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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마음에서 걸러낸 풍경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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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유화 `부여 낙화암`. [사진 제공 = 누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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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붉고, 강물은 진녹색이다.

서용산 작가(68)가 강렬하고 두툼한 붓질로 그린 '부여 낙화암'은 마음으로 걸러낸 풍경이다. 백제 사비성이 함락될 때 백마강으로 몸을 던진 의자왕의 3000궁녀가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지상의 공간이다. 작가는 세세한 경관 묘사 없이 그의 소회(所懷)를 진하게 풀어놓았다.

서울 평창동 누크갤러리 개인전 '산을 넘은 시간들'에서 만난 그는 "나와 자연이 일체되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 몸의 감각을 열어 자연을 투사했다"며 "나로서는 풍경화 그리기가 미술과 자연, 인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양평군 다릿골에서 태백시 철암 폐탄광촌, 조선 왕조 역사가 깃든 서울 인왕산, 상원사가 위치한 오대산 노인봉, 미황사가 있는 해남 달마산 등 보폭이 참 넓다. 가만히 있지 못해 스케치북을 늘 품에 지니고 다니는 작가가 근면성실로 이룬 풍경화 19점과 드로잉 14점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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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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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0여 년 전 양평으로 이사간 후 자연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계유정난(세조의 왕위 찬탈)과 동학농민운동, 한국전쟁 등 역사화, 지하철 등 도시 풍경에 집중해오다가 산수로 붓길을 옮겼다. "양평에 사니까 계절 변화를 예민하게 느낀다. 나이 탓도 있는 것 같고. 어느 날 TV에서 지리산을 봤는데 가슴 절절하게 자연 속으로 빠져들어서 풍경화를 시작했다. 지리산 산장지기가 너무 나이가 많아 산을 오를 수 없어서 은퇴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그래서 바로 며칠 후 지리산에 갔다."

주택을 개조한 누크갤러리 마당에 돌을 쌓고 빈 깡통에 나뭇가지를 꽂은 설치 작품도 눈에 띈다. 앤디 워홀이 즐겨 그리던 캠벨 수프 통조림이다. 이 또한 자연에서 가져온 작품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이제 깡통에 물을 부으면 작품이 완성된다. 캔버스 천도 마천에서 개발됐고, 돌을 갈아 만든게 물감이다. 결국 자연을 재해석해 끌어온 것이다. 자연의 피상적 아름다움보다는 인간과 연관된 자연을 작품에 담고 싶다. 인연이 닿아 흘러간 한국과 미국 여러 지역 풍경을 적당하게 끌어모았다. 어찌 보면 몸의 현장 기록이다."

그의 몸으로 걸러낸 자연은 강하고 세차다. 주로 시뻘겋거나 시퍼런 원색을 쓴다. "초기에는 미니멀리즘 영향을 받아 두세 가지 색깔 물감만 썼다. 색을 절제하는 조선시대 유교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1970년대 어두침침한 종로5가에서 (빨간) 코카콜라 간판을 보고 색에 눈을 뜨게 됐다. 1980년대 앙리 마티스 책을 보면서 내가 갖고 있는 무채색을 파괴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983년부터 강렬한 붉은색을 좋아해 사용하기 시작했고, 자연을 그리면서 푸른색도 쓰게 됐다."

습관적으로 그리는 것 같을 때 스스로를 경계하는 작가는 "재능을 갈고 닦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했다. 서울대 미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전업 작가 길을 걸은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는 5월 3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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