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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착한뉴스]마을 공부방서 10년째 역사 가르치는 시골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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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가화1리 정해영 이장 13년째 공부방 운영

조선·근현대사 가르쳐…운영비 20~30만원 자비로

마을 학생 322명 배워…군부대 장병 교사로 초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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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옥천 가화1리 이장이 마을 경로당에서 공부방을 소개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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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가화1리에 사는 정해영(63) 이장은 마을에서 역사 선생님으로 통한다.

그는 2007년 이 마을 경로당 2층에 공부방을 차리고 13년째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방과 후 학습을 지도하고 있다. 33㎡ 규모의 작은 공부방은 매일 오후 6시만 되면 공부를 하러 오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인근 군부대 장병과 대학생 등이 강사로 초빙돼 영어·수학·중국어 등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정 이장은 일주일에 1~2차례씩 역사 과목 강의를 하고 있다.

정 이장은 1970년대 중반 중학교 교사로 2년 정도 근무했다.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아 고향 옥천으로 귀농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로니아 농사와 의류사업 등을 병행하며 마을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2007년 가화1리 이장을 맡은 뒤 자비를 들여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정 이장은 “이장 부임 후 마을 경로당 앞 철길에서 중학생 몇 명이 담배를 피우며 놀고 있는 모습을 봤다”며 “그대로 놔두면 탈선을 할 것 같아 공부하는 습관이라도 가르쳐 줄 요량으로 공부방을 마련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교사 확보가 여의치 않아 수학과 영어 등 2개 과목만 지도할 수밖에 없었다. 정 이장은 “다행히 공부방 운영 취지에 공감한 한국전력 직원이 수학을 가르치고, 초등학교 영어교사가 영어 과목을 맡는 등 도움을 줬다”며 “2년 뒤인 2010년 인근 37사단의 도움으로 영어·수학·과학 관련 과목을 전공한 장병 3명이 강사로 합류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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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가화1리 경로당 2층에 마련된 공부방에서 정해영 이장이 역사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정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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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이장도 이때부터 역사 과목 강사로 나섰다. 그는 “공부방에 다니는 학생 2명을 데리고 서울을 다녀왔는데,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사당과 효창공원 삼의사묘역과 관련한 인물에 대해 아이들이 전혀 모르고 있더라”며 “역사학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학창 시절 배웠던 지식과 평소 역사 서적으로 공부한 내용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시중에 출간된 조선왕조실록과 한국 근현대사 서적을 교재로 활용하고 있다. 고대사를 제외한 조선시대~1980년 ‘서울의 봄’까지를 가르친다”고 덧붙였다.

공부방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문을 연다. 정 이장은 월·화에 역사 수업을 한다. 수·목·금은 군부대 장병들이 와서 강의한다. 지금까지 이 공부방을 거쳐 간 학생들은 322명에 달한다. 현재 8명의 중학생이 공부방에 다니고 있고, 하반기에 4명이 더 들어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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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이장이 작성한 역사 과목 학습 개요서. 최종권 기자




동네 공부방이라고 해서 운영이 쉬운 건 아니다. 허기가 진 학생들을 위해 간식을 마련하고 강의 준비와 시험 준비 등 전반적 관리를 하느라 하루도 쉴 날이 없다. 자동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군부대에서 군 장병 강사를 공부방으로 데려오고, 오후 9시쯤 부대로 복귀시키는 역할도 정 이장이 한다. 한 달 공부방 운영비 20~30만원은 정 이장이 자비로 충당하고 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2014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40여 일간 입원한 적도 있다.

정 이장은 “원래 공부방은 1년만 운영하려 했는데, 공부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학교 성적이 좋지 않던 학생들이 공부방에서 어울리면서 대학도 가고, 번듯한 직장을 잡아 마을을 다시 찾아올 때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옥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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