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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방생, 거북 살리려다 생태 죽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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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 경북 포항 구룡포 인근에서 구조된 줄무늬목거북(왼쪽 사진)과 리버쿠터 거북. 한국양서파충류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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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맞아 방생한

거북·어류가 생태계 교란

외래종·관상어는 떼죽음도


지난 4월 초 경북 포항 구룡포 앞바다. 종교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바다에 많은 수의 거북들을 놓아주는 게 목격됐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강이나 바다로 물고기나 거북 등을 방생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문제는 이 거북들이 외래종인 데다 바다에서 살기 어려운 민물거북이란 점이었다. 양서·파충류 동물 판매업체들로 구성된 한국양서파충류협회 회원들이 직접 민물거북인 것을 확인한 뒤 “바다에 방생하면 안 된다”고 말렸다. 하지만 이 남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북들을 바다에 놓아준 뒤 사라졌다. 양서파충류협회 이태원 회장은 “이날 이후 23일까지 이 지역에서 구조된 줄무늬목거북, 노란배거북, 붉은배거북 등이 20여마리에 달한다”며 “물속으로 들어가거나 이미 죽은 거북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수를 방생을 빙자해 버렸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해당 지역은 문무대왕릉과 가까운 곳이어서인지 종교인들의 방생이 자주 목격되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면 전국의 천변과 바닷가에서는 불교 신자들이 공덕을 쌓기 위해 사람들에게 잡힌 생물을 놓아주는 방생 행사가 열린다. 주로 손쉽게, 많은 수를 구할 수 있는 거북이나 물고기가 방생에 사용되는데 무분별하게 아무 거북이나 어류를 방생한 것이 생태계를 크게 교란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관련 법규를 만들어 생태계 교란 생물의 방생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미 붉은귀거북, 큰입배스, 블루길, 황소개구리 등 토종 생물들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동물들이 전국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 상태다. 이들은 모두 정부가 생태계 교란 야생생물로 지정한 외래종 동물이다.

2013년 제정된 생물다양성법은 생태계 교란 생물 또는 생태계 위해 우려 생물을 방출, 방생, 유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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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귀거북의 경우 다른 토종 동물들을 잡아먹거나 도태시킴으로써 토종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해치고 있다. 특히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인 토종 거북 남생이의 개체 수 급감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011년 발간한 ‘한국의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적색자료집 양서류·파충류’ 보고서에서 남생이 개체군 감소의 주요 요인으로 서식지 파괴 및 유입된 붉은귀거북과의 경쟁, 황소개구리에 의한 유생 포식으로 생기는 연령분포 불균형 등을 꼽았다. 남생이는 국내의 강, 하천, 호수 등에 넓게 서식했던 파충류이다. 멸종 위험이 높은 생물의 분포·서식 현황을 수록한 자료집을 적색자료집(Red List)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1966년 처음 발간한 관련 자료집의 표지가 위기를 나타내는 붉은색이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붉은귀거북, 큰입배스, 블루길, 황소개구리 등 주요 생태계 교란 야생생물로 꼽히는 4종의 방생이 금지된 이후에는 어린 개체 기준으로 가격이 1만~2만원선인 노란배거북이나 비단거북 등의 다른 외래종 거북이 붉은귀거북의 대체동물로 이용되면서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방생 목적으로 같은 종의 외래종 거북을 같은 지역에 풀어주다 보면 번식이 이뤄지고, 수가 늘어나면서 국내 환경에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에는 중국산 미꾸라지·떡붕어 등의 외래종 어류, 야생어류가 아닌 비단잉어나 금붕어처럼 품종이 개량된 관상어를 대량으로 방생하면서 생태계가 교란되거나 방생된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포항 구룡포 바다에 민물거북을 방생하는 것이나 미꾸라지가 살기 어려운 환경인 한강 본류에 미꾸라지를 방생하는 등의 사례가 대표적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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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귀거북과의 경쟁에서 밀려 위기에 처한 남생이.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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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공덕을 쌓기 위한 방생이 오히려 생물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불교계의 각 종단들도 자정 노력에 나섰다. 조계종 같은 대형 종단들은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면 종단 차원에서 외래종 방사를 자제하도록 홍보하고 있다. 환경부와 지자체 등에서도 각 종단이나 사찰로 협조 공문을 보내고 있으며 양서파충류협회 역시 외래종이나 민물에 사는 생물을 방생하지 않도록 하는 공문을 보내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불교계에서는 하천에는 자라나 붕어·잉어를, 바닷가에서는 우럭이나 광어 같은 토종 어종을 방생하는 등의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자정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큰 종단이나 대형 사찰들과 달리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사찰들에서는 여전히 외래종 거북을 대량 방사하는 사례가 있다. 포항 구룡포의 민물거북 방생 역시 큰 종단이 아닌 소규모 사찰 차원에서 이뤄진 일로 추정된다.

이태원 회장은 “협회에서 각 불교 종단에 지속적으로 외래종 생물의 방사 금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소규모 사찰에 집중해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라며 “복을 빌기 위해 하는 행위가 죄를 짓는 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험동물을 위한 최소한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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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비글)들이 실험동물 사육장에 있는 모습. 영국국립3R센터(NC3Rs) 제공


동물실험 때 고려할 3R

① 다른 방법으로 대체

② 동원 동물 수 최소화

③ 가해지는 고통 줄이기


최근 동물애호가들은 물론 많은 시민들을 분노케 한 서울대 수의대 실험동물 ‘메이’의 죽음은 국내 동물실험 현장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례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지난 22일 서울중앙지검에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를 고발한 내용에 따르면 이 교수팀은 2013년부터 5년 동안 인천공항에서 검역탐지견으로 일한 복제 비글 메이를 넘겨받아 동물실험에 이용했다. 이후 아사 직전으로 보일 정도로 마른 모습과 잘 걷지 못하는 모습 등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동물학대 의혹이 제기됐다.

메이에게 새 보금자리를 찾아주기는커녕 학대에 가까운 동물실험을 자행하는 게 가능했던 것은 국내 동물실험에서 최소한의 윤리를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을위한행동’의 전채은 대표는 24일 서울 중구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강연을 갖고 “동물보호법은 경찰견이나 탐지견 등 국가 사역견을 동물실험에 동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 법의 시행규칙은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예외조항은 인수공통 전염병과 방역, 해당 동물 종의 생태, 습성에 관한 연구실험에는 사역견도 이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서울대 수의대 연구진이 이 같은 목적으로 메이를 실험에 동원했다 주장하면 사역견을 동물실험에 동원하고도 면죄부를 받는 것이 가능한 셈이다.

2008년 동물보호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제도는 연구자가 동물실험 과정에서 3R을 실천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 동물실험을 실시하는 연구기관은 의무적으로 외부위원 1인을 포함한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해 실험 계획을 승인받고 있다. 3R이란 동물실험을 가능한 한 동물을 이용하지 않는 실험으로 대체(Replacement)하고, 실험에 동원되는 동물의 수를 최소화(Reduction)하고, 부득이하게 동물을 이용하는 경우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최소화(Refinement)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에서 외부위원 한 명이 수많은 실험 계획에서 동물들의 복지사항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도 최소한의 윤리기준조차 지켜지지 않는 이유다. 서울대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역시 이병천 교수의 연구를 검토 후 승인했으며 이때 메이 등 실험동물의 복지가 어느 정도 고려됐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 대표는 “한 병원의 동물실험윤리위 외부위원을 맡고 있는데 매년 300건 이상 검토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며 “서울대의 경우 동물실험 계획이 연간 1000건 넘게 제출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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