄두를 장착한 ICBM으로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냐’는 돌직구를 던지자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은 “그렇다(Yes)”라고 답했다.(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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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강원도 원산 인근의 호도반도에서 쌍안경을 손에 든채 단거리 발사체 시험발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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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을 이어나가는 것과 선을 긋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런 경우 위기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잠시 ‘모면’하는 데 그칠 뿐이다. 북한이 2017년 11월 ICBM(화성-15형)을 시험발사하자 미국내에선 북한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거의 사라졌다. 미국은 고작 4개월 동안 위기를 모면한 셈이다.

2018년 이후 4차례의 북·중, 3차례의 남북,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면서 협상에 의한 해법을 추구해온 동력은 ‘쌍중단’이었다. 북한 역시 자국 방위를 위해 신형무기를 개발, 실험할 수 있다. 하지만 탄도미사일은 곤란하다.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의 명백한 위반인 동시에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모라토리엄의 위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 시험 중단과 한·미의 합동훈련 중단을 전제로 대화 탁자가 마련됐다.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깼다는 것은 그 동력을 끄겠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북한은 지난 3일 종료된 한·미 공군의 연합편대종합훈련이 종래의 ‘맥스 선더(Max Thunder)’에 비해 규모가 축소됐더라도 “우리 군대의 대응이 불가피한 난폭한 합의 위반”이라고 비난해왔다. 합훈이 축소된만큼 사거리가 짧은 미사일만 시험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셈이다. 한쪽의 행동과 다른 쪽의 반응이 맞물리면 다시 대치 국면으로 돌아간다.

협상 국면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일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않는 한 북한은 비슷한 도발을 다시할 공산이 크며, 1년 반 동안 유지돼온 협상을 통한 해결 노력이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미 협상 자체의 동력 뿐 아니라 폼페이오의 미국 중심 사고는 한·미 동맹의 명확한 한계를 새삼 드러냈다. 어찌보면 눈 앞의 북·미 협상보다 더 뿌리가 깊은 한계다.

이 대목에서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2017년 7월 월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뷰에서 내놓은 해법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게이츠는 순전히 군사적인 방식의 해법은 없다고 단언하면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와 직접 담판을 하되, 그 전에 중국과 담판을 하라고 조언했다. 중국과의 담판에선 주한미군의 구조에 다소 변화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하는 대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중국이 이를 엄중하게 감시해야 한다는 제안을 던지라고 했다.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포기하고, 북한이 기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인정하자는 토대에서 나온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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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 그는 “이처럼 재미있는 세상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김정은이 북한의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 충분히 알고 있으며, 그 잠재력을 끝내거나 방해할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 내가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나에게 한 약속을 깨지 않기를 원한다. 협상은 타결될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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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는 중국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레이더와 미사일을 한국과 일본은 물론 태평양상의 미군함정에 배치하는 한편, “ICBM으로 보이는 북한의 모든 발사체를 격추하겠다”는 경고를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같이 중국이 저어할 조치들이다. 외교적 요소와 군사적 요소가 함께 담긴 게이츠의 해법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의 기존핵 보유의 대가로 북한으로부터 추가 핵탄두를 보유하지 않으며, 핵탄두 운반능력(미사일)을 더이상 확대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 제안이었다.

2017년 7월 북한의 ICBM 시험발사가 미국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미국 본토 도달능력이 거의 확인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게이츠의 제안에는 북한이 미 본토에 도달하지 않을 정도의 미사일 사거리만 유지한다면 기존 핵 보유와 탄도미사일 능력을 인정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담겼다. 폼페이오의 말 처럼 미국만 안전하면 북한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건, 일부 핵을 보유하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사고가 뭍어난다. 중앙정보국(CIA)에서 27년 동안 잔뼈가 굵은 게이츠다. CIA 국장을 거쳐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걸쳐 국방장관을 지냈다. 4개의 공화, 민주당 행정부의 백악관에서 국가안보를 다뤘다. 진영논리에 함몰된 동아시아 분단국의 관료들 보다는 균형잡힌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시 폼페이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이 나도 거기(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여기(미국)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몇차례나 태연하게 말했던 그레이엄 상원의원의 말은 정치인의 정치적 발언이라고 치자. 하지만 국가안보를 다루는 미국 전·현직 고위관료들 조차 한국과 일본이 없거나,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넘길 일이 아니다.

북한 황해남도의 한 마을에서 2011년 9월30일 한 농부가 홍수와 태풍의 피해 탓에 피해를 입은 지역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

유엔이 3일 북한의 식량사정이 최근 10년 동안 최악의 상황으로 약 136만톤의 식량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북한의 식량안보 평가’보고서를 발표하자 로이터 통신이 하루 뒤인 지난 4일 송고한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국제정치에서 동맹은 서로 자주권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공동의 방위를 보장받기 위해 체결하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안에 있다. 특히 한국은 북한의 방사포와 장사정포의 사거리 안에도 있다. 동맹국의 안보가 위험해져도 좋다는 사고는 과연 동맹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할 때가 됐음을 말해준다.

폼페이오가 사용한 숏(short)과 롱(long)이라는 말로 그가 던진 두 가지 메시지를 하나로 묶으면, “북한의 발사체는 단거리(a short launch)였고, 비핵화는 먼 길(a long path)인 만큼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접지 않겠다는 말”로 요약된다. 뒤집어 보면 “북한의 발사체가 미 본토를 위협하는 장거리(long)라면, 대북협상은 짧아질 것(short)”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어쨋든 북·미가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위기를 고조시키던 2년 전에 비하면 상황이 나쁘지 않다. 비록 최고 지도자 간 관계에 국한됐을지언정 북한과 미국은 대화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 역시 자국 중심의 사고구조에서 접근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민족끼리’도 ‘동맹 지상주의’도 정답이 아니란 말이다. 한반도 남측의 이른바 보수, 이른바 진보를 막론하고 ‘외눈 물고기’에서 진화를 멈춘듯해 하는 말이다. 북한의 ‘숏 도발’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에 입각해 북·미 협상의 조력자, 촉진자 역할을 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런 ‘우리민족끼리’가 다 있나.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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