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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승희와 함께 하는 한국의 섬] 대한민국에서 가장 낮은 섬 가파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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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섬여행 `가파도`

제11회 청보리 축제 3월 30일 ~ 5월 12일까지

[이데일리 트립in 이승희 기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과 가장 낮은 섬이 마주 보고 있는 곳이 있다. 제주도 한라산과 가파도다. 가파도는 제주올레 10-1코스다. 모슬포항에서 마라도 방향 중간 수평선과 맞닿을 정도로 지평이 낮고 평평한 섬이 가파도다. 제주 본섬과 매우 가깝다. 여객선이 출항하는 운진항에서 약 4km이고, 본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2km 남짓 거리다. 2016년 마라도와 가파도를 갔다. 늦가을 마라도행 여객선에는 관광객이 북적였지만, 가파도행 여객선에는 일행 몇 사람뿐이었다. 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1년 내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그래도 가파도가 인기가 많을 때가 있다. 청보리 축제 기간이다. 올해로 11회를 맞는다. 3월 30일부터 5월 12일까지 청보리 축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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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추모제에 참석했다가 가파도를 찾았다. 18만 평. 청보리 물결로 가득한 가파도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싶었다. 몇 년 사이 마라도와 가파도로 떠나는 출항지가 모슬포항에서 ‘운진항’으로 옮겨졌다. 모슬포항에서 남동쪽으로 약 1km 거리에 운진항이 있다. 여객선 터미널에는 축제를 즐기려는 여행객이 인산인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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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항을 떠난 여객선은 20분도 안 되어 가파도 상동 포구에 모래알 뿌리듯 여행객을 내려놓고 운진항으로 돌아간다. 가파도는 제주도의 부속 섬 중에 네 번째로 큰 섬이다. 마라도의 약 2.5배 크기다. 가파도는 섬 모양이 가오리를 닮은 형상이다. 섬 전체가 덮개 모양이라 하여 개도(蓋島), 개파도(蓋波島), 가을파지도(加乙波知島), 더위섬, 더푸섬 등의 이름을 얻었다. 가파도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나라가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된 하멜표류기에 가파도를 ‘올파도’로 기록하고 있다. 1653년 하멜 일행이 탄 ‘스파르웨르호’는 일본 나가사키를 향해 가던 중 태풍을 만나 가파도 근해로 밀려와 난파 되었다. 이런 사연으로 가파도 인근 산방산 아래 용머리 해안 입구에 ‘하멜의 표착기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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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에 사람의 출입이 시작된 것은 1750년(영조 26년) 제주목사가 조정에 진상을 위하여 소를 키우기 시작하고부터다.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섬에는 말을 키우는 목장이 많았다. 바다가 경계가 되어 울타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파도는 지형이 평탄하고 풀이 많이 자라 소와 말을 기르기에 좋은 환경이다.

가파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 상동 포구 선착장 인근에 패총 흔적이 남아 있고, 제주도에서 발견된 180여 기의 고인돌 중에서 135기가 가파도에 있다. 가파도 주민들은 이 고인돌을 ‘왕돌’이라 부른다. 왕돌은 전형적인 남방식 고인돌이다.

여객선사에서는 가파도에 들어가는 인원과 나오는 인원을 조절하기 위해 왕복 승선권을 발권한다. ‘3시간 조건부 가파도 입도 허가증’인 셈이다. 여객선은 3시간이라는 짧은 발걸음을 남겨 놓고 떠났다. 마음이 앞섰다. 가파도에 처음 왔을 땐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이번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상동마을에서 하동마을로 넘어가는 섬 중앙 코스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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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마을 바닷가에 신전인 상동할망당이 있다. 제주도에서는 여신을 ‘할망’이라 부른다. 가파도에는 동쪽 해안에 마을 제단이 있고, 북쪽과 남쪽 해안에 상동할망당인 ‘대부리당’과 하동할망당인 ‘뒷서낭당’이 있다. 마을 제단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남자 주민대표들이 천제를 지내는 곳이다. 반면 ‘당’은 여자들이 주도하여 어부와 해녀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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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마을을 넘어가는 길에 상동 우물이 있다. 할망당과 마찬가지로 상동마을과 하동마을 두 곳에 우물이 있다. 가파도가 유인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하동마을로 넘어가는 길옆으로 집과 담에 전복, 소라, 고동을 붙여 꾸민 특이한 집이 있다. 김부전 이춘자 부부 댁이다. 이춘자 할머니는 가파도에서 이름난 예술가다. 10여 년 정성으로 가꾼 집은 가파도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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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20.5m 섬 최고봉에 ‘소망 전망대’가 새롭게 조성되었다. 가파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에 오르자 사방이 청보리 물결로 뒤덮고 있다. 바다 건너 산방산이 보이고, 뒤쪽으로 삼방산이 투구처럼 우뚝 솟아 있다. 그 산 너머에는 한라산이 웅장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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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섬 중앙에 가파초등학교가 있다. 가파초등학교 정문 옆으로 김성숙 선생 동상이 있다. 김성숙 선생은 가파초등학교의 모태 ‘신유의숙’을 설립한 분이다. 3.1 운동으로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가파도에 귀향하여 교육을 통해 나라를 되찾고자 1922년 세운 학교가 ‘신유의숙’ 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6년 과정의 사립 심상소학교(일제강점기 초등교육을 행하던 학교)다. 항일교육과 한글 보급을 통해 나라를 되찾고자 야학을 지속하여, 가파도를 문맹자 없는 섬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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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사이마다 묘지가 많이 보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라는 이생진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섬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공간에는 생(生)과 사(死)를 구별하지 않는 것 같다.

보리는 민초의 삶이었다. 가난했던 사람들이 먹었던 주식 보리. 이제는 가파도를 알리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유채꽃과 무꽃도 많이 보였다. 보리 수확이 끝나면 고구마를 심는다. 가파도는 평온한 대지만큼이나 농작물도 민초를 닮았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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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을 빠르게 정복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낮은 곳을 느리게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순박한 인정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가파도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때를 ‘보리누름’이라고 한다. 청보리보다 보리누름이 한참인 5월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

축제가 끝날 무렵 가파도를 찾는다면 여유롭게 섬을 돌아볼 수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가 있다. 섬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면 섬이 예쁘고, 더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다. 다음 여행에는 가파도에서 하룻밤을 보내야겠다. 알면 알수록 궁금한 섬이다.

[여행 정보]

가파도를 운항하는 여객선은 모슬포 남항인 운진항에서 출발한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대략 1시간 간격으로 여객선이 운항한다. 여객선 요금은 해상공원입장료 포함하여 왕복 13,100원

*가파도 여객선 운항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가파도 마라도 정기여객선’ 홈페이지 참고.

*숙박과 식사 편의시설은 ‘가파도’ 홈페이지 참고.

*청보리 축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가파도 청보리 축제’ 홈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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