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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화의 낭중지추]김경수와 박근혜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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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일만에 석방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17일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뒤집힌 진실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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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형집행정지 거래 안 돼…사법부, 공정재판으로 신뢰 찾아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서울고등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차문호 부장판사)는 2019.4.17. 김경수 피고인에 대한 보석을 허가하기로 결정함."

17일 점심 선약이 있어 자리로 향하던 중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보석 결정 소식이 전해졌다.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한 채로 기자실로 돌아와 기사를 작성했다. 보석 결정을 18일로 예상했던 터라 하루만 더 기다렸다 허가하지 왜 17일인가 싶다가도, 위축된 경제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경남도민들을 위해서라면 경남지사의 보석 허가가 하루라도 빨리 결정된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럴 거면 4시간 넘게 진행된 11일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서 김 지사를 석방했다면 편안히 점심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다소 원초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을 하던 찰나 유영하 변호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형집행정지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보도자료를 받았다.

"응? 오늘 무슨 날인가?" 김 지사의 보석 결정이 내려지자 마자 박 전 대통령 형집행정지라니.

물론 17일은 박 전 대통령이 '미결수'에서 '기결수'로 신분이 바뀌는 날이었기 때문에 '형집행정지 신청'을 전혀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하루 중 많은 시간 가운데 김 지사 보석 결정이 내려진 지 1시간 후 보도자료를 내고 이 같은 사실을 발표하니 다소 의아스러웠다.

유 변호사는 17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형집행정지 신청서에서 "박 전 대통령의 경추 및 요추 디스크 증세 등이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며 "박 전 대통령은 불에 덴 것 같은 통증과 칼로 살을 베는 듯한 통증, 저림 증상으로 정상적인 수면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8월 보석 청구 등을 신청하겠다고 건의했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지금은 구치소 내에서는 치료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2년이 넘는 구금 기간 동안 척추질환으로 인한 통증으로 정상적인 숙면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에 시달려 왔으나, 전직 대통령의 신분임을 감안해 초인적으로 이를 감내해 왔다"면서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집권한 현 정부가 고령의 전직 여성 대통령에게 병증으로 인한 고통까지 계속 감수하라는 것은 비인도적인 처사일 뿐 아니라 이미 사법처리된 전직 대통령 등과 비교해도 유독 박 전 대통령에게만 가혹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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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지도부 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이 공개 거론되기 시작한 모양새다. 사진은 황교안(가운데) 대표, 나경원(왼쪽) 원내대표 등 한국당 지도부.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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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반응이다. 그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이렇게 오랫동안 구금된 전직 대통령도 없고, 몸도 아프시다"며 "여성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점을 감안해 국민들의 바람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박 전 대통령 석방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자유한국당 법률자문위원회도 무죄 추정의 원칙 등을 고려해 "석방이 가능하다"는 자체 법률 해석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동시에 진행된 2개의 재판(국정농단, 공천 개입) 중 공천 개입 공판에서 징역 2년 확정 판결을 받았는데, 이미 지난 2017년 3월 31일 국정 농단 사건으로 구속돼 2년을 넘게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기 때문에 석방이 가능하다는 것. 특히 황 대표가 직접 당 법률자문위원회에 이를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이외에도 황 대표와 유 변호사 모두 '아픈 것'과 '여성'인 점을 강조한 것도 인상깊다. 두 사람의 주장이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고, 여성이기 때문에 수감 생활을 더는 지속할 수 없다'는 것으로 맥락을 같이 하고 있어서다. 유 변호사는 지난 2016년 11월 15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검찰 조사를 앞두고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날 박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그는 이 자리에서 "현직 대통령이 내·외란죄를 저지르지 않고서는 (형사) 소추되지 않는다"며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밝힌바 있다. 이 때도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여성인 점을 강조하며 검찰의 서면조사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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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8년 4월 6일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 원을 선고 받았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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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돌아와 김 지사의 보석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 있을까? 김 지사가 보석으로 풀려났으니, 박 전 대통령도 형집행정지 해야 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석방을 거래의 대상처럼 생각하는 것이냐는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또 박 전 대통령이 형집행정지로 풀려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상 형집행정지 요건은 수감자가 형 집행으로 현저히 건강을 해치거나 생명을 보전하기 어려운 염려가 있을 때 70세 이상일 때 임신 후 6개월 이후거나 출산 후 60일 이내일 때 직계존속이 70세 이상이거나 중병이나 장애인으로 보호할 다른 친족이 없는 때 등이다. 요건으로만 볼 때 박 전 대통령에게는 대부분 해당 사항이 없다.

