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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3000년 中경제사… 과거를 읽어 미래 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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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20세기 초까지 흐름 분석 / 제국 토대 다진 秦?지역경제 꽃핀 隋·唐 / 인구 3배나 늘어 오늘의 중국 기반된 淸 / 서구적 시각 탈피 중국사 새롭게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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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폰 글란 지음/류형식 옮김/소와당/3만8000원


케임브리지 중국경제사/리처드 폰 글란 지음/류형식 옮김/소와당/3만8000원

“서양경제는 지는 해이고, 중국경제는 떠오르는 아침 해와 같다. 서양의 시장 중심 경제가 중국의 국가 개입 경제를 능가했던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매우 짧은 기간이었다. 이미 그 수명 또한 다했다.”

이는 미국 인문학의 주류 중 하나인 이른바 ‘캘리포니아 학파’ 중국경제론의 핵심이다.

캘리포니아대(UCLA) 경제학자들은 서양 우월주의에 반대하며, 동양의 위치를 재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책에선 청동기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무려 3000년에 걸친 중국경제사의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UCLA 역사학 교수인 저자 리처드 폰 글란(Richard Von Glahn)은 캘리포니아 학파의 중심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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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경제의 상징으로 꼽히는 상하이 푸둥 지구 야경.


수많은 측면에서 중국과 유럽은 다른 경로를 걸어왔다. 청동기 시대의 경제 즉, 서주(기원전 1045∼770)의 경제는 물물교환 시대였다. 초기 도시 국가 형태에서 전제 군주정(기원전 707~250) 시기로 넘어오면서 철기가 확산되고 진제국 시대가 열린다.

진나라 시대에는 제국의 경제적 토대가 다져졌다. 대략 기원전 81년까지다. 진은 국가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지방 호족, 고리대금업자, 자연재해로부터 농민을 보호해 주었다. 진은 중상주의 재정 국가였다. 도로를 건설하고, 도량형을 통일하며, 통화의 안정을 이뤄낸 혁신적 제국이었다. 그 무렵 유럽은 로마 시대가 열리면서 도시국가 체제였다.

그러나 후한과 분열 시기를 거치면서 경제는 침체되었고, 장원 경제가 번성했다.

즉, 부와 권력이 대토지 소유자인 호족의 손에 좌우되는 체제였다. 경제 성장으로 호족 세력만 강해졌을 뿐 국가의 힘은 약화되었다. 이방인이 통치하던 북방에서는 새로운 제도로 훌륭한 군사 체제가 갖춰졌다. 이는 6세기 말 중국을 재통일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정주민과 유목의 통합으로 제국이 재통일(485~755)되었다.

바로 ‘호한 융합’ 시대로서, 수·당 시대였다. 수·당은 대운하를 건설하고 다양한 지역의 경제가 번성했다. 혁명적이었던 것은 당 후기와 송대에 걸쳐 강남 의존도가 극적으로 상승했다는 데 있다. 이는 대체로 당나라 중기 안녹산의 난 때문에 비롯된 일이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북중국으로부터 인구가 대거 남중국으로 이동했고, 동시에 홍수 방지, 관개시설, 교통 기반 시설 등으로 강남 경제(1127~1550)는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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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리처드 폰 글란 교수는 책을 통해 장대한 중국경제사를 해석하고 재평가하면서 세계 경제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사에서 가장 부유했던 시기로 750∼ 1550년을 꼽는다. 그 시대는 특별히 창의적인 시대였고 비교적 꾸준하게 성장세를 거듭했던 시기였다. 중국이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번영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의 성숙한 시기(1550~1800)는 청제국 시대였다. 당시 만주족은 16세기 은경제로 큰 이득을 차지했다. 반면 앞선 명나라는 유교적 분위기 속에 상업화에 적대적이었고, 화폐 경제를 더디게 만들었다.

만주족은 정부가 식량을 책임지는 국가 체제(provisioning state)를 채택했다. 국민의 생계유지에 국가 정책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명나라도 잠재적 성장보다는 식량 안정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청의 방식은 민간에게 훨씬 더 많은 자율성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는 식량 공급과 성장 양 측면에서 모두 명보다 유리했다. 군사적 확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조차 청은 세금을 낮게 해줬다.

결과적으로 청은 ‘스미스주의적 성장’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즉, 민간 경제 활동이 확장되고, 경제 효율성이 높아졌다. 인구는 1680년에서 1850년 사이 세 배로 늘어났다. 결국 오늘날 중국이 존재하는 경제적 토대는 청의 시기였다. 저자는 청 제도를 이어받은 신중국 경제의 힘은 팽창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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