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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박성진의 군 이야기] 국방부 '무궁화 동산’ 절개해 테니스장···결정과정도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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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장 시공업체가 지난 15일 테니스장 조성을 위해 중장비 등을 동원해 ‘무궁화 동산’을 절개해 놓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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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15년 전에는 용산(龍山) ‘명맥’ 복원한다며 ‘무궁화 동산’ 조성

·‘테니스 애호가’ 정경두 국방장관 취임 후 ‘일사천리’ 진행···구청 명령으로 8일째 공사 중단

대한민국 국방부가 직원들의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난달 20일 시작한 영내 테니스장 건설 공사로 시끄럽다. 22일 국방부와 용산구에 따르면 국방부가 예산 8억1000만원을 투입해 시작했던 테니스장·족구장, 라커룸 조성 공사가 용산구청 명령으로 8일째 중단된 상태다.

국방부가 오는 6월 17일 완공을 목표로 테니스장 건설을 진행중인 곳은 2004년 국방부가 용산의 명맥을 잇겠다며 자발적으로 복원했던 야산이다. 그러던 땅을 15년이 지나자 국방부는 절개했다. 이곳은 국방부와 용산미군기지 등을 포함한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지대다.

국민세금으로 국방부에 테니스장·족구장을 무리하게 짓는 것은 국민 감정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자연환경 파괴’ 논란

국방부 테니스장 예정 부지는 신청사와 구청사 사이에 위치한 잔류부지 1만2000여평 내에 있다. 국방부에 오래 근무한 직원들에게 ‘용머리’로 불리는 곳이다. 용산 터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경내 부지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2번지’인 국방부에서 가장 높은 지대다. 용산 미군기지를 포함해서도 가장 고도가 높은 지역이다.

무궁화 동산 일대는 오래 근무한 국방부 직원들에게는 ‘용머리’로 불린다. 이곳을 기준으로 이태원의 시작점과 맞닿아 있는 녹사평이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용머리’는 그동안 수차례 개발논리에 밀려 사라질뻔 했다가 살아남기까지 과정은 수월치 않았다. 과거에도 국방부는 영내 부지 활용을 위해 용머리 일대 개발을 시도했다. 그러나 ‘용산’의 상징인 이곳을 함부로 허물어서는 안 된다는 향토사학자들의 의견을 존중해 현재의 모습으로 남은 것이라 전해진다.

국방부는 1993년 이곳에 있던 무기고를 철수시키고 보전해 왔다. 이후 블럭 건물 등 인공 건조물이 생기면서 곳곳이 심하게 훼손되고 정상과 기슭 등에 소나무와 잡목 등 약 300그루가 어지럽게 자생해 황량한 모습으로 변했다.

국방부는 2004년 신청사 건립을 계기로 이곳을 다시 정비하고 대한민국 상징이 무궁화꽃임을 감안해 무궁화 나무로 조림한 무궁화 동산을 조성했다. 당시 국방부는 조영길 장관 지시로 신청사 주차장 공사현장에 나오는 15트럭 1460대 분량의 흙으로 복토작업을 해 무궁화 동산을 더 높이는 방안을 한때 검토하기도 했다. 현재 정상에는 돌탑이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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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무궁화 동산’에 조성해 놓은 돌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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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동산에서는 남산을 포함한 서울 시내 조망이 가능하다. 야간에는 서울시내 야경도 내려다 볼 수 있는 지대다. 국방부는 테니스장을 만들겠다며 중장비를 동원해 무궁화 동산 꼭대기 일부만 남기고, ‘ㄴ자’로 이미 절개해 놓은 상태다. 국방부 간부 ㄱ씨는 “‘용의 정수리’를 쪼개 테니스장을 만들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ㄱ씨처럼 국방부 근무자 상당수는 용머리 일대 테니스장 신축공사는 ‘용산’의 ‘지기(地氣)’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용산을 보호하고 보존해야 용산에 터를 잡고 있는 국방부는 물론,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용산은 도성 서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한강변을 향해 꾸불꾸불하게 지나가는 모양이 마치 용이 몸을 틀어 움직이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으로 조선 고종 때까지만 해도 수풀이 무성했다.

