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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타노스도, 최후전쟁도 없는 작지만 아늑한 우주 찾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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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어벤져스’에 가려진 영화들

‘어벤져스’ 앞뒤 2주는 개봉 회피

용감하게 함께 개봉한 영화 세편

서로 다른 장르, 모성 소재 공통

‘요로나…’, 심령액션 나오는 호러

‘베카신!’, 시골아가씨의 유모 취업기

‘도우터…’, 모성의 고정관념에 도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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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발 진공 현상, 즉 <어벤져스>가 개봉함에 따라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 앞뒤 대략 2주간의 개봉을 회피하는 현상이 올해도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우주생명 절반 되살리기 행각의 화려하고도 떠들썩한 와중에도 개봉을 감행한 놀라운 돌파력의 영화들이 있어 ‘싹쓸이 메뉴 통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 우리의 호감을 일차적으로 자아내고 있다.

그중,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요로나의 저주>와 <베카신!>과 <도우터 오브 마인>은 우연찮게도 모두 ‘모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이들 모두를 한꺼번에 모실 어벤져스발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있는바, 우선 <컨저링> 시리즈의 제임스 완이 제작을 맡은 호러 <요로나의 저주>에 대한 얘기부터.

‘요로나의 저주’…멕시코 유명 귀신 소재

부호의 아름다운 아내였으나 남편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 충격으로 자기 아이들을 익사시키고 자살한 뒤, 자기 아이들을 대체할 아이들을 찾아 헤맨다는 멕시코의 유명 귀신을 메인 귀신으로 채택한 이 영화에 붙은 헤드 카피는 잘 아시다시피 ‘이번에도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이다.

대체 그게 가능이나 할쏜가. 이건 거의 ‘치킨 없이 치맥 한다’ 등등의 주장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라고 항의하실 분들도 계실 텐데, 아시다시피 여기에서 ‘무서운 장면’이란 잔혹한 장면, 즉 썰고 찌르고 다지고 해체하고 굽고 찌는… 아무튼 피칠갑 장면을 일컫는 것이다. 즉, 위 카피는 ‘우리 영화는 이번에도 그런 잔인하고 끔찍한 호러가 아니에요’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인바, 이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의 대표작으로서 우리는 반전(反轉) 무비뿐 아니라 호러 무비의 진행각을 완전히 틀어놓았던 <식스센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익히 기억하시다시피 <식스센스>는 ‘브루스가 유령이다!’ 못지않게 유령들로 인해 아동학대범으로 의심받는 주인공 아동의 엄마(토니 콜렛)의 모성애 역시 중요한 축이었다. <요로나의 저주>는 모성과 관련해 <식스센스>의 핵심 설정을 그대로 가지고 오고 있다. 즉, 아동학대 조사 담당 사회복지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주인공(린다 카델리니)이 아동학대범으로 의심받는 한 여인을 잘못 건드려, 그 여인에게 붙었던 요로나 귀신을 물려받아, 이제 본인이 아동학대범으로 의심받게 된다는 것이 영화 전반부의 기본 설정이다.

그런데 사실 <식스센스>의 비공인 리메이크를 각오하지 않는 한 이것만으로 영화 한 편을 끌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 하여 영화는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의 또 다른 전설이자 원조라 할 <엑소시스트>의 흐름을 끌어오는바, 영화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엑소시스트(‘치유사’가 영화 속 호칭)가 합류하여 귀신과의 심령액션 한판 대결에 돌입하게 된다.

사실 <요로나의 저주>의 공포기능성 장면들은 예고편에 쓰인 ‘머리 감겨주는 귀신 손’ 장면을 필두로 전반부에 집중되어 있다. 그중 가장 겁나는 장면은 아마도 요로나의 첫 등장 장면일 것인데, 대낮에 나와 더 무서운 ‘늘어진 웨딩베일’(일찍이 히치콕이 언급했듯 진짜 무서운 일은 낮에 일어난다)과 그 뒤에 이어지는 ‘반사경에 비친 요로나’ 장면까지가 사실상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것이다.

그 이후의 공포 장면은 급격한 참신함 감퇴 현상을 보인다. 대신, 윤활유 살포 충동을 극대화시키는 문 삐거덕 소리나, 돌발효과음과 함께 돌연 튀어나온 뒤 사라지는 귀신 등등, 공포영화 산업표준을 엄정히 준수하는 장면들이 주종을 이룬다. 하여 요로나 귀신의 얼굴에 드리운 베일이 마침내 걷어지고 ‘검은 눈물’ 얼굴이 클로즈업되거나,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염력 액션으로 주인공 가족들을 타격하는 장면들이 속속 등장하는 말미에 이르면, 영화는 호러보다는 슈퍼히어로 무비의 형국으로 흐른다. 흠, 이래서야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보다는 ‘슈퍼히어로 없이 슈퍼하다’라는 카피 쪽이 더 어울리지. 제임스 완이 공포영화 장르에서,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략을 차용하고 있는 것은 역시나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베카신’, 아기자기한 화면과 소품

두번째, <베카신!>은 동명의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베카신(에믈린 바야르)이라는 이름의 프랑스 시골 아가씨가 우연히 마을 후작부인의 손녀인 룰로트(마야 콩파니)의 유모가 되어 후작부인의 저택으로 들어간 뒤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는데.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을 꼽으라면 원작 만화가 시작된 100여년 전 당시 프랑스의 모습들일 것이다.

