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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토지 강제수용 법안만 110개…80대 촌로 “내 땅 4번 뺏겨”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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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⑥빼앗는 자를 위한 ‘토지보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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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64만6706㎡.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보유한 농지 면적이다. 그들의 농지는 자신의 개발 공약과 가까웠고, 예산을 확보해 도로를 내거나 각종 규제 해제에 앞장서면서 땅값이 뛰었다.

2526.1㎞. 5개월간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찾아다닌 거리다. 풀이 허리만큼 자라도록 버려진 땅, 씨앗이 심기지 않은 논과 밭이었다. 전체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농지를 보유한 의원은 33%다.

1549.4㎢.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서울과 인천을 합친 규모의 농지가 사라졌다. 값싼 땅이 새도시, 산업단지 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외지인들은 개발 예정지 인근을 사들였고, 농부는 그 땅의 소작농이 되었다. 땅을 잃은 농부들은 더 값싼 경작지를 찾아 떠났다. 의원은 농지를 왜 매입했을까.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둘러싼 이해충돌 문제와 사라진 농부들의 사연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한겨레

“처음에는 골프장 반대 운동으로 시작했는데,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을 바꾸지 않고서는 전국에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국토교통부는 전국적으로 이뤄지는 토지 강제수용 등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고 있지 않아요. 국토부 주무관한테 이 문제를 지적하니까 ‘그럼 나라가 흔들린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11월30일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 자택에서 만난 박성율 목사가 말했다. 토지를 강제수용당한 30여개 피해 주민 대책위원회 등과 연대해 ‘토지난민연대’를 구성한 박 목사는 회원들과 번갈아 일주일에 서너번 홍천에서 서울로 이동해 청와대 앞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6일 495일째 청와대 앞에 섰다. 박 목사가 거리에 서게 된 계기는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대표이사를 지낸 법인 ‘원하레저’의 골프장 조성 사업이었다. 목회를 잠시 접고 내려간 고향 홍천에서는 2008년부터 골프장 인허가가 이뤄지고 있었다.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이 골프장을 공공·문화체육시설로 규정해 민간 건설업자들도 토지 소유자 80%의 동의를 받으면 나머지 소유자들의 집과 땅을 강제수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골프장 시행자들은 사업 기간을 단축하려 불법으로 농민들의 조상 묘지를 파헤쳤고, 토지를 강제수용당한 농민들은 평생 살아온 마을을 떠나야 했다.

박 목사가 이끄는 ‘토지난민연대’ 회원 가운데 일생에 네번의 강제수용을 겪은 할머니도 있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사는 이기인(85)씨는 1994년, 2001년, 2004년, 2009년 각각 기획재정부, 국방부에 농토를 강제수용당했다. 그런데 2015년 철원군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철원 노동당사’ 인근에 조성된 공원을 확장하기로 결정하면서 논 1700평을 또다시 수용당할 위기에 놓였다. 5번째 강제수용을 거부한 이씨는 “60년간 보유한 내 피와 땀 같은 땅”이라며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는 등 억울함을 호소하며 버티고 있다. 이씨의 딸 유경림씨는 “군청 누리집에 공고하는 것으로 사업이 확정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군청에 가서 따지고 버티시니까 군청 공무원이 업무방해로 고소한다고 하더라. ‘그 땅 몇푼이나 (주고) 샀어요?’라고 하면서. 그게 법이라더라. 법 위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 위에 법이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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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년간 공공기관이 수용한 토지만 1106㎢

‘관광진흥법’ ‘마리나항만의 조성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역세권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이 법률들의 공통점은 사업 시행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의 인허가를 받으면 민간인의 토지를 강제수용해 개발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골프장뿐 아니라 레저시설, 호텔 등 민간사업 시행 과정에서 토지가 강제수용된다.

