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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한반도 총성 사라졌지만, 북한 핵무기 위협은 현실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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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비핵화 협상 중에도 핵 생산

한·미 연합전투력 크게 떨어져

9·19 합의로 군사대비태세 약화

비핵화 거부의 상황도 상정해야

판문점 선언 1년, 초라한 비핵화 성적표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서명식에서 선언문에 서명한 후 손을 맞잡고 들어보이 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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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지 1년이 됐다. 북한의 비핵화를 거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대급 회담이었다. 암흑 속 존재였던 김 위원장이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순간이었다. 우리 국민의 간절한 소망과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비핵화 과정과 목표에 대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이해 차이는 있었지만, 아무튼 비핵화엔 공감했다. 대신 북한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는 여전히 입구에 머무르고 있다. 상황은 어렵다. 성적표는 초라하다. 그 사이 한반도가 더 안전해졌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남북 정상이 세 번 만났고, 북·미 정상회담도 두 차례나 있었다. 역사적으로 특정 안보 사안을 두고 정상의 만남이 이처럼 잦았던 사례는 흔치 않다. 그런 노력에 따른 성과라면 두 가지쯤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중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공으로 치부하는 부분이다. 둘째는 남·북·미 정상이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했다는 점이다. 협상 여건이 조성됐다는 의미이지만, 한계선도 동시에 인식했다.

그런데 현재로썬 김 위원장은 핵무기·핵물질·핵시설을 완전히 포기할 뜻이 없어 보인다. 미국은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검증된 북핵 폐기(FFVD)가 명확하다. 한국은 미국의 FFVD를 인정하면서도 비핵화에 주저하는 북한을 이해하려는 듯 어정쩡하다. 무작정 북한을 도울 수도 없다. 궁지에 몰린 김 위원장의 이번 러시아 방문은 제재 회피의 마지막 발버둥이다. 이에 미국은 어제 지중해에서 항모작전으로 무력시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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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한반도 안전은 어떤가. 일단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에 총성은 없었다. 지난해 9·19 남북군사합의를 통해 양측이 군사적인 긴장을 완화하기로 했다. 정부 말대로 한반도가 과거보다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2017년 말 북핵 제거 위한 군사옵션을 발동하려는 과정에서 조성된 긴장감도 없어졌다.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지난 1월 25일 미 PBS방송에서 “(대북 선제공격에) 모든 방안을 계획했다”고 공개했다. 당시 미국은 항공모함 4척에 한반도 임무를 부여했고, 수직 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F-35B 등을 일본에 전진 배치했다.

반대의 지적도 있다. 한반도가 더 위험해졌다는 평가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 기간에 더욱 고도화된 핵무기를 본격적으로 생산해서다. 김 위원장은 6차 핵실험(2017년 9월) 직후 “강위력한 핵무기들을 마음먹은 대로 꽝꽝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은 그간 축적한 다량의 핵물질(플루토늄 50여㎏과 고농축 우라늄 700∼800㎏)로 핵탄두 30∼60발을 만든 것으로 미 정보당국은 추정했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도 지난해 10월 월간중앙과 인터뷰에서 “핵탄두만 해도 북한에서 나오는 얘기는 20∼30개라는데 미 정보당국은 60∼65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북한은 4·27 판문점선언 이전과 달리 현재 수십발의 핵탄두를 노동미사일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200기가량 가진 노동미사일(사정거리 1300㎞)은 남한과 일본에, ICBM인 화성-14와 15는 미 본토에 닿는다. 미사일 전문가 권용수 전 국방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지난 1년 동안 ICBM의 성능을 보완할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며 “미 본토에 핵탄두를 투하할 능력을 갖췄을 것”이라고 말했다.

되돌아보면 북한은 지난 1년을 교묘히 악용했다. 겉으로 협상하며, 속으론 핵 전투력을 구축했다. 김 위원장은 평안북도 서해안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최근 복원했다. 중국 국경에 가까운 양강도 영저리 미사일 기지를 확장하고 있다는 외신보도(WP, CNN)도 잇따랐다. (2018년 12월 5일) 영저리 기지는 ICBM용이다. 주한 미 7공군 사령관 출신 테렌스 오쇼너시 미 북미방공우주사령관도 지난 3일 미 상원 군사위에서 “북한 ICBM 생산과 실전 배치가 임박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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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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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판문점선언 이후 북한의 재래식 군사도발은 없었지만, 핵미사일 위협은 현실이 됐다. 문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핵무기라는 큰 암덩어리를 키워줬다. 그래서 북한 비핵화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면 한반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를 맞을 전망이다.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 사용은 더욱 까다롭게 된다. 2017년만 해도 북한 핵무기까지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북한 핵미사일을 초반에 완전히 제거한다는 담보가 없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옵션에 사인하기가 어렵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가 쉽지 않게 된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태세는 완벽한가.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지만 미덥지 않다. 지난해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은 비무장지대(DMZ) GP 10곳씩 폭파했다. 이 때문에 DMZ에 남은 GP는 남측 60개, 북측 160개로 상대 격차가 더 벌어졌다. 유사시 위험부담이 커졌다. 북한군에 대한 우리 군의 전방 공중정찰도 크게 제한했다. 북한군 동향을 관찰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 축적되면 정보 구멍이다. 전방에서 포병 실사격훈련을 할 수 없어 우리 군의 실전적 전투력이 저하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지난 겨울 100만명 이상 동원한 동계훈련을 예전처럼 실시했다. 북한은 군사신뢰구축에 중요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한·미 연합전투력 약화는 더 큰 문제다. 지난해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연습을 생략하더니, 올 3월엔 키리졸브(KR)연습까지 방어 위주의 반쪽 훈련만 했다. UFG연습은 북한군 전면 남침에 대비한 연합훈련이고, KR연습은 유사시 미군의 한반도 증원훈련이다. 또 올 4월 독수리(FE)연습은 군단급에서 대대급 이하로 줄였다. 미 스텔스기가 참가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군 비질런트 에이스연습(지난해 12월)은 하지 않았고, 맥스선더연습(올 5월)도 명칭을 없애고 축소했다.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북한 핵과 재래식 위협은 그대로”라며 “하루빨리 연합훈련을 복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으로 동맹 이완을 가속하고 있다. 문 대통령 임기 안에 전작권 전환을 마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마지못해 수용하는 분위기다. 한국군이 전작권을 되찾는 것은 좋지만, 위기국면에서 한·미가 따로여서 연합전투력 발휘에 문제가 많다. 한·일 관계도 반일감정을 부추겨 악화 일로다. 일본은 올해 외교청서에 한·일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적었다.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를 통해 한국을 돕는다. 우리 군 자체도 기수를 뛰어넘는 군 수뇌부 교체로 경험 있는 고위 장성을 대부분 내보냈다. 유사시 임무 수행에 물음표다.

현 정부의 북한 비핵화 성적은 수업엔 열심이었지만, 중간시험은 별로다. 북한이 비핵화를 끝내 거부하면 ‘F’ 학점을 받는다. 최악의 상황에서 낙제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외교·안보를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임진왜란(1592년) 직전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은 선조 임금에게 상반된 보고를 했다. 그러나 선조는 ‘왜적의 침입이 없을 것’이라는 김성일의 손을 들어줬다가 전 국토가 유린당했다. 선조처럼 우선 편한 선택을 해선 안 된다. 국방백서(2018)에 있는 ‘외부 침략(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보장하며), 억제에 실패하면 전쟁에서 조기에 승리한다’는 전략목표를 잊지 말기 바란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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