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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4464일 걸린 ‘콜텍의 복직’…최장 노사분쟁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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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유감 표명·명예복직 등 합의

노조 “정리해고의 고통 더는 없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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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쪽과의 잠정합의문을 들고 간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 지회장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와 함께 서울 등촌동 콜텍 본사 앞 단식농성장에 들어선 김경봉 조합원은 애꿎은 벽만 노려봤다. 단식농성 중인 임재춘 조합원은 이 지회장한테 건네받은 잠정합의문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러곤 그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이며 힘겹게 말했다.

“합의문 가지고, 이거 받으려고, 13년을 기다렸습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단식하는 건 내가 마지막이면 좋겠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굶고, 어디 올라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꺽꺽 터져 나오는 울음을 눌러 참느라 눈시울이 새빨개진 세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두 손으로 한참 동안 눈가를 눌러 닦던 임 조합원은 이 지회장이 어깨를 두드려주자 그제야 미음 한 술을 입에 넣었다. 42일 만에 접하는 곡기였다.

국내 최장기 분쟁 사업장 콜텍의 싸움이 22일 마침내 끝났다. 이날로 복직 투쟁을 시작한 지 4464일, 헤아릴 수도 없는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끝에 이들은 마침내 회사로부터 사실상 ‘정리해고는 잘못된 일이었다’는 인정을 받아냈다. 2007년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됐던 콜텍 노동자 3명은 새달 2일 명예복직한다.

콜텍 노사는 이날 서울 강서구 한국가스공사 서울지역본부 회의실에서 마지막 교섭을 열어 △회사의 정리해고 유감 표명 △마지막까지 복직을 요구해온 3명(이인근·김경봉·임재춘)의 명예복직 △이들을 포함한 콜텍 노조 조합원 25명에게 합의금 지급 △상호 제기한 일체의 민사·형사·행정상 소송 취하 등 7개 항에 잠정합의했다. 노사는 23일 오전 같은 장소에서 조인식을 열어 박영호 사장과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이 합의문에 함께 서명할 예정이다.

13년 콜텍 투쟁의 시작은 2007년 갑작스러운 정리해고였다. 회사는 경영상 이유를 들어 직원들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콜텍의 대전 공장을 폐쇄해버렸다. 대전 공장에서 만들던 기타는 인도네시아 공장이 넘겨받았다. 해고노동자들은 회사 쪽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콜텍은 세계 3위의 기타 생산 업체였고, 세계 기타 시장 점유율이 30%에 이를 정도로 잘나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2009년 정리해고 무효소송 항소심에서 서울고법은 해고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효라고 판결한 것이다. 하지만 이 판결은 2012년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파기환송심과 대법원 상고 기각 과정에서 법원은 “미래에 다가올 경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는 ‘신박한’ 법논리를 내놨다. 근로기준법 제24조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정리해고 기준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그 필요로 인정해준 것이다.

해고노동자들이 가장 기막혀하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지난해 5월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은 2012년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이 박근혜 정부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의혹 가운데 하나라고 발표했다.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자신의 ‘숙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을 받아내려고, 25명의 정리해고를 한순간에 ‘정당한 것’으로 둔갑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같이 찬바람을 맞고 뙤약볕에 앉아준 이들이 있어 마냥 외롭지만은 않았다. 투쟁 초기부터 음악인들이 콘서트와 문화제 등으로 연대했다. 악기 박람회가 열리는 독일, 미국 등 여섯차례 국외 원정투쟁 땐 현지 교민들도 1인시위 등을 통해 힘을 보탰다.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콜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이들을 지원했다.

이인근 지회장은 “콜텍 문제에 그동안 많이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정리해고로 인해 더는 노동자가 고통받는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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