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새 시대 우경화 헌법` 부추겨…아베, 전쟁가능 국가 속도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레이와시대 일본 ① '강한 일본' 만들기 ◆

매일경제

`레이와` 앞두고…야스쿠니 신사 참배 23일 일본 의원들이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이 합사된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들이 신관의 안내를 받아 참배소로 이동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월 1일 일왕에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가 사용할 연호가 발표된 4월 1일. 도심 주요 지역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통해 발표를 지켜보던 일본 국민 사이에선 일순 정적이 흘렀다. '레이와'가 기존 연호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레이(令)란 글자가 처음으로 연호에 쓰이면서 생겨난 생경함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레이와' 결정 과정을 주도한 아베 신조 총리가 연호 결정 과정에서 강조한 것은 두 가지였다. 출전을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고전으로 할 것, 새로운 느낌을 줄 것. 이렇게 탄생한 것이 나루히토 왕세자가 다음달 1일부터 사용할 연호 '레이와'다. 아베 총리는 연호와 관련해 "1960년대생인 왕세자가 즉위하면 드디어 일왕도 전후세대가 된다"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레이와 시대를 과거 일본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일본의 시대'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새로운 일본의 핵심은 강한 국가다. 재집권 당시 홍보 문구로 '일본을 되찾자'라고 내걸었던 아베 총리는 다시 총리직에 도전하는 이유로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라고 밝혔다. 최종 목표는 개헌을 통한 전쟁 가능 보통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 여전히 뿌리 깊은 군비 확장에 대한 거부감, 반전 의식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개헌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를 넘어서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국민적 신망이 높은 일왕을 활용한 새로운 일본 구상이다. 일본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보통국가화에 대한 여론을 키워 가겠다는 구상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의 새로운 일본 구상이 더해지면서 보수우경화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아베 정부는 새로운 일본을 구상하기 위해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존재감 회복에 본격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대표 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개인적 유대 관계를 십분 활용한 미·일 동맹 강화와 이를 활용한 일본 국익 극대화다. '상징'인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레이와 시대 첫 국빈으로 초청한 것도 이러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이 제안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미국 정부에서도 채택하는 등 이미 아베 총리 구상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전후 체제 탈피를 위한 선결 과제인 전쟁으로 인해 뒤틀린 주변국과의 관계 회복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과는 지난해 현직 총리로는 7년 만에 방문해 '새로운 단계로의 격상'을 선언했다. 영토분쟁 문제로 수교 이후 60년 넘게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와도 마감 시한까지 정해가며 관련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관계 회복이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다. 올해 일본 외교청서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전력 보유를 금지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방위력은 이미 공격 능력 보유라는 의혹이 제기될 만한 수준까지 진행되고 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헬기항모인 이즈모는 전투기 발진이 가능한 갑판으로 변경을 통해 사실상 항공모함 전환이 확정됐다. 선제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전수방위를 위반했다는 논란을 의식해 일본 정부에선 방위형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자국 내에서도 '공격형과 방위형 항모가 다른 것이 뭐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또 지난 19일에는 미국과 안보 협력 범위도 사이버, 우주 등으로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금기를 하나둘씩 풀어가고 있다.

과거라면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강한 권력을 장악한 아베 1강 체제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 사회를 설명해 온 키워드 중 하나인 강한 관료사회는 '관저1강'이란 표현처럼 대통령 비서실 못지않게 커지고 막강해진 총리관저에 휘둘리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재집권 이후 국가안전보장국(NSC)을 설치해 외교·안보 등 핵심 기능을 총리실로 가져왔다. 또 주요 공직자 인사권을 가진 인사국도 총리실 아래에 설치하면서 관료사회도 장악했다. 사학 스캔들, 후생노동성 통계 조작 등 관료 조직이 총리실 눈치를 보는 이른바 '손타쿠' 관련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러한 구조가 가져 온 결과다.

당내 활발한 논의를 강점으로 내세운 자민당 내에서도 총리실이 위고 당이 아래라는 '정고당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기에 견제 역할을 해야 할 야당의 지리멸렬까지 겹치면서 강한 총리실의 독주를 견제할 장치가 사라지는 상황은 레이와 시대에도 이어질 것이란 게 일반적 관측이다. 아베 총리를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일본 부상과 함께 우리 정부의 대일본 정책을 근본부터 재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도쿄 = 정욱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