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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세균은 위험” 전도… “청결 실천” 복음 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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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후 미국 사회 공중보건 풍경 담아 / ‘볼 수 없지만 치명적’ 인식… 세균 피하기 시작 / ‘권위 상징’ 남성 수염, 세균덩어리 사실에 면도 / 바닥 끌리는 여성 긴 치마도 조금씩 짧아져 / 질병 예방은 중립지대… 사주·노동자 협력 / 균이 약자에 사회개혁 요구 정당성·힘 부여 / 아직 정복 못 한 세균… 복음은 여전히 유효

세계일보

낸시 톰스 지음/이춘입 옮김/푸른역사/2만7900원


세균의 복음-1870~1930년 미국 공중보건의 역사/낸시 톰스 지음/이춘입 옮김/푸른역사/2만7900원

사람의 일상은 세균과 무관한 행위가 거의 없다. 감기나 독감 등의 유행병이 돌 때 안간힘을 쓰는 것도 결국 세균과의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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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낸시 톰스는 “19세기 중반 이후 시작된 세균의 역사는 미국 사회에 거의 종교와 비견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쳐왔다”면서 “인간은 에이즈 바이러스를 정복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 낸시 톰스(Nancy Tomes)은 세균의 역사가 현대 일상사에서 얼마나 큰 범위를 차지하는지를 설명한다. 19세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세균은 종교에 버금갈 정도로 현대 사회에 파급력이 크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인 미세먼지를 비롯, 가습기 살균제 등도 세균 문제다.

세균을 피하는 행위는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청결이란 말이 서양에 본격 퍼지기 시작한 것은 ‘세균’의 존재를 인식한 이후였다. 예컨대 호텔 화장실에서부터 처음 사용된 두루마리 휴지, 매트리스와 침구를 감싼 하얀 천, 일회용 위생용품, 의사나 위생사의 하얀 가운과 위생장갑, 포장재, 모든 곳에 사용되는 살균제 등은 모두 세균을 피하는 행위다. 세균은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으며 만질 수도 없다. 오로지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아야만 그 존재의 입증이 가능하다.

이는 불과 한 세기 이전 미국 과학계가 가진 특권이기도 했다.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그것이 치명적인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조선 시대 왕을 비롯한, 귀족들이 사망한 주요인 가운데 하나가 종기 즉, 세균 감염이었지만 당시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세균 감염이란 개념은 빅토리아 시대 귀족들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개인과 가정은 엄청난 노력과 하인들 덕분에 겉으로는 청결했다. 하지만 꼼꼼하게 신경을 쓴 겉모습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오물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몸이 존재했다. 계급적 지위와 상관없이 생리 작용에는 땀, 배설물, 소변, 침, 그리고 여성에게는 월경혈이 있었다. 빅토리아의 신사 숙녀는 유행병이 빈민 탓이라고 비난했다. 당시 오염에 대한 공포는 인간 멸시, 인간 차별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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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변기는 방균의 상징이었다. 백악관에 설치한 ‘데세코 모델’이 근대적인 화장실을 탄생시킨 디자인 혁명의 선구자였다. 흰색의 자기 변기는 이후 현대사회의 상징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 귀족 계급 남성에게 수염은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수염이 세균 덩어리란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미국 남성들은 균이 가득한 얼굴 수염에 대한 경고에 자극받아 풍성한 수염과 긴 콧수염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이후 깨끗하게 면도한 얼굴은 방균의 상징이 되었다. 수염을 말끔히 깎은 얼굴은 모던 룩의 상징이었다.

역시 비위생적인 것은 아름다울 수 없다. 폭이 넓고 긴 치마는 서부 개척 시대 여성의 상징이었다. 세균의 존재가 강조되었던 1900년대 초 미국 여성들의 치맛단은 꾸준히 짧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스포츠와 보행용 의복에서, 그다음에는 낮에 입는 드레스도 짧아졌다. 1910년대 초 여성의 치마는 발목 위까지 짧아지고 더 좁아졌다. 그래서 바닥 먼지가 닿는 면을 줄였다.

질병 예방운동은 중립지대라는 중요성을 갖는다. 기업의 사주와 노동자는 세균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상호 협력했다. 균은 인종이나 계급을 차별하지 않는다. 흑인이나 사회적 빈곤층에게 사회 개혁을 요구할 수 있는 정당성과 힘을 제공했다. 이런 ‘병균 사회주의’는 미국의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사람들을 공동의 적에 대항해서 뭉칠 수 있게 만들었다.

현대에 들어 인간사회는 감염병에서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니었다. 1960년대 말 미국 보건부는 자신만만하게 세균을 완전히 정복했고, 인간은 감염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불과 20년이 지나지 않아 전혀 다른 새로운 질병 에이즈가 발병했다.

1980년대 말 에이즈 바이러스는 매우 두려운 병원균이었다. 이 바이러스는 수년간 동면 상태에 있다가도, 곧 면역 체계를 무너뜨리면서 인간을 고통스럽게 죽게 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말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가 도입되어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 속도를 늦출 수 있었고, 관리 가능한 만성 질환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일상적 접촉으로는 결코 퍼지지 않는 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은 지속되었다. 결국 저자의 논점은 에이즈 바이러스로 모인다. 인간은 아직 세균을 정복하지 못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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