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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고질적인 층간소음 문제, 알고도 못 줄이나? 알면서도 안 줄이나? [김현주의 일상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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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60% 아파트 거주…편리한 점 많지만 층간소음 취약 / 아파트 층간소음 사회적 문제…쉽게 개선 안돼 / 층간소음 민원 전년대비 23.6% 급증 / 이웃간 갈등으로 비화, 살인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 윗집 소음 보복용 스피커 시중에서 버젓이 판매 /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층간소음 대책 필요…기준 미달 아파트 시공업체, 관련자 엄중 문책해야

한국인 10명 중 6명 가량이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단독주택이나 빌라 등에 살고 있는데요.

아파트는 에너지 효율이나 관리, 보안에서 단독주택 등에 비교해 매우 유리해 국민 거주 유형에서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아파트는 층간소음에 취약하다는 단점도 있는데요. 아파트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쉽사리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 층간소음 민원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층간소음센터 상담은 2만8000건을 넘는데요. 전년 대비 23.6% 급증했습니다.

처음에는 참다가 이웃을 찾아가 호소하고, 그러다 싸우고, 나중엔 외부기관에 상담하는 구조를 고려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층간소음에 고통받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층간소음이 유발하는 이웃 간 갈등이 살인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소음을 내는 윗집에 보복하기 위한 고성능스피커가 시중에서 버젓이 팔릴 정도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감사 결과 발표로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층간소음 대책이 강구되길 기대한다며 과거 미적지근한 조치로 층간소음이 줄어들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합니다.

책임소재를 밝힐 수 있는 아파트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실시해 기준에 미달하는 아파트를 시공한 업체와 관련자에게 엄격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세계일보

이웃 간 분쟁과 갈등을 야기하는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국이 운영중인 아파트 층간소음 저감제도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건설업체들은 완충재 품질 성적서를 조작해 성능인정서를 발급받고, 시공절차를 어겨 견본세대에서 층간소음 차단 구조의 성능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은 채 본시공을 하기도 했습니다.

감사원은 지난 2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아파트 층간소음 저감제도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문책 1건 △주의요구 7건 △통보 11건 등 총 19건의 위법·부당사항을 적발·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감사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됐는데요.

감사원은 감사 기간동안 LH·SH가 시공한 22개 공공아파트 126세대와 민간회사가 시공한 6개 민간아파트 65세대 등 총 191세대의 층간소음을 측정했습니다.

측정 결과 전체의 96%에 달하는 184세대는 사전에 인정받은 성능등급(1∼3등급) 보다 실측 등급(2등급∼등급 외)이 하락했고, 60%에 해당하는 114세대는 최소성능기준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층간소음 저감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원인을 감사한 결과, 사전인정·시공·사후평가 등 제도운영 전 과정에 걸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파트 층간소음 저감제도 총체적인 난국

감사원에 따르면 LH, 건설기술연구원 등은 층간소음 차단구조를 신청받아 사전 인정업무를 수행합니다.

아파트 등 층간바닥에는 국토부 장관이 지정한 인정기관(LH, 한국건설기술연구원)으로부터 사전에 성능을 시험, 인정받은 바닥구조로 시공해야 하는데요.

감사 결과 인정기관은 관련 기준·절차를 준수하지 않거나, 제도가 미흡한 상황에서 층간소음 차단구조 인정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지난 2월까지 인정받은 바닥구조 154개 중 95%인 146개가 그 차단 성능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입니다.

인정시험 시험체를 제작하는 한 업체는 그동안 46개의 시험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정시험 신청업체의 요청에 따라 도면에 표시된 것보다 평균 5∼10㎜ 두껍게 마감 모르타르를 시공해 온 것으로 진술했습니다.

2017∼2018년에 한 업체가 성능인정을 신청한 8건의 차단구조는 업체가 완충재에 대한 시료를 조작해 품질시험 성적서가 제출됐는데도 인정기관이 이를 그대로 인정해 성능인정서를 발급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감사원은 국토부가 2017년 1월부터 지난해 2월 국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으로부터 인정제도 운용 관련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나 건의를 받고도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세계일보

이에 감사원은 국토부 장관에게 현재의 사전인정 제도를 보완해 제도 운용을 내실화하되, 층간소음 차단 성능을 시공 후에도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습니다.

LH 사장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에게 차단 성능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 146건에 대해 인정을 취소하거나 성능인정서를 보완하라고 하는 한편, 인정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감사원 "사전인정·시공·사후평가 제도운영 전 과정 문제 있다"

감사원이 LH·SH가 공사를 진행중인 126개 현장을 확인한 결과, 111개 현장(88%)이 시방서 등과 다르게 바닥구조를 시공했습니다.

LH는 성능을 인정받은 바닥구조라고 해도 견본세대에서 성능을 확인한 후 본 시공을 하도록 했는데 일부 현장에서는 시공상 편의, 공기 단축 등을 이유로 견본세대에서 성능을 확인하지 않거나 본 공사에 착수한 뒤 성능을 측정하기도 했는데요.

현장에 반입되는 완충재는 품질검사를 거쳐 기준에 적합한지 확인한 후 시공해야 하는데도 감사 기간동안 확인한 57개 현장에서는 품질시험 성적서가 발부되기 전 시공에 착수했습니다.

감사원에 따르면 57개 현장 대부분에 품질시험 성적서를 발부해 준 2개 공인시험기관은 시험기준과 다르게 품질시험을 하거나 시험을 하지 않고 성적서를 내주기도 했는데요.

이에 감사원은 LH·SH 사장에게 품질기준과 다르게 시공된 현장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적정한 보완조치를 취하거나 대책을 마련하게 하고, 현장 시공자·감독자 등에 대해 벌점 부과 등의 조치를 하라고 통보했습니다.

감사원은 현장 설계조건에 맞는 성능인정서가 없는 바닥구조를 시공업체에 쓰게 한 LH공사 직원 2명에 대해서는 정직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국토부 장관에게는 부당한 방법으로 품질시험성적서를 발급한 2개 공인시험기관의 영업을 정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라고 통보했습니다.

세계일보

감사원 감사 결과 건물 준공 시점에 지자체 요구 등으로 층간소음 차단 성능을 측정한 공인측정기관은 측정 결과를 최소성능 기준에 맞추기 위해 측정 위치를 임의로 변경하거나 데이터를 조작해 성적서를 부당하게 발급하고 있었습니다.

층간소음 차단 성능을 측정할 수 있는 13개 공인측정기관이 제출한 205건의 성능측정성적서 중 단 28건(13%)만이 측정기준에 따라 측정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전인정을 받은 바닥구조 생산업체는 인정시험을 받을 때보다 품질이 낮은 완충재를 시공 현장에 납품하는 등 감사원은 사후평가에 있어서도 많은 부실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강력한 처벌,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한국기술연구원은 매년 한 번 이상 층간소음 차단구조 생산업체에 대한 현장 품질관리를 실시해야 하는데도 2015∼2017년 점검대상 46건 중 5건에 대해서만 현장점검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감사원은 층간소음 공인측정기관 업무를 관장하는 국가기술표준원장에게 측정기관에 대한 종합점검을 실시하고, 이들 기관에 대한 효율적 점검에 필요한 지침을 마련하라고 통보했습니다.

세계일보

전문가들은 정부와 당국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은 물론 비리 관련자를 끝까지 찾아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층간소음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는 국민들을 어루만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번 감사 결과가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칠지, 아니면 실질적인 제도 개선 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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