국토부는 강제수용 면적 등 관련 통계를 제대로 집계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 규모도 가늠하기 어렵다. 민간사업자의 수용으로 인한 토지 면적, 수용당하는 인구 등은 아예 제대로 된 통계가 없다. 그나마 한국토지주택공사, 철도공사 등 공공기관이 수용하는 면적만 집계된다. 지난해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8~2016년 공공기관이 수용한 토지는 1106㎢로, 여의도의 132배에 이른다. 보상금액은 132조3297억원으로 지난해 정부 총지출 예산 428조8000억원의 30.8%에 이른다. 이 의원은 “토지 수용으로 영향을 받은 인구는 9년간 288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관계자는 “경험치상 국가 시설 조성으로 수용하는 땅은 대다수 농지나 임야”라고 말했다. 대다수 피해자가 농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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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인 할머니의 ‘강제 수용’ 인생

1994년부터 2009년까지
기획재정부에 국방부에
이번엔 논 1700평 또 수용될 위기
철원군청에 따지니 고소 운운
이씨 딸 “사람 위에 법 있더라”

공익성 검증 부실한 ‘토지수용 법안’

한해 3000건 토지수용 사업 중
국토부 ‘사업 인정’은 7.1건 꼴
폭넓은 예외 인정에 공익성 ‘뒷전’
공공기관 9년간 여의도 132배 수용
최소 49개 법안 ‘민간 강제수용’ 허용

시·군청 공고로 끝… 졸지에 ‘토지난민’

지자체 누리집에 일방적 사업공고
주민들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아
이의제기도 못하고 보상금 협상만

국민의 재산권 보장을 명시한 헌법 23조는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토지보상법 4조는 “국방·군사시설, 철도, 도로, 공항 등에 관한 사업” 등 강제수용이 가능한 공익사업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다만 4조 8항에서 토지보상법이 아닌 개별법에서도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데, 문제는 이런 법률이 110개나 된다는 사실이다. 토지보상법 외에 강제수용이 가능한 개별법은 2000년 43개였으나 의원 발의 등으로 점차 증가해 2019년 현재 110개에 이르렀다. 110개 가운데 상당수가 민간사업자의 토지 수용을 허용한다. 2013년 연구보고서 <우리나라 수용 법제에 대한 법경제학적 검토>를 낸 이호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낸) 당시 개별법이 100개였는데 이 가운데 49개 법률이 공공이 아닌 민간사업자의 토지 강제수용을 허용했다”고 분석했다.

강제수용에 앞서 공익성 검증 절차 또한 부실하다. 토지보상법은 수용 이전에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사업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한해 이뤄지는 토지 수용 사업 3000여건 가운데 국토부 장관의 ‘사업 인정’을 받은 건수는 2014~2019년 43건에 그친다. 한해 평균 7.1건에 불과한 이유는 토지보상법이 사업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폭넓게 허용하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사업을 공고하거나 관리 계획 또는 사업 계획 승인을 하면 국토부 장관으로부터 사업 인정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이른바 ‘사업 인정 의제’를 허용한 탓이다. 토지보상법 외에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개별법 110개 가운데 91개가 국토부 장관의 ‘사업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호준 연구위원은 “선거 때 남발되는 각종 개발 공약 또한 이런 손쉬운 과정을 통해 민간인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한다. 특히 산업단지 유치 공약의 경우 지자체 입장에서는 세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허가를 쉽게 내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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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조성으로 인한 토지 강제수용이 문제 되자 헌법재판소는 110개 법률 가운데 일부에 대해 두차례 제동을 걸었다. 헌재는 2011년 6월 골프장을 강제수용할 수 있게 한 국토계획법 제2조 6호 라목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14년에는 옛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제19조 1항이 “공익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사업을 위해 공공수용(강제수용) 가능성을 열어둬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호준 연구위원은 “사업 시행자가 110개 법률 가운데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지 않은 다른 법률에 근거해서 골프장을 조성하고 토지를 강제수용해도 된다. (헌재 결정이) 근본적 처방은 아니다.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법률도 문제가 되는 조항은 골프장에 국한되기 때문에, (강제수용 조항이) 여전히 110개 법률 안에 살아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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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이 할 수 있는 건 보상금 협의뿐

이런 문제점 때문에 토지 강제수용 이전 공익성 검증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토지보상법이 연이어 개정됐다. 2016년 6월부터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사업에 대해 실시계획 승인을 내기 이전에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심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개정했고, 2018년 12월 ‘의견 청취’보다 강화된 ‘협의 절차’를 거치도록 또다시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국토부의 ‘심의 의견’이나 ‘협의 절차’에 대한 법률적 구속력을 놓고 이견이 분분하다.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관계자는 “구속력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어서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다. 국토부가 심의 과정에서 부적격 판정을 내려도 지자체가 ‘실시계획인가’를 낸 경우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파악은 안 된다”고 말했다.

