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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임대료 올라 쫓기는데, 권리금도 못 받아”…서러운 임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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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 원이던 가게 월세가 4년 만에 갑절로 뛴다면, 세 들어 장사하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입지와 상권에 따라서 임대료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딱 잘라 비싸다, 그렇지 않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4년 만에 임대료를 100%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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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 '기 싸움'에 새 임차인 못 구해

5년 전 이상대 씨는 보증금 8천만 원, 월세 500만 원에 가게를 임대해 고깃집을 차렸습니다. 임대료는 해마다 계속 올랐습니다. 지난해에는 건물주가 보증금 1억 5천만 원에 월세 1천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2배로 오른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이씨는 가게를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권리금을 찾기 위해 새 임차인을 구하려 노력했지만, 쉽게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씨는 1억 5천만 원이던 권리금을 5,500만 원으로 확 낮췄습니다. 그런데 건물주는 다시 "해당 건물은 월세 1,2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이씨에게 통보합니다. 더 오른 금액이죠. "기존에 쓰던 화구와 집기들을 철거하라"고도 했습니다.

건물주와 이씨가 갈등을 빚는 사이, 새로 들어오기로 한 임차인은 계약을 포기했습니다. 권리금을 받을 길이 없어졌습니다. 1심에서 법원은 "건물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차임액을 올려 이상대 씨의 권리금 계약을 방해했다"며 이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해당 사건은 항소심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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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금을 둘러싼 상가임대차 보호법의 '맹점'

권리금은 돌고 돕니다. 점포 영업 매출에 따라 결정되는 '영업 권리금', 기존의 임차인이 설치해놓은 기물들에 대한 '시설 권리금', 점포 위치 프리미엄에 따라 책정되는 '바닥 권리금'으로 나뉘어 권리금이 책정됩니다. 장사를 하던 사람이 가게를 접으면, 원래 임차인은 새 임차인에게서 자신이 지불했던 권리금을 넘겨 받습니다. 하지만 건물주와 새 임차인과의 계약이 원활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요?

현행법에는 '건물주가 임대차 종료 6개월 전부터 기존 임차인이 신규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회수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건물주가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는 행위란 무엇일까요? 이 기준이 아리송합니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너무 많이 올려 새 임차인이 질려서 계약을 파기한다면? 건물주가 해당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재건축해야 한다며 새로운 세입자를 받지 못하겠으니 그냥 나가달라고 한다면?

상가임대차보호법에는 건물주가 새 임차인에게 '현저히' 고액의 차임과 보증금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금 회수 기회를 방해하는 행위로 봅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 4) 건물이 노후ㆍ훼손 또는 일부 멸실되는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대해서만 재건축 등을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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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시한폭탄'인가, 자영업자 '퇴직금'인가

하지만 '현저히'라는 용어가 매우 모호합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저렴한 임대료인데, 임차인 입장에서는 현저히 고액일 수 있지요. 재건축 등을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부하는 경우도 참 애매합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당장 안전상의 이유로 건물 수리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 임차인 입장에서는 자신이 애써 일군 가게에서 자신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본인이 차지하려는 꼼수로 보일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돌고 도는 권리금의 세계에서 그 고리가 어느 순간 끊기는 것을 두고 속칭 '돌림 폭탄이 터진다'고 말하더군요. 폭탄이 터지는 차례가 나만은 아니기를, 모든 임차인들의 바람이겠죠. 권리금은 흔히들 자영업자들의 퇴직금이라고도 일컫는데, 이 시한폭탄이 터지는 순간 권리금은 퇴직금이 아니라 부채가 됩니다.

임대로 낮추고 권리금 없앤 '안심 상가' 해법 될까

임대료 급등과 권리금 분쟁이 계속되면서, 지자체가 행동에 나섰습니다. 서울시는 5년 이상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상가에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이같은 '서울형 장기 안심상가' 제도에 3년 동안 100여 곳의 상가가 지원해 상생협약을 맺었습니다. 성동구청은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70% 정도로 낮추고 권리금을 아예 없앤 '안심상가'를 도입했습니다. 구청이 마련한 상가 건물에 젠트리피케이션(상가 내몰림)으로 상처 입은 자영업자들을 우선 입주시켰습니다.

국토교통부도 지자체들의 노력에 부응하고 있습니다. '상생협약 표준안'을 만들어 임대인과 임차인, 지자체장이 함께 임대료 안정화와 임대차기간 조정 등을 약속하도록 돕는 겁니다. 국토교통부는 이 협약에 따라 계약을 맺은 임대인에게는 지자체장이 직접 여러 인센티브를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권고와 협약'은 한계가 많다는 것이 임차인들의 지적입니다. '안심 상가'라고 마련된 곳은 입지가 나쁘거나 관리가 잘 안 되는 경우도 종종 있고, 협약은 깨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여러 번 손질돼 왔습니다. 개정을 거칠 때마다,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임차인의 범위가 늘어나고 임대료 상한선도 엄격해지고 권리금 회수 기간도 느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변하고 있습니다. '상생'의 기준은 무엇인지, 건물주와 임차인 사이에 지켜야할 '상식'은 무엇인지 묻고 있는 사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분쟁은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연관 기사] [뉴스9] 후임자 못 구했는데…권리금 포기한 채 쫓겨나는 임차인

손은혜 기자 (grace3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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