용산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일본 관동군이 군사기지를 건설하면서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후 대규모 택지와 상가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국방부 경내의 1만2000평을 제외하고는 용맥이 끊겼다고 풍수전문가들은 지적해 왔다.

국방부는 “테니스장이 한 곳밖에 없어 불편이 좀 많다. 영내 직원 후생복지를 위해 실시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용머리’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용산 지명과 관련된 사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용산의 용머리는 국방부가 있는 삼각지 일대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동여지도, 서울역사편찬원, 한국땅이름학회, 용산향토사료편람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옛 ‘용머리’는 삼각지 일대가 아니라 용산 청암동, 원효로 4가 일대라는 것이다.

국방부는 “현재의 국방부 영내는 목멱산(남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와 형성된 과거 둔치산 지역임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15년전 ‘용머리’를 보전한다면서 무궁화 동산을 조성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국방부의 테니스장 공사 구역은 ‘용머리냐 아니냐’ 논란이 아니더라도 멀쩡한 녹지를 훼손하는 것이어서 용산구청의 녹지축 구상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주한미군 부지를 생태공원(용산공원)으로 조성해 남산~용산공원~한강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을 만들겠다고 공헌해 왔다.

녹지구역을 파괴하고 테니스장 등을 건설하려는 국방부 구상은 도시공원을 보호하면서 시내 곳곳에 나무를 심어 미세먼지를 잡고 도심 열섬현상도 막겠다는 서울시 정책에도 역행하는 조치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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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장 조성을 위해 ‘무궁화 동산’을 절개한 후 쌓인 토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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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테니스장 조성, 문제 없다”

·MB 때는 기무사 골프장 건설하다 ‘원래 땅주인’ 반발에 무산

군의 체육시설 건설을 앞세운 자연환경 파괴는 한두번이 아니다. MB 정권 때는 국군기무사령부가 과천 기무사 영내에 골프장 조성을 시도했다.

당시 기무사는 건설예산까지 확보해 공사를 시작했으나, ‘원래 땅주인’들의 반발에 공사가 중단됐다. 이들은 “군이 군사시설을 만들겠다고 했서 땅을 팔았지, 군 골프장 지으라고 땅을 판게 아니다”라며 법원에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공사를 중단시켰고, 기무사 골프장 건설은 무산됐다.

국민세금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짓는 테니스장 건설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라도 막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MB 정권 당시 기무사의 골프장 건설 추진과 현 정부 국방부의 테니스장 건설 추진이 본질 면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다.

■‘의문 투성이’ 결정과정

국방부는 오는 6월 17일 완공을 목표로 지난달 20일 용산구 인가가 나지 않았는데도 테니스장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관할 용산구청의 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시작해 지난 15일 공사중지명령을 받았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자치단체장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벌이는 행위는 불법이다.

예비역 장성 ㄴ씨는 “야전부대 같으면 지휘관까지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져야 하는 사안”이라며 “군 최상급 부서에서 저러면서 그 많은 예하부대를 뭐라하며 통제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국방부는 “국방부 내 체육시설 조성은 ‘국방·군사시설 시행에 관한 법률로 지방자치단체 허가 없이 할 수 있다”며 “용산구가 이달 말쯤 인가를 내줄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건축물인 라커시설만 용산구청 인가 사항인데 아직 라커시설 공사는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테니스장 기반 공사만 먼저 했기 때문에 위법 사항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신규 테니스장 옆에 장병들을 위한 풋살장도 함께 설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공업체는 공사안내판에 ‘족구장 공사’라고 명시했다. 규모도 455㎡(138평)로 국방부의 기존 풋살장 크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테니스장 설치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족구장’을 끼워넣은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국방부는 족구장이 풋살장과 배드민턴장을 겸하는 다목적 시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국방부는 테니스장 증설은 다른 체육시설들 조성 비용까지 포함해 기획재정부와 국회 승인을 받아 청사종합발전계획에 반영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테니스장만 따로 조성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초 국방부는 수송대대(과거 육군회관) 건물을 리모델링해 종합스포츠시설을 조성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것이 ‘테니스 애호가’인 정경두 국방장관이 지난해 9월 21일 취임한 지 2개월도 채 안된 12월 10일 테니스장 설계 공고를 결정하고 같은달 17일 이를 공고했다. 이후 지난 2월 25일 테니스장 건설 입찰공고를 냈고, 지난달 20일 계약체결과 동시에 공사가 일사천리로 시작됐다.

