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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올해부터 상피제 도입한다더니…자녀와 같은 학교 다니는 교사 전국 500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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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영 의원 '교원·자녀 동일학교 현황' 공개

전국 고교 294곳에서 교사·자녀 함께 다녀

시교육청 "상피제 적용 현실적 한계 있어"

교육부 "사립학교 적용 위해 법 개정 추진"

중앙일보

지난해 8월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문제가 불거지자 교육부는 올해부터 교사가 자녀와 한 학교에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상피제'를 도입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기준 전국에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교사가 500여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숙명여고 앞에서 한 학부모단체가 시위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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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사립고에서 교무부장으로 근무 중이던 A씨는 지난 3월 같은 재단의 중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교육부가 올해부터 교사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는 상피제를 도입해서다. 지난해 A씨의 자녀가 같은 학교 1학년에 입학하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제2의 숙명여고가 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A씨는 “자녀의 입학 사실을 학교에 알렸고, 아이 학년의 교과지도·시험출제 등 학사 관리 과정에서 배제돼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학부모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학교를 옮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발생한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가 올해부터 ‘상피제’(相避制)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A씨처럼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꺼려해 실제로 학교를 옮기는 교사는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기준 자녀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가 500명 가까이 돼서다. 교사인 부모와 학생인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막는 상피제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교원·자녀 동일고교 근무 현황’ 등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교사가 전국 고교 294곳, 489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8월 숙명여고 사태가 발생 후 진행했던 조사(고교 521곳, 교사 900명)와 비교해 절반도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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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교육부·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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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자녀가 같이 다니는 학교가 가장 많은 곳은 경남(45곳)이었다. 이어 경북(38), 서울·충남(32곳), 전북(30곳), 전남(26곳) 등이 뒤를 이었다. 교원 수를 기준으로 하면 경남(83명), 충남(66명), 경북(60명), 전북(54명), 서울·전남(47명) 순이었다.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교사가 있는 고교는 사립이 219곳으로 공립(75곳)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지난해와 비교해 자녀와 같이 다니는 교사 수가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경기도였다. 경기도는 지난해 100곳의 고교에서 190명의 교사가 자녀와 동일 학교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올해 9곳, 15명으로 줄었다. 자녀가 졸업하거나 전학을 간 경우가 60명, 법인 내에서 전보가 이뤄진 게 52명, 법인이나 공립학교로 파견을 간 교사가 15명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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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교육부·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교육부는 지난해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문제 발생 후 상피제를 도입해 학사 관리 부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시도교육청의 중등 교육공무원 인사관리 규정을 개정해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고교 교사를 다른 학교로 전보시키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하지만 시도교육청 관계자들은 “상피제를 모든 고교에 적용하는 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립학교는 교사 인사권이 학교법인에 있어 정부에서 상피제를 강제할 수 없고, 법인 내 학교가 한 곳뿐이라 이동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또 농어촌 지역은 일반고가 지역 내에 한 곳밖에 없는 곳이 많아 상피제를 적용하면 교사나 자녀가 다른 시·군으로 전근이나 전학을 가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김해영 의원은 “지난해 숙명여고 사태가 발생해 학사관리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신뢰가 낮아진 상황에서 상피제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은 문제”라며 “사립학교 참여를 확대하고, 농어촌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정자 교육부 교원정책과장은 “5~6월 중 초·중등사단법인연합회와 상피제 적용 관련해 법인 내 전보나 법인 간 교류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며 “이와 함께 사립학교 교사가 공립학교나 다른 사립학교로 파견이 가능하도록 사립학교법과 시행령 개정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모·자녀가 동일학교에 근무할 경우에도 교사가 학급 담임이나 교과 담당, 시험 문제 출제나 검토 등의 평가 업무에서 완전히 배제되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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