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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코미디가 정치를 이겼다…대통령직 수행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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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 출구조사 결과에서 코미디언 출신 정치 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가 페트로 포로셴코(53) 현 대통령을 큰 표차로 이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깊은 불신과 염증이 ‘드라마 속 대통령’을 진짜 대통령으로 만드는 신화를 쓴 것이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현재까지 젤렌스키 후보의 득표율은 73.2%다. 재선에 도전하는 포로셴코 대통령의 득표율은 25.3%에 그치고 있다.

사실상 승리를 확신한 젤렌스키 후보는 "결코 여러분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며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또 "아직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의 국민으로서 옛 소련에 속했던 모든 국가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우리를 보라,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패배를 시인하고 젤렌스키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대선 이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지만 정치계를 떠날 생각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조선일보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후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가 2019년 4월 21일 출구조사 결과에서 당선을 확신하고 지지자들과 환호하고 있다.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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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후보는 ‘국민의 종’이라는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주인공을 맡아 인기를 얻은 코미디언이다. 2015년부터 방영돼 지난달 세 번째 시즌을 시작한 이 작품에서 그는 부패한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하루 아침에 대통령이 된 고등학교 교사를 연기한다.

포로셴코 대통령과 대비되는 친숙하고 서민적인 그의 이미지도 ‘젤렌스키 돌풍’에 큰 역할을 했다. 제과 재벌 출신인 포로셴코 대통령은 농업·금융·미디어 등 다른 산업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부패 사건에 수 차례 연루된 데다, 우크라이나 국민들 사이에서는 오랜 기간 이어진 불행을 효과적으로 극복하지도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

젤렌스키 후보는 선거 공약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5년째 계속되고 있는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간 무력 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돈바스 지역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담판을 짓겠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그는 우크라이나의 부패 척결과 세제 개혁, 투명한 부동산 시장 조성, 에너지 자급자족 실현 등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정치에는 문외한인 그가 대통령직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은 군 최고사령관과 국가안보회의 수장직도 겸한다. 이와 관련, 포로셴코 대통령은 앞서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경험이 없는 새 대통령 아래 빠른 속도로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이스라엘에 망명중인 반(反)정부 성향의 우크라이나 금융재벌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젤렌스키 후보는 지난해 12월 31일 콜로모이스키가 소유한 우크라이나 방송 채널 ‘1+1’을 통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콜로모이스키가 자신이 소유한 우크라이나 최대 은행 프리바트방크를 포로셴코 정부가 국유화한 데 대해 보복하기 위해 젤렌스키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는 분석을 제기했었다.

[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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