국방부는 “2016년부터 테니스 동호회가 지속적으로 테니스장 증설을 요청했다”며 “일부 고위급을 위해 테니스장을 짓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방부 직원 ㄷ씨는 “당구도 스포츠”라며 “국당회(국방부 당구 동호회)가 당구시설과 당구장 건설을 요구하면 만들어 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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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장 조성 부지인 ‘무궁화 동산’에서 바라본 21일 서울 용산일대 석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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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장 예산 편성도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테니스장·족구장 설계비는 2018년 국방부의 ‘기타 일반지원시설’ 집행 잔액 가운데 2000만원으로 충당했다. 당시 ’장병편의시설 개선비‘나 ’행정·복지시설 개선비‘ 예산은 모두 집행된 상태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계획없이 갑작스럽게 추진됐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 건설비는 올해 ‘기타 일반지원시설비’ 7억9000만원으로 집행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테니스장·족구장은 ‘장병편의시설 개선비’나 ‘복지시설 개선비’ 항목으로 충당해야 할 부분이다. 국방부가 ‘기타 일반지원시설’ 항목으로 설계비와 공사비로 책정한 것은 국방예산의 편법 집행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국방부 고위간부 ㄹ씨는 “기타 일반지원시설비로 테니스장을 지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지난해에 테니스장 조성을 위한 설계비를 배정한 것도 예산 집행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체 건설비 8억1000만원 가운데 설계비용으로 2000만원만을 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불용예산을 줄이기 위해서였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방부는 테니스 동호회의 테니스장 증설 요청을 테니스장 조성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국방부 테니스 동호회는 합참에 근무하는 현역 군 간부들도 가입이 가능하지만 민간 공무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역 군인들 부대인 국방부근무지원단이 공사를 발주하고 근무지원단 소속 병사들이 테니스장을 관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는 또 어떤 구체적인 절차를 거쳐 테니스장 건설이 결정됐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 행정적으로 누가 기안을 했고, 누가 최종 결정을 했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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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장 공사 부지인 ‘무궁화 동산’에서 바라본 21일 남산타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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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비 8억1천만원이면 3개 여단병력에 ‘워리어 플랫폼’ 자켓 시범 보급 가능

게다가 8억1000만원은 야전부대 연병장이 3000여평 규모라면 10여곳에 잔디를 입힐 수 있는 돈이다. 그러면 병사들이 잔돌이 깔린 연병장에서 축구를 하다 다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공병 장교 ㅁ씨는 평당 2만~3만원이면 잔디로 교체가 가능하다고 했다.

’8억1000만원‘은 또 육군이 미래 병사를 키운다는 워리어플랫폼 시범사업을 할 수 있는 액수다. 병사 6200여명에게 워리어플랫폼 자켓을 보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군 간부 ㅂ씨는 “예산부족으로 워리어플랫폼 자켓을 시범 보급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8억1000만원이면 3개 여단 병력을 상대로 시범사업을 할 수 있다는 액수”라고 말했다. 워리어플랫폼은 장병의 신체와 미래기술을 결합해 전투원 개개인의 생존성 및 전투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개념의 최첨단 개인전투체계다.

용산지역 땅값은 최근 1억원에서 떨어져서 평당 7000만~8000만원 정도를 호가하고 있다. 합참 간부 ㅅ씨는 “아무리 국방부가 군사시설이라고 하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에 국민 세금으로 굳이 야산까지 절개해가면서 테니스장 건설을 강행해야 하는 지 의문이 든다”며 “국방부에서 가까운 효창운동장 부근이나 한강공원에도 테니스 코트는 많다”고 말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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