토지보상법 개정안이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110개 개별 법률은 그대로 존치돼 있기 때문이다. 박성율 목사는 “지자체가 사업 결정 고시를 내기 전에 주민 의견이 수렴되지 못하는 과정상의 문제 또한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보상법에 따른 수용 절차를 보면, △국가 또는 지자체의 사업 계획 결정 △보상계획 공고 △보상액 산정 협의 △협의 미성립 시 토지 강제수용에 앞서 국토부의 사업 인정(또는 사업 인정 의제) △수용 재결 등의 단계를 밟게 된다. 이호준 연구위원은 “지자체가 누리집 등에 일방적으로 사업 공고를 하는데 주민들은 이조차 모르고 있다가 보상액 산정 협의 때가 돼서야 인지한다. 결정 고시 등이 확정된 뒤라서 주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의 제기가 아니라 오직 보상금 협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토지보상 또한 실거래가로 이뤄지지 않고 대다수 공시지가에서 10~30%를 더해 수용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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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는 민간사업자의 토지 강제수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지만, 공익성 검증이 훨씬 엄격하다. 이 연구위원은 “독일의 경우 왜 수용을 해야 하는지, 수용이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는지 등 다양한 검토를 한 이후에 수용 근거 법률을 통과시킨다. 미국의 경우도 2005년 토지 수용 패러다임이 변해 정부가 민간의 경제적 이익을 증대시킬 목적의 수용권 행사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는 한편 수용토지에 대한 공공 모니터링 같은 사후 검증 절차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선거철에 정치적 필요나, 민간기업의 이윤을 위해 농민의 땅을 값싸게 강제수용하는 과정이 토지보상법이 인정한 다양한 우회로를 통해 적법하게 이뤄진다.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관계자는 “민간사업자의 영리사업을 위해 강제수용하는 경우가 있어서 토지 수용이 가능한 110개 법률을 줄여나가는 목표를 갖고 있다. 법률 개정 공고를 점진적으로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끝>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연재를 마치며

한 장의 서류에서 시작되었다. 국회의원 재산 공개 내역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논과 밭이었다. 제보자, 취재원, 조력자 없이 시작한 취재였다. 노트북 한 대를 들고 홀로 전국을 헤맸다. 6차례 이어진 탐사기획의 소재는 농지로 동일하지만, 같은 소재를 두고 다양한 계층과 층위의 현실을 담으려 했다. 1~2회는 농지를 보유한 국회의원들의 이해충돌 실태를 공약 전수조사와 그들의 농지 인근 도로 개설을 중심으로 들여다봤다. 3회는 한 마을에서 이뤄지는 농지 투기 실태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어떻게 부동산 왕국을 이루는지, 한 공간을 깊이 들여다봤다. 4회는 법률적 측면이다. 누구나 위반하지만 범법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농지법을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앞장서서 허무는지, 편법으로 취득한 농지취득자격증명과 현장 취재를 대비해 보여줬다. 5회는 개발 예정지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농민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12명의 농민 구술로 담아냈다. 6회는 개발로 인해 농민들이 땅을 어떻게 강제수용 당하는지 법률의 문제점을 짚었다. 공직자들에 대한 개별적 고발에 그치지 않고, 비농업인들의 불필요한 농지 소유가 일상화한 한국 사회의 보편적 현실과 이로 인한 피해를 담고자 했다. 의원들의 농지 소유에서 시작된 연재는 마지막에 토지보상법이라는 부조리한 법률에 닿았다. 어쩌면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법이 제정되는 국회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누가 어떤 법을 입법하고 이로 인한 이득을 취하는지 감시의 눈길을 거둘 수 없게 됐다. 1년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이 문득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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