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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박사' 큰일 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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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박사'로 유명한 최재천(65)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편집장을 맡은 '동물행동학 백과사전' 개정판이 출간됐다. 세계적인 과학 출판사인 엘스비어가 출간한 이 영문 백과사전은 총 4권 2964쪽에 인지·진화·학습·번식 등 15개 주제별로 동물행동학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를 담고 있다. 최 교수는 2010년 초판 발간 당시 편집자 17명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가 이번에는 전 세계 530명의 필자를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말 그대로 한 학문 분야를 정리하는 국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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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종합과학관 B동 319호 연구실에서 최재천 석좌교수가 자신이 편집장을 맡아 출간된 '동물행동학 백과사전' 4권 1질을 들고 있다. 세계적 과학 출판사인 엘스비어가 출간한 이 백과사전에는 전 세계 과학자 530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백과사전의 표지 사진은 미국 브랜다이스대 댄 폴먼 교수가 찍은 총알개미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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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지난 11일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3년간 개성이 강한 과학자들을 만나거나 전화나 이메일로 조율하면서 얻은 성과"라며 "개인적으로는 국제학계에서 동료들로부터 인정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소들과 씨름한 농장 주인이 저녁에 맥주를 마시며 쉬면서 또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이유가 뭘까요. 인간에게는 동물에 대한 본능적인 호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사냥감의 습성을 아는 것이 원시인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다는 점에서 동물행동학자는 사냥꾼 다음으로 역사가 오래된 직업"이라며 "동물 행동을 연구하면 인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단서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 유학 시절 연구했던 아즈텍개미를 예로 들었다. 개미 사회는 일개미의 수로 운명이 갈린다. 최 교수는 남미 밀림에서 아즈텍여왕개미 두 마리가 종(種)이 다름에도 함께 알을 낳고 일개미도 같이 키우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다른 개미 집단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최 교수는 "오늘날 사회 갈등도 개미처럼 '경쟁적 협력'을 통해 생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인간 사회는 혼자서 다수를 물리치는 세계가 아니라 협업을 통해 집단끼리 경쟁하는 체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경쟁(competition)과 협력(cooperation)의 영어 단어를 합성한 '코아피티션(coopetition)'이란 말로 설명했다. 최 교수는 쇼트트랙 경기가 좋은 예라고 했다. 우리 선수들끼리 협력해 다른 나라 선수들을 견제하다가 결승선에서는 우승을 위해 각자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희생도, 무자비한 경쟁도 아닌 생산적이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경쟁을 하자는 말입니다."

동물행동학은 실용적 가치도 크다. 최 교수는 "동물의 행동을 모방해 장애인과 환자를 돕는 기술들도 개발됐다"고 말했다. 박쥐는 초음파를 주변으로 발사하고 사물에 부딪혀 반사되는 것을 감지해 위치를 알아낸다. 인도 공대(IIT) 연구진은 이를 시각장애인용 지팡이에 적용했다. 손잡이에서 초음파를 발사해 주위의 물체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홍합은 파도가 쳐도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강력한 접착 단백질을 분비해 달라붙기 때문이다. 포스텍 차형준 교수는 홍합이 만드는 접착 단백질을 모방해 수술용 접착제를 개발했다. 동물실험에서 수술 부위가 완벽하게 아물고 아무런 흉터도 남지 않았다.

최 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세계적인 진화연구자인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지도로 흰개미와 가까운 민벌레의 진화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서울대 교수가 됐으며, 2006년 파격적인 연구 조건을 내건 이대로 자리를 옮겨 화제가 됐다. 최 교수는 이대 대학원에 통합 생태 연구를 하는 에코과학부를 신설했다. 그동안 140여 편의 영문 논문과 함께 70여 권의 책을 써 대중에게 동물행동학과 과학의 가치를 알렸다.

특히 최 교수는 40년 넘게 연구한 개미를 비롯해 까치(20년), 자바긴팔원숭이(12년), 돌고래(6년) 등 다양한 동물을 장기간 연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제 전공인 민벌레를 연구하려면 남미로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 제자들의 연구를 도와주기로 마음을 바꿨다"며 "덕분에 까치를 통해 도시에서 일어나는 동물 진화를 누구보다 먼저 연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엘스비어의 편집장 추천 의뢰를 받은 석학 7명도 "최 교수만큼 다양한 동물에 대한 이해가 깊은 학자는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연구는 안 하고 대중 활동만 열심히 한다고 대놓고 욕하는 과학자들도 있었다. 최 교수는 연구실 벽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보내온 정회원 심사 탈락 통지서를 붙여놓았다. 논문 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과학자에 대한 평가 잣대를 유연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이처나 사이언스 논문 수가 아니라 해당 학문 분야에서 실제로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통해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까치를 연구하고 공룡을 발굴하는 과학자들이 계속 배출될 수 있습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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