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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한겨레 프리즘] 아파트도 마을이다 / 최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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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성이 안씨였어요?”

사망 5명 등 20명의 사상자를 낸 ‘진주 아파트 참사’가 일어난 지난 17일 아침,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파트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피의자 안아무개(42)씨에 관해 물었다.

그런데 ‘안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주민을 찾을 수 없었다. 8년째 근무한다는 아파트 경비원도 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다. 관리사무소 서류만이 그의 존재를 확인시켜줬다. 윗집 주민 등 평소 마찰을 빚은 몇명을 제외하면, 안씨 존재는 참사 뒤 비로소 주민들에게 드러났다.

‘진주 아파트 참사’는 천재지변도 인재도 아니다. 우리 사회 공동의 잘못에서 비롯된 사고다. 물론 안씨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증 정신질환을 앓으면서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가족도 직업도 없이 혼자 고립된 삶을 살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처지에 방치됐던 그를 처벌하는 것으로 이번 참사를 덮는다면, 언제 어디서고 새로운 ‘안씨’가 불쑥불쑥 튀어나올 수 있다.

먼저 사회안전망을 더 촘촘히 짜야 한다. 안씨는 2010년 폭력 행위로 구속돼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2011년 풀려나, 2년 동안 법무부 보호관찰도 받았다. 참사를 일으킨 아파트에서 2015년 12월부터 살았는데 2016년 7월까지 정신병원 치료도 받았다. 여기까지는 사회안전망이 가동됐다.

그러나 정신병원 치료가 중단되면서, 사회안전망 가동도 멈췄다. 경찰, 보건소, 주민센터 등 어디에서도 그의 정신병력을 알지 못했다. 정신병력자는 보건소 산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관리한다. 하지만 본인이나 보호자가 동의해야 센터에 등록할 수 있다. 센터에 등록하더라도, 경찰이나 주민센터와 정보 공유는 되지 않는다. 현재의 사회안전망 조건에서, 안씨를 관리하거나 관찰할 수 없다는 경찰·보건소·주민센터의 해명은 타당하다.

따라서 정신병력자 등록 체계, 기관 간 정보 미공유 등 이번 참사로 드러난 사회안전망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물 한 방울 새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완벽하게 짜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허물어진 마을공동체를 복구해야 한다. 아파트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주거형태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2017년 말 현재 아파트는 우리나라 전체 주거형태의 48.6%를 차지한다. 34.3%인 단독주택의 1.4배에 이른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의 아파트 비율은 더 높다. 새로 건설된 세종시에선 아파트가 전체 주거형태의 65.0%를 차지한다.

따라서 아파트도 마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아파트 마을공동체 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안씨는 올해 들어 아파트 주민과의 마찰로 5차례 경찰에 신고됐다. 그러나 경찰은 마지막 신고 1건에 대해서만 재물손괴 혐의로 안씨를 입건했을 뿐이다. 견디다 못한 피해 주민이 직접 폐회로텔레비전을 설치해 증거영상을 확보한 덕택이었다. 나머지 4건에 대해 경찰은 “주민들 사이의 사소한 시비로 판단”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안씨의 정신병력 유무를 전혀 파악하지 않았다.

안씨에게 직접 피해를 본 몇몇 주민만 줄곧 고통을 겪었고, 신고한 주민은 안씨의 보복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17일 새벽 참사가 났다. 증거영상을 경찰에 제공한 주민(55·여)은 안씨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함께 살던 고3 조카딸(19)은 목숨을 잃었다.

만약 아파트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어, 주민들이 함께 안씨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직접 피해를 입은 몇명이 아니라 마을공동체 차원에서 호소했다면, 경찰 등 관계 당국이 규정만을 내세우며 안씨를 방치했을까?

당장 내가 사는 아파트부터 마을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지 돌아볼 때다.

한겨레

최상원
전국1팀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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