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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학력·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법, 올해 안 제정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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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국회 토론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채용’ 집중한 법률 시안 마련

“공공·민간의 채용 전반을 포괄하는 법안 필요”

여야 막론하고 관심 가져왔으나 아직 제정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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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울 만한 학벌을 얻기 위해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하려 하고, 이를 위해 사교육에 돈을 쏟아붓는다. 이런 현상 뒤에는 ‘출신학교’를 능력이라 간주하고 채용 과정 등에서 특정 대학 출신을 우대하는 풍토가 있다. 만약 출신학교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능력대로 취업할 수 있다면, 학력·학벌 중심으로 굳어져 버린 교육 체제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교육을바꾸는새힘, 이상민·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23일 오후 국회에서 ‘교육고통 해소를 위한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 토론회’를 열었다. 우리나라 헌법과 고용정책 기본법(제7조 1항),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에서는 학력과 출신학교로 고용에서 차별을 두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행위가 차별행위에 해당하는지, 이를 어겼을 경우 어떤 벌칙이 뒤따르는지 등 세부적인 법과 규정이 미비하여, 별다른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울의 한 유명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입시 과정에서 지원자들의 출신대학·학과에 따라 단계별로 차등적인 점수를 뒀다거나, 시중은행에서 채용 과정에서 특정 대학 출신자들의 면접 점수를 후하게 줘서 합격시켰다거나 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을 잘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하는 것을 국정과제로 삼고 현재 전체 공공기관에 이를 적용하고 있지만, 민간 부문에까지 이를 정착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때문에 민간 기업들의 채용 과정도 대상으로 삼는,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취지의 법률안들이 심심찮게 발의됐지만, 아직 실제 제정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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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공공·민간 기관의 채용 전반을 포괄하는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고용상 출신학교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의 전체 시안을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이 사기업의 사적 자치에 과도한 제한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에 대해 송 대표는 “사회에 만연한 학력·학벌주의로 인한 피해, 학력 인플레 현상과 과도한 경쟁, 심각한 사교육 문제를 고려할 때, 고용 전반에 걸쳐 학력·출신학교 차별을 금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볼 수 없고,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에는 기업이 직무능력과 관련 없는 개인의 인적사항 수집을 금지하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다. 송 대표는 “학력과 출신학교가 기재 금지 사항에서 빠진 것은 유감이지만, 이 개정안의 통과로 ‘기업의 사적 자치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반박 논리는 더 이상 설 곳이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제시한 법률 시안을 보면, 이 법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구체적으로, 사용자가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직무와 관련 없이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했다. “업무의 정상적인 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합리적인 기준 이상의 출신학교 등을 요구하거나 학력별로 직급을 달리하여 모집하는 등 출신학교 등을 이유로 모집·채용의 기회를 제한하거나 거부하는 행위”, “응시서류에 출신학교 등의 기재를 요구하거나 관련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는 행위”, “출신학교 등에 대한 내용의 질문을 하는 등 면접 과정에서 출신학교 등에 관한 정보를 요구하는 행위”, “특정 출신학교를 우대하거나 점수를 차등 부여하는 행위”, “그 밖의 모집·채용 과정에서 응시자로부터 직접 또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출신학교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행위” 등이다. 이 밖에 임금·복리후생 등 근로조건이나 배치·전보·승진 등에서도 출신학교 등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도 금지했다.

다만 “업무나 국가자격 등의 성격 또는 업무수행의 상황에 비추어 특정 학력이 해당 업무의 정상적인 수행이나 국가자격 등의 취득을 위하여 불가결하게 요구되는 경우”와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경우” 등을 차별금지의 예외 조항으로 뒀다. 차별행위 금지를 위반한 경우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벌칙 조항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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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잠시 주춤했던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다시금 힘을 받을지 주목된다. 지난 2016년에는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입시와 채용에서 출신학교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안’이 발의돼 입법공청회까지 마쳤었다. 그 뒤로도 강길부 바른미래당 의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슷한 취지의 법안들이 발의된 바 있다. 제정 운동을 주도해온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쪽은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은 원래 ‘채용’과 ‘입시’에서 출신학교 차별을 막는 것이 원안이었는데, 상대적으로 더 시급한 ‘채용’ 영역에서만이라도 이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채용’ 영역을 중심으로 한 법률 제정에 힘쓰고자 한다”고 밝혔다.

2018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실시한 ‘교육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학 졸업장 유무에 따른 차별의 심각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9.7%가 “심각할 정도로 존재한다”, 29.6%가 “일부 존재하나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9~2013년 사이 발표된 ‘사교육 의식조사’(교육부·통계청) 결과를 보면, 5년 동안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증가시키는 원인’으로 “취업 등에 있어 출신대학이 중요하기 때문”이란 항목을 가장 많이 꼽았다. 세 번째로 많이 꼽힌 것은 “대학 서열화 구조가 심각하기 때문”이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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