베카신이 입고 있는 동화적 색채 농후한 드레스를 필두로, 후작부인 저택의 이모저모, 노란색 클래식 카, 촛불 전조등을 단 계란색 탠덤 자전거, 1인 유랑 인형극장 등등, 이 영화의 미술과 소품들은 거의 수집 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큼 아기자기하다.

또한 갓난아이인 룰로트를 아이가 될 때까지 보살피면서, 혈육보다 헌신적인 애정을 쏟는 베카신의 모습은 끝내 뭉클함을 끌어낸다. 더구나 룰로트 역의 아동배우 마야 콩파니의 천사스러움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그 배경에 파리 근교 프랑스 시골마을의 푸근한 풍광까지 가미되고 있음에야.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베카신!>이 보여주는 (이를테면 <아멜리에>풍의) 발랄함과 기발한 만화적 상상력의 농도는 그리 높지 않다. 베카신의 어린 시절로 시작해서, 후작부인과 룰로트와의 첫 만남, 그리고 룰로트의 성장과 그 저택의 사람들이 맞게 되는 각종 우여곡절 등등을 에이부터 제트까지 일대기적으로 알뜰히 담는 영화의 구성은 고지식하다 싶을 정도로 고풍스러우며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거의 단조로울 정도로 소박하다.

차라리 이 영화 곳곳에 흩뿌려진 수많은 에피소드들(예컨대 베카신의 엉뚱한 발명품이라든지, 베카신과 룰로트의 우정, 애정이라든지) 중 어느 하나에 집중했더라면, 그리고 그것을 현재의 감각에 맞도록 적절히 튜닝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무형광 무첨가’스러운 귀여움을 생각하면 더욱 짙게 남는다.

‘도우터 오브 마인’, 기른 정과 낳은 정 사이

그런 면에서 이탈리아의 라우라 비스푸리 감독의 <도우터 오브 마인>은, 인생에서 마주치는 어느 결정적 한순간에 대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길지 않은 그 순간을 통해 인물들의 긴 시간(어쩌면 일생)을 드러낸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이제 열살 생일을 맞는,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에서 살고 있는 티나의 딸 비토리아는 술과 남자에 절어 살고 있는 안젤리카라는 여성을 우연히 마주치고, 그녀가 자신의 부모와 어떤 비밀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티나와 비토리아와 안젤리카는 모두 저마다 마음의 변화를 맞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 자신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단 확실한 것 하나는, 이 영화가 마냥 느긋하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관객들은 생생한 핸드헬드 카메라로 잡힌 모래먼지 날리는 섬의 풍광 속에 그대로 던져진다. 더구나 그곳 중 가장 외진 장소에서, 무너져버린 인생을 위태롭게 끌어가고 있는 안젤리카의 모습은 섬의 풍광보다 더욱 황량하다.

또한 영화는 거의 중반 넘어까지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던지지 않은 채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관객들 스스로 서서히 인물들의 관계와 그 배후에 깔린 ‘비밀’을 파악해가며 얻게 될 효과를 생각하더라도 그 정당성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남기는 흔적은 얕지 않다. 무엇보다도 모성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그에 따른 일방통행적인 도덕적 잣대에 도전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더불어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주의) 기른 정과 낳은 정 사이의 어디쯤에 나 있는 길, 모래와 잡목과 바위들 사이에 나 있는 사르데냐섬의 희미하고 구불구불한 길들을 닮은 그 길을 자유롭지만 위태롭게 걷는 열살 비토리아와, 그녀를 통해서 그녀의 두 엄마, 그리고 우리 관객들이 얻는 돌연한 성장은, 이 영화의 편안하지만은 않은 관람을 의미 있는 것으로 끌어올린다.

올해도 언제나처럼 ‘당분간 <어벤져스>의 적수는 없다’ ‘<어벤져스>, 흥행 신기록 새로 쓰나’ 등등 홍보반 뉴스반스러운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찾고 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싶다. 타노스도 스톤도 최후 대전쟁도 없는 작지만 아늑한 우주공간 어딘가를.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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