결정은 검찰 내부의 형 집행정지 심의위원회가 맡는다. 박찬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위원장으로 의사를 포함한 내.외부 위원 10여명으로 위원회가 꾸려지는데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되지만, 최종 결정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몫이다. 다만 검사장이 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의 보석이 허가되자 자신도 석방해달라는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박 전 대통령뿐 아니라 안태근 전 검사장도 1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자신의 항소심 1차 공판에서 "어제(17일)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보석이 허가된 것 처럼 같은 취지에서 가족 품으로 돌아가 불구속 재판을 받도록 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과 안 전 검사장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이 허가된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김 지사나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보석'은 재판을 받고 있는 '미결수'에게만 해당되는 제도로, 박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 신청과는 차이가 있다.

안 전 검사장 측 변호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김 지사의 항소심 재판을 맡고 있는 차문호 부장판사의 말이 떠올랐다. 차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전속 재판연구관으로 2년간 근무해 이른바 '양승태 키즈'로 불렸던 판사이자,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차성안 판사와 사촌지간이라는 이력이 알려지면서 김 지사의 항소심 시작 전부터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런 일각의 시선을 의식한 차 판사는 지난달 19일 열린 김 지사의 첫 항소심 공판 진행에 앞서 "저는 법관이기에 앞서 부족한 사람이라 하나하나에 상처받고 평정심을 잃기도 하지만, 이 사건에는 어떤 예단도 갖지 않으며 공정성을 잃지 않고 재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께 송구한 마음과 사법 신뢰를 위해 이 재판을 맡고 싶지 않았지만 현행법상 배당을 피할 수 없었다"고 솔직히 말하고, "법관은 눈을 가리고 법을 보는 정의의 여신처럼 재판 과정을 확인하고 정답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고독한 수도자의 불과하다"면서 "재판 결과를 예단하고 비난하는 일각의 태도는 마치 경기 시작도 전에 승패를 예단하는 것과 같다"고 김 지사의 항소심이 공정하지 않게 진행될 것을 미리 우려한 일각의 주장을 강하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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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청사 중앙홀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대법원 홈페이지


대법원 청사 중앙홀 전면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서양의 정의의 여신상(디케)를 한국화한 것으로 대법원 홈페이지에는 '박충흠의 작품으로 대법정 출입문 위에 위치하고 있다.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서구적인 이미지의 정의의 여신을 한국적인 느낌으로 재형상화한 것이다. 얼굴의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 여인의 고운 자태가 엿보이도록 하였고, 의상도 우리 고유의 전통 복장으로 처리하였다. 한 손에는 저울을 높이 들고 또 다른 손에는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앉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5월 말 당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재판 결과를 두고 박근혜 정부와 거래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 한 방송에 출연해 대법원 본관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거론했다. 그는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뜬 상태로 칼 대신 책을 들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눈을 가리는 것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점을 상징하는 것인데, 눈을 안 가리고 있으니 여러가지 상황에 주변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지난해 7월 자신의 SNS를 통해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떴으니 완벽한 공평을 기대할 수 없고, 법률만 읊조리는 책상물림 법관의 모습"이라고 우리 사법부의 법(법관)만능주의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농단 사태는 정의의 철학이 부족한 대법원이 만들어낸 범죄"라며 "불의를 보면 칼을 내리치는 정의의 여신을 ‘불의를 용서하는 자애로운 어머니’로 바꾼 철학의 빈곤과 관련이 있다"고 날을 세우고, "사법농단 사태가 해결되면 정의의 여신상을 교체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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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법원행정처), 사법연수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더팩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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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농단 사태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법 70년 역사상 유례 없는 가장 큰 위기 속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올바르고, 공정한, 정의로운 재판일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8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제3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국민의 진정한 의사는 법원이 어떠한 사회세력이나 집단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아니한 채 헌법의 명령에 따라 오직 법률과 양심에 의해 공정하게 판단해 줄 것이라는 데에 있다"며 "국민이 바라는 재판을 잘하는 법원으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 달라"고 각급 법원에서 선출된 법관 대표들에게 요청했다. 김 대법원장은 "변화를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다며 "우리 법원이 국민이 바라는 법원으로의 변화를 스스로 이끌 힘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고 덧붙였다.

거듭 강조하지만, 법원이 헌법이 부여한 법적 분쟁해결기관으로서 다시 설 수 있는 길은 결국 본연의 임무인 재판 기능을 통한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전 대통령 보석으로 석방됐을 때와 다르게 유독 관심을 받고 있는 김 지사의 보석 허가가 박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 등 자칫 정치적 거래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됐을 때 잃어